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석 박사의 제주지질이야기
(27)동백동산

▲ 파호이호이 용암이 깨져서 만들어진 동백동산 숲속의 곶자왈.

선흘 마을 동백동산은 1971년 문화재인 기념물로 지정됐다. 지정 이유는 희귀식물인 백서향이 자생하고 있는 천연림이기 때문이었다. 동백나무가 울창한 숲이어서 동백동산이라고 불리던 이곳은 현재 동백나무보다 구실잣밤나무나 종가시나무가 더 많다. 동백동산 습지는 2011년 람사르(Ramsar) 습지로 지정된다. 육지의 습지라고 하면 우포늪과 같이 대규모 면적의 호수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동백동산 곶자왈 숲속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큰 습지라곤 없다. 탐방로 입구에 있는 ‘먼물깍’은 수십평 규모의 소규모 습지로 과거 마을 사람들이 물을 길어다 먹던 곳이다. 빌레 위에 형성된 이런 습지들은 제주 중산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소나 말 방목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물먹이 공간이다. 이런 습지가 중요한 이유는 비록 소규모 습지라고 할지라도 ‘제주고사리삼’과 같은 보호가치가 뛰어난 식물이 자라고 있는 건습지(乾濕地)이기 때문이다. 곶자왈 습지의 생태적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 동백동산에서 전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신속(新屬)인 제주고사리삼 자생지를 직접 관찰하면서 다시 생각해 본다. 2014년에는 선흘 곶자왈(동백동산)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지질명소(geosite)로 추가 지정된다. 곶자왈이 화산지형이기 때문에 지질공원(geopark)이 된 것이다. 선흘 동백동산은 이렇게 숲에서 습지로, 그리고 다시 화산지형으로 그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동백동산 마을인 선흘1리에서 생태관광 활동이 활발하다. 지난달 이곳 습지센터에서 ‘도토리 칼국수’로 점심을 했다. 마을 부녀회원들이 동백동산에서 도토리를 주워다가 직접 만든 것이란다. 마을 주민들이 주인이 되는 관광. 이것이 생태관광, 지질관광의 모토이다. 굳이 마을 만들기 사업이라고 하여 따로 추진할 필요가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 제주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자본에 의한 관광개발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과연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여기에서는 선흘 곶자왈(동백동산)의 화산지질에 대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곶자왈이 화산지형이기 때문이다. 선흘 곶자왈을 이 마을에서는 ‘선흘곶’이라고 부른다. 선흘곶 중심에 동백동산의 울창한 수림지대가 위치한다. 곶자왈은 어떻게 만들어진 화산지형인가. 중산간지대에 분포되어 있는 오름(분석구)에서 흘러나온 용암류의 흔적이다. ‘용암이 흘러간 길’이라고 해도 좋겠다. 보통 용암류는 1㎞ 내외의 폭으로 하류 방향인 저지대로 약 10여㎞를 흐른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 용암의 분출시기이다. 오름 분화구에서 유출된 용암의 나이는 대체로 젊다. 분출시기가 얼마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수천년에서 수만년 전에 분출된 용암류이다. 최근 연구에서는 대체로 1만년 이내에 분출한 용암류에서 곶자왈이 생성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 동백동산 생태관찰로.

곶자왈 용암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바닥에 오래된 용암이 깔려 있고, 그 위에 화산활동이 뜸한 시기인 휴지기(休止期)에 수 미터 두께의 고토양(古土壤)이 쌓인다. 그 후 오랜시간이 지난후, 1만년 전이라고 하는, 지질학적으로 ‘최근’에 중산간지대에서 오름이 폭발하여 용암을 분출한다. 이 용암류는 지표를 흐르며 일정 구역에 걸쳐 고토양층을 덮으며 하류로 흘러가서 암석이 된다. 이 암석은 생성된지가 얼마되지 않았으므로 풍화를 받아 토양을 만들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용암이 굳어진채로 돌무더기나 빌레로 남아 있게 된다. 이곳이 곶자왈 지대이다. 토양이 거의 없는 돌밭이기에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자연림이 우거진 숲으로 남아있게 된다. 곶자왈 숲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반면 곶자왈 용암이 덮지 않은 가장자리 부분에는 토양층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이곳은 여지없이 농경지로 활용되고 있다. 곶자왈 경계는 이렇게 이외로 쉽게 얻어진다. 오름에서부터 마치 뱀이 기어간 것과 같이 구불구불 용암류가 흘러간 흔적이 곶자왈 영역이다. 용암유역(熔岩流域)이라고 한다. 곶자왈의 범위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화산지질학적으로 구분 가능하다. 화산폭발에 의해 오름에서부터 추적되는 용암류의 분포 범위가 곧 곶자왈 지형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곶자왈은 자연림의 숲지대이지만, 식물학적인 특성에 화산지질학적인 특성을 더하여 곶자왈을 정의하고 있다. 곶자왈은 화산지질학과 식물생태학이 합쳐진 장소이다. ‘용암숲’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백동산을 이루고 있는 선흘곶의 용암은 상류에 위치하고 있는 북오름에서 유출됐다. 북오름 앞은 빌레지대이다. 평평한 현무암 암반으로된 빌레지대에 비가 오면 물이 고이는 습지대가 형성된다. 파호이호이(pahoehoe) 용암류의 전형이다. 이 용암류는 하류로 흐르며 용암동굴을 만든다. 대섭이굴, 도틀굴, 목시물굴이다. 빌레 암반 위에는 반못, 먼물깍과 같은 소규모 습지도 형성된다. 동백동산 주변의 선흘곶에는 이런 습지들이 많다. 비가 오면 물이 고여 습지가 되고 이내 말라버리기도 한다. 이런 특수한 환경조건이 선흘곶에만 ‘제주고사리삼’이라고 하는 독특한 식물이 서식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 것이다. 더욱 하류로 흐른 용암류는 구사산 용암 언덕에 막혀 정체된다. 흐름을 멈춘 용암은 부풀어 오른다. 용암 팽창(lava inflation)이 발생하여 투물러스(tumulus)의 언덕 지형을 만든다. 투물러스는 용암 껍데기가 먼저 굳어지고 난 후에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용암의 표면은 깨져버린다. 덩어리로 깨진 용암돌들이 바닥에 널려있다. 암석의 틈에서 나무들이 자라며 뿌리가 커지면 암석은 틈이 더욱 벌어지며 더 많이 깨진다. 동백동산 숲 바닥에 분포되어 있는 암석덩어리들은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 동백동산 입구의 먼물깍 습지.

예전에 이런 암석층을 아아용암으로 착각하여 분류한 적이 있다. 선흘곶자왈은 파호이호이 용암류에서 형성되었다. 제주에서 곶자왈을 만든 용암류는 아아용암과 파호이호이용암 모두에서 만들어 진다. 동백동산 아래 채석장에서 북오름 용암류 하부의 토양층에 대한 탄소연대 측정결과 11,000년 전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선흘곶은 그 후에 흐른 용암이 된다. 매우 젊은 시기에 해당된다. 북오름에서 동백동산으로 용암류가 흐른 후에, 거문오름이 폭발하여 용암류를 유출했다. 거문오름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류는 북오름 뒷편으로 방향을 틀어 만장굴 방향으로 흘렀다. 이른바 세계자연유산의 하나인 거문오름 용암동굴계가 만들어진다. 선흘곶 동백동산과 묘산봉 지구는 이렇게 서로 다른 시기의 용암류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큰 면적의 곶자왈이다.

곶자왈의 가치를 다시 생각한다. 과거 농경사회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버려진 곳이 곶자왈이었다. 마을 숲으로 땔감용 나무를 생산하는 곳이었다. 최근까지 곶자왈은 골프장과 대규모 관광시설 대상지였다. 영어교육도시에 가보라. 엄청난 규모로 훼손된 곶자왈 암반 위에 건설되었다. 이제 시대가 변함에 따라 곶자왈은 생태계의 보고로 경제적 가치가 상승되었다. 앞으로 우리 후세들이 살아갈 제주의 지역 가치를 심각하게 고려해야한다. 동백동산 마을, 선흘1리의 생태관광에서 제주의 미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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