<20> 로베르트 슈만 초등학교
모든 학교에서 아이들이 움직이는 활동 중요하게 생각
한국선 ‘쉬는 시간’…독일선 ‘노는 시간’으로 해석
방과 후엔 숙제 있는 교재만 들고 가볍게 취미활동

올 한해 본 지는 ‘아이들을 놀게 하자’라는 취지로, ‘공교육, 변화의 항해를 시작하다’ 시즌 2를 연재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도외 놀이터를 방문하고, 놀이터 디자이너들의 고견을 들었다. 아이들에게 놀 시간을 주기 위한 교육당국의 노력을 취재하고, 이보다 앞서 아이들의 놀 권리를 명문화하기 시작한 20세기 초 세계 각국의 흐름과 아동전문가들이 말하는 놀이의 기대 효과에 대해서도 지면을 할애했다.

그런데 최근 국내 공교육계에 불고 있는 놀이 확산의 움직임을 취재하면서 여전히 우리에게는 놀이가 기껏해야 아이들의 또 다른 ‘성장의 도구’로만 소용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선행학습을 통해 높은 점수를 선점하는 것이 학생들의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 지는 공교육의 패러다임이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국가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편집자주>

▲ 로베르트 슈만 초등학교로 향하는 길. 이 마을은 독일인 비율이 높아 아이들의 모국어 수준이 비슷하다. 노인의 비율이 많고 아이들이 적다. 오전 7시30분쯤인데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았다. 독일은 한국과 비슷한 초겨울 날씨였다.
▲ 아침 등교시간 학교 앞의 모습.

◎소도시 프랑켄탈의 작은 학교로

지난 11월 마지막 주를 독일 라인란트팔츠(Rheinland-Pfalz) 주의 소도시 프랑켄탈(Frankenthal)에서 머물렀다.

독일 서부에 위치한 라인란트팔츠 주는 라인 강을 따라 포도주 산업이 발달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로렐라이 언덕이 있고, 주도(州都)인 마인츠(Mainz)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550여 년 전 서적 인쇄기술을 발명한 곳이기도 하다.

독일은 한국과 같이 쌀쌀한 초겨울 날씨였다. 지난 11월 22일 오전 8시. 땡 하고 학교 종이 울리자, 복도와 건물 밖에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교실로 들어갔다. 우리가 찾은 반은 초등학교 1학년 교실. 수학시간이었다. 이날 수업은 네머스 가비(Nemmers-Garvey) 교장이 맡았다. 이 곳에서는 교장도 하루 2시간씩 수업을 한다.

▲ 1학년 초등학교 교실의 모습. 수업 시작전 아이들이 자유롭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학교의 1교시는 오전 8시부터 9시10분까지다. 1교시가 끝나면 아이들은 집에서 가져 온 아침 도시락을 먹는다. 집에서 아침을 먹고 나오지 못 하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란다.
▲ 오늘 이 반 학생들의 목표는 1에서 20까지의 숫자를 아는 것이다. 부등호와 숫자가 적힌 그림을 직접 들고 수의 크기과 개념을 비교해보고 있다.

수업이 시작됐다. 오늘의 목표는 1부터 20까지 숫자 익히기다.

네머스 교장이 북을 들고 한 아이에게 다가갔다. 북을 세 번 쳤다. 그리곤 “몇 번 소리가 났는지” 물었다. 이번에는 실로폰을 들고 다른 아이에게 다가갔다. 한 아이의 답에 대해 다른 아이들의 의견을 묻기도 했다. 네머스 교장은 여러 악기를 반복해 치며 숫자의 개념을 계속해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숫자와 부등호가 써진 큰 종이를 바닥에 펼쳤다. 한 아이에게 자신을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묻고 이 중 한 숫자를 들고 앞으로 나와 서도록 했다. 다음 아이에게도 역시 숫자 그림을 들고 서 있도록 부탁했다. 그리고는 이 두 개 숫자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부등호를 누가 고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어떤 아이들은 1+2=3, 3-2=1과 같이 숫자를 사이에 놓고 친구들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등식이 성립되게 만들기도 했다. 수업은 소란스럽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자리를 바꾸면서 연산의 개념을 더 쉽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교사가 가르치는 수업은 15분 만에 끝났다. 아이들은 교재를 꺼내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갔다(Tagesplan).

같은 반 아이들 사이에서도 교재의 난도는 달랐다. 이 학교에서는 1~2학년에는 성적표가 나가지 않는다. 문장으로 아이들의 장점을 긍정적인 면을 중심으로 기술한다. 어떤 아이들은 레벨 1의 교재를 풀고, 어떤 아이들은 레벨 5의 교재를 풀지만 수준이 다르다고 괘념치 않는 이유다. 각자 수준에 맞는 문제를 푸는 사이, 교사들은 손을 드는 아이에게로가 질문을 받는다. 정규 수업 시간에 맞춤형 수업이 가능한 셈이다.

▲ 학교 내부 모습. 아이들은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1교시 종이 울리면 그때 교실로 들어간다. 지금은 아이들이 모두 수업에 들어간 뒤라 복도가 조용하다. 전교생은 71명이다.
▲ 로베르트 슈만 초등학교의 건물 뒷 모습.

◎당장의 학습보다 사회성 교육을 우선

독일에는 선행학습 개념이 없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유치원 7세반의 경우 공부(이것도 독일에서의 공부 개념)를 하긴 하지만, 글씨를 배우는 것은 아니”라고 네머스 교장은 설명했다. 구구단은 2학년 때 배우기 시작하고 완전히 익히는데 1년쯤 걸린다. 알파벳도 입학 후에 배운다.

네머스 교장에게 한국에서는 한글을 떼고 구구단은 반쯤 익힌 뒤 초등학교에 들어간다고 알려주자 “그럼 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우냐”고 의아해했다.

교실을 둘러보는데 교사 책상 뒤로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카드가 보였다. 네머스 교장은 ‘행동카드’라고 설명했다.

▲ 교실 안에 붙여진 행동카드. 하나하나의 카드 앞에 학생 이름이 적혀있다.
▲ 이곳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숙제가 있는 교재만 가지고 집으로 간다. 가방이 가볍다. 많은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등교한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규칙을 익히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교실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고 이것을 어기면 아이들의 행동카드에는 경고장이 적힌다. 아이들의 반에는 하루에 여러 교사가 거쳐 가는데 이 행동카드를 보고 담임은 이날 하루 아이들의 일과를 파악한 뒤 개인 수첩에 그에 맞는 스탬프를 찍어준다. 그러면 부모들은 그것을 보고 자녀의 하루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행동카드는 훈육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칭찬으로서 규칙 준수를 유도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네머스 교장은 거듭 강조했다.

1~2학년 아이들의 수업시간은 12시까지다. 오전 8시부터 9시10분까지 70분간의 1교시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집에서 싸 온 아침 도시락을 먹고, 2교시 후 20~30분간의 쉬는 시간에는 모두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뛰어논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의 중간 휴식시간을 ‘파우제(pause)’라고 했다. 한국에도 ‘쉬는 시간’은 있다고 했더니, 파우제는 쉬는 시간이 아니라 ‘노는 시간'이라고 교장은 정정해주었다.

네머스 교장은 “독일에서는 아이들이 몸을 움직이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진지한 어조로 설명했다. 그는 “다시 공부에 몰입하게 하기 위해서 마음이 행복해지도록 노는 시간을 준다”며 “놀이는 아이들이 사회성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행위”라고 말했다. 또 “학교는 아이들이 평화롭게 규칙을 잘 지키며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칠 의무가 있다”고도 이야기했다.

◎놀이는 아이들의 의무

이 곳은 독일 라인란트팔츠 주의 소도시 프랑켄탈에 있는 로베르트 슈만 초등학교다. 1~4학년 전교생은 71명이다(독일에서는 한국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그랑슐레(Grundschule)가 1~4학년의 과정이다). 한국에서라면 당장 통폐합 대상일 정도로 규모가 작다.

로베르트 슈만 초등학교는 독일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 마을에는 노인이 많고 아이들이 적다. 이민자도 적어 아이들의 독일어 수준이 일정해 교사들로서는 교육 여건이 비교적 좋은 편인 셈이다.

네머스 교장은 “작은 학교는 교사가 아이들의 이름과 성격을 다 알기 때문에 규율을 가르치기 적합하다”며 “적은 학생 수가 오히려 이 학교의 강점”이라고 자랑했다.

그는 “독일에서 초등 교육의 근본적인 목표는 아이들이 자신의 영역에 맞게 모두가 자부심을 갖도록 해주는 일이며, 자신은 교장으로서 아이들이 즐겁게 와서 학교생활을 하고 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네머스 교장은 이어 “이 학교의 모든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숙제가 있는 교재만 들고 가볍게 집으로 가서 음악이나 말 타기, 축구와 같은 좋아하는 활동을 한다”며 “놀이는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아이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종의 의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글, 사진=문정임 기자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