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최순실 ‘키친 캐비넷’
일부 특혜도 개인적인 비리 불과”
‘탄핵심판 답변서’ 궤변으로 일관

세월호 참사 때도 ‘정상근무’
“몰염치의 극치” 비판 쏟아져
‘대통령 버티기’ 촛불 재점화 動力

후안무치(厚顔無恥)는 ‘낯가죽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탄핵 답변서를 보면 “후안무치이자 몰염치의 극치”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박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은 지난 16일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탄핵소추 절차에 있어서 심각한 법적 흠결이 있고, 소추(訴追)사유는 사실이 아니며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청구는 각하 또는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대리인단은 지금까지 제기된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낮은 지지율 및 100만 촛불집회로 국민의 탄핵 의사가 분명해졌다’는 사유로 탄핵소추가 이뤄졌다고도 공박했다. 탄핵을 가결시킨 국회는 물론 국민을 상대로 ‘끝장 대결’을 선언한 셈이다.

특히 최순실의 국정 관여 및 농단과 관련해선 ‘키친 캐비넷’이란 용어까지 동원 호도하고 나섰다. 이를 그대로 번역하면 ‘주방 내각(內閣)’이란 뜻이 된다. 그 누구도 모른다며 시치미 뗐던 최순실을 마치 대통령과 식사하거나 차를 마시면서 격의 없이 시중 여론을 전달해주는 사람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봉하대군’과 이명박 정부의 ‘만사형통’을 언급한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최순실을 노건평 및 이상득과 동급으로 격상(格上)시키는 한편 ‘키친 캐비넷’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답변서는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서 최순실의 관여 비율을 수치화하자면 1%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 1%도 언론 보도를 인정할 경우 그렇다는 것이다. 그 정도의 비율로 최순실의 의견이 국정에 반영됐다 하더라도 그건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범위라는 게 답변서의 논리다.

이를 종합하면 박 대통령은 최순실의 국정농단(國政壟斷) 등을 ‘키친 캐비넷’으로 치부하고 있다. 설혹 최씨가 공무원들의 도움으로 특혜를 누렸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비리이며 대통령은 그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을 위반하지도, 법률을 위반하지도 않았다는 전면적인 부인(否認)이었다.

그렇다면 일개 사인(私人)인 최순실이 수시로 청와대를 드나들며 ‘문고리 3인방’과 회의를 열고 각종 지시를 내린 것은 어떤 자격에서인가. 굴지의 재벌들도 어려워하는 청와대 경제수석(안종범)을 ‘안’이라 부르고, 정부 요직인 장·차관을 종 부리듯 하는 월권(越權)은 과연 누구로부터 나온 것인가.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인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의 소재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국가안보실장을 지냈던 김장수 현 주중국대사도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으로 나와 그날(4월 16일) 대통령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고 증언했다.

세월호 침몰 과정은 실시간 TV 등으로 중계됐다. 때문에 국민들은 수백명의 어린 학생들이 수장(水葬)되는 처연한 순간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청와대에서도 이를 지켜봤을 터인데, 김기춘 비서실장 등 그 누구도 대통령을 찾아 나서지 않았다. 만약 그랬더라면 단 한명의 목숨이라도 더 구했을 것이었다. 고위 공직자들의 직무유기가, 복지부동(伏地不動)이 화를 키운 꼴이다. “이게 나라냐”는 말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도 탄핵 답변서는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정상근무하면서 최선을 다하라 지시하고, 대규모 인명피해 정황이 드러난 뒤엔 중앙재해대책본부로 나갔다”고 주장한다. 유독 ‘정상근무’를 강조하고 있으니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반면 ‘세월호 7시간’의 비밀에 대해선 여전히 함구(緘口)로 일관하고 있어 그 비린 속내가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 측의 답변서를 접한 시민들은 “국회의 탄핵 가결이 끝이 아니란 것을 새삼 절감했다”며 “궤변으로 가득 찬 답변서야말로 촛불집회에 참가하라고 부추기는 초대장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촛불집회는 매주 토요일에 열렸다. 이를 감안하면 올해의 경우 크리스마스 이브(24일)와 세밑(31일) 두 차례가 남았다. 그동안 집회를 주도했던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대통령의 버티기가 촛불 재점화의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다며 ‘송박영신(送朴迎新)’을 외치고 있다. 세밑인 31일, 박근혜 대통령을 보내고 새해를 맞겠다는 각오다.

촛불이 횃불로, 횃불이 들불로 번져 2016년의 마지막 밤하늘을 불태울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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