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성 루드비히 유치원
2~6세 아이들 한 반서 생활하며 규칙·배려 배워
그날그날의 놀이와 테마는 아이들이 스스로 고안
취학반은 선행교육 대신 수업참관하며 부담 해소

독일은 kindergarten이라는 유치원을 명명하는 공간을 처음 만든 나라다. 유아교육의 선구자 프뢰벨과 발도로프 교육의 시조 슈타이너도 독일에서 활동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국민의무교육제도를 법제화한 나라이기도 하다.

독일 출장을 준비하면서 무엇보다 그곳의 유치원이 궁금했다. 지난달 22일 독일 프랑켄탈 시에 있는 성(聖) 루드비히 유치원을 찾았다. 이 곳은 가톨릭교회에 속한, 엄밀히 표현하면 킨더타케스슈테테(Kindertagesstatte)라고 불리는 통합아동보육기관이다.

▲ 성 루드비히 유치원의 입구. 첫 인상은 도심의 여느 유치원과 같아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넓은 뒤뜰(놀이터)이 있어 인상적이다.
▲ 노란색으로 칠해진 복도가 따뜻한 느낌을 준다. 점심을 먹고 온 아이가 복도에 앉아 신발을 벗고 있다. 종일반은 오후 4시까지다.

▲정확한 시간개념을 가르치다

오후 1시 50분. 유치원 앞에 엄마들이 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엄마를 따라 동생이나 누나를 데리러 온 원아 형제로 보였다. 오후 2시가 되자 현관문이 열렸다.

복도 벽에는 아이들의 외투가 일렬로 걸려있었다. 방금 전 엄마와 서있던 아이들은 익숙한 듯 자기 칸에 옷을 걸고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들은 이내 돌아갔다.

취재진을 웃으며 맞이한 카린 비더(Karin Wieder, 58) 원장은 이 곳은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종일반으로 운영하지만 독일 유치원에서는 정오가 되면 모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치원에서 더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은 그 뒤 오후 2시에 다시 돌아온다. 조금 전 밖에 서있던 아이들은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다시 들어오기 위해 시간을 기다리던 종일반 원아였다.

▲ 같은 그룹내 아이들의 연령이 달라보인다. 독일에서는 혼합연령
▲ 교사들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아이들을 관찰하고 성장을 기록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입소 후 하나의 두꺼운 파일철을 갖게 된다. 교사들은 모두 같이 일하고 함께 아이들을 돌보지만 교사마다 특별히 관리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에 대해 사진도 찍고 발달사항을 정리해두었다가 졸업할 때 아이에게 준다.
▲ 비더 원장이 한 아이의 폴더를 열어 성장과정을 기록한 내용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더 어린 아이에게도 유아교육 확대

밖에서는 좁아보였던 유치원은 안으로 들어서자 딴 세상인 듯 아늑하고 넓었다.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자유롭게 따로 또 같이 사부작사부작 놀이에 몰두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교사는 뒤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반에서도 아이들의 연령대가 달라 보였다. 이유를 물었더니 독일에서는 대부분 혼합연령으로 운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원래 독일에서는 3~6세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니지만 7년 전부터는 2세도 받도록 법이 바뀌었다. 2세 아동을 유치원에 보내고자 하는 부모들의 수요가 있었고, 정부에서도 더 어린 연령의 아이들에게서 훈련이나 교육의 효과가 더 좋다고 판단했다.

이 곳에는 현재 2~6세 원아 75명이 재원중이다. 반은 3개ㅇ, 그룹당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이 25명씩 모였다. 한 그룹의 아이들을, 오전에는 3명, 아이들의 일부가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오후에는 2명의 교사가 돌보고 있다.

▲ 교실에 있는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다.
▲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교실 안팎에서 자신만의 놀이를 자유롭게 고안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한국에서라면 수업시간에서 따로 활동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혼합연령반에 담긴 철학

통상 같은 나이끼리 반을 묶는 한국과 다른 교실의 풍경이 첫 눈엔 좀 낯설었다.

비더 워장은 나이로 나눌 때보다 혼합으로 할 경우 아이들은 다른 연령의 아이들로부터 여러 가지의 것들을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년배보다 떨어지는 아이들도 부담 없이 따라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2세를 받기 시작할 때 교사들이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문제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는지 묻자, 원장은 기자를 한동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이 오히려 생소하다는 듯 “기저귀를 가는 것은 교사와 아이 간에 굉장히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일”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원장은 “이것은 스킨십이 들어간 놀이이기도 하다”고 표현했다.

비록 어린 아이들의 몸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만큼 교사 수를 늘리고 관련 교육을 받았다고 전했다. 어린 아이들이기 때문에 쉴 공간이 더 필요하고, 교사와도 접촉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하는 점이 있다고도 설명했다. 그러나 그 뿐이라고 했다.

▲ 유치원 화장실의 모습. 개인별 수건과 기저귀, 키낮은 세면대가 10여개 설치돼 있다.
▲ 아이들의 소지품 든 상자

▲자유롭게 놀며 사회성 배우는 곳

루드비히 유치원에서는 교육 테마를 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관심사에 따라 아이들이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의견이 다를 때는 주제가 적힌 돌을 누군가 골라 선택하기도 한다. 3~4년 전부터 이러한 방식을 도입했고 지금은 정착됐다. 이것은 이 곳 유치원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스스로 주제를 정한다는 것은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루드비히 유치원의 또 다른 특징은 아이들이 혼자 놀이를 고안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때로 아이들을 짜임새 있게 가르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굉장히 집중적인 교육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비더 원장은 강조했다.

“우리는 다양한 재료를 제공하고 같이 놀아주는 것뿐이다. 아이들은 여러 우연적인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하고 놀 지를 결정하는데 그것은 교실 안이 되기도 하고, 교실 밖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비더 원장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를 혼자 또는 여럿이 하는 과정에서 규칙의 필요성과 배려를 배우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놀이터 바닥은 모래와 낙엽, 충격 완화 등을 위해 유치원이 별도로 구입한 나무 조각들로 메워져 있다.

교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자, 원 뒤뜰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한국에서라면 수업시간 모두가 함께 움직이지 않는 상황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뒤뜰 놀이터가 실내공간들을 합한 것만큼 넓고 자연친화적이었다. 놀이터는 특히 아이들이 교실에서도 쉽게 갈 수 있도록 교실 뒷문으로 계산이 설치돼 있기도 했다.

늦가을의 놀이터에는 낙엽이 모래 위에 쌓이면서 푹신푹신 침대 같은 느낌을 만들었다. 죽은 나무 가지나 바위, 모래, 낙엽은 모두 놀이 소재로 보였다.

비더 원장은 낙엽과 모래 사이에서 손가락 크기의 목재들을 손으로 퍼 올리며  “이것은 아이들에게 안전과 재미를 담보하기 위해 따로 주문한 일종의 충격 완화재”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의 행복이 가장 중요

이 곳에서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6세반(독일은 7세에 취학)의 경우 포슐 그룹(Vorschule-kinder, Vorschule club)이라고 따로 반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모국어나 숫자를 교육하기 위한 반이 아니다.

이를테면 한 달에 한 번 초등학교에 가서 수업을 참관하거나 초등학생들과 극장에 같이 가는 방식으로 재미있게 운영한다.

포슐 그룹을 따로 두는 것은, 아이들이 급이 다른 학교로 갈 때 심리적으로 부담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만남을 준비해주는 교사가 초등학교에 따로 정해져 있어,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지에 대해 유치원 측과 사전에 진지한 논의를 갖는다.

취학 직전 아동에 대해 한국에서는 많은 배움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비더 원장은 독일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비더 원장은 이 곳 아이들은 미리 구구단이나 받아쓰기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런 요구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단지 유치원에서는 하나(eins, 아인스), 둘(Zwei, 쓰바이), 셋(drei, 드라이) 등의 숫자세기나 독일어를 음절별로 읽어보는 정도를 놀이에서 가르쳐준다고 덧붙였다.

원장은, 어린아이들에게는 교육에 앞서, 스스로 움직이도록 긍정적인 언어로 가르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전제했다.

원장은 “한국에서는 시험 때 시험장 앞으로 차도 못 지나가게 한다는 뉴스를 얼마 전 봤다”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한데 한국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사견을 전했다.

취재가 끝나갈 무렵 원장이 복도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그러곤 벽에 붙여진 종이를 가리켰다. 그것은 ‘kinder haben rechte!’(킨더 하븐 레히트). 아이들은 권리를 가진다였다.

원장은 그 곳에 적힌 아이들이 가져야 할 권리를 하나하나 읽어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지내는 것은 하늘이 준 근본적인 권리이고, 이것을 실현하는 책임은 교육기관에 있다”며 “한국에도 상황이 허락하는 어느 틈에선가 아이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실현해주려는 작은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고 미소를 지었다. 글·사진=문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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