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케르쿠안(Kerkouane)

페니키아인이 세운 해양 도시국가 ‘우티크’에 다녀온 이후 나는 택시기사가 알려준 케르쿠안(Kerkouane)이 무척 궁금했다. 택시기사는 케르쿠안이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또 하나의 기원전 고대 해양도시라고 설명했다. <편집자 주>

▲ 케르쿠안행 켈리비아 버스터미널

▲ 새로운 도시를 찾아
지도에서 케르쿠안을 찾아보니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을 바로 코앞에서 바라 볼 수 있는 ‘캡본 반도(Cap Bon)’에 있었다. 캡본 반도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바다 건너 로마까지가 가장 가까운 지역이다.

신트리 시외버스 사이트(http://www.sntri.com.tn)에서 케르쿠안으로 가는 교통편을 검색해 보니 아주 복잡하다. 내가 살고 있는 튀니스(튀니지 수도)의 ‘밥알리우와’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앞서 나불(Nabul, 29회에 연재했던 도자기와 감귤로 유명한 지역)로 가서 다시 케르쿠안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그런데 내가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켈리비아’가 그 중간에 있었다. 아주 멀리 가는 여정이었기에 우선 ‘케르쿠안’을 목표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허락하면 ‘켈리비아’까지 둘러보고 나서 나불을 거쳐 다시 튀니스로 돌아오기로 일정을 잡았다.

▲ 케르쿠안 매표소
▲ 케르쿠안 기념품가게
▲ 케르쿠안의 카르타고 도시 유적

▲바다를 끼고 들어선 도시
튀니스의 밥알리와에 있는 남부버스터미널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하는 나불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로 나불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나불은 네 번째 방문이라서 이번에는 여유롭게 커피를 들고 여러 마을을 거치는 버스를 이용했다.

케르쿠안 유적지는 작게 잘 다듬어진 돌로 만들어진 도시였다. 로마 유적지와는 달랐다. 제주도 초가집 같은 느낌이었다. 33회에 소개한 ‘제주도 돌담길 닮은 페니키아인의 도시 우티크(Utique)’ 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넓은 기원전 도시가 내 앞에 펼쳐진 것이다.

이곳은 내가 지금 제주의 시골길을 거닐고 있나 착각을 할 정도로 낯설지 않은 기원전 도시의 모습이었다.

왼쪽 길로 들어서니 바다가 펼쳐졌다. 이곳에 오면서도 이 유적지가 지중해 바다를 끼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상상하지 못 했다.

페니키아인이 세운 도시국가 우티크도 원래는 바다를 끼고 있었으나 지각 변화로 지금은 바다가 아주 멀리 있어서 ‘케르쿠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 탓이었다.

▲이탈리아와 배로 2시간
이곳에서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까지는 배로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기원전 146년에 카르타고와의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가 이곳으로 상륙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케르쿠안은 수도 튀니스에서 동쪽으로 뻗은 캡 본(Cap Bon)과 켈리비아 사이에 있다. 이 곳 케르쿠안은 카르타고(Carthago)와 같은 시기의 유적이라고 한다. 카르타고는 기원전 814년에 티레(지금의 레바논의 ‘수르’)에서 온 페니키아인이 건설한 도시다.

이 유적지의 도시 이름은 알 수가 없으나 근처를 흐르는 강 이름을 따서 ‘케르쿠안’이라고 부른다.

안내서를 보니 케르쿠안의 카르타고 도시 유적은 1952년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제3차 포에니 전쟁 때인 기원전 146년에 로마군은 카르타고를 철저히 파괴하고 그 자리에 다시 로마 도시를 재건했으나 ‘케르쿠안’은 재건되지 않았다.

이곳은 기원전 255년경 로마 장군 레굴루스(Regulus)가 파괴한 이후 방치돼왔다. 다른 카르타고의 대도시들은 파괴되면서 로마화 되었지만 케르쿠안에는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았다.

▲ 케르쿠안 박물관 입구
▲ 카르타고의 수호신이며 달의 여신인 '타니트’의 표식이 아포트로파이온에 있는 바닥 모자이크에도 보인다.

▲유네스코도 인정한 유적
기원전 3세기 이후 사람이 산 적 없는 케르쿠안은 넓고 곧게 뻗은 바둑판형 도로와 방어 시설 등이 고대 페니키아인들의 건축 기술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적이다. 장방형 집들은 출입문이 하나에 안쪽으로 우물, 목욕탕, 수영장의 흔적이 있었다. 안뜰로 들어가는 복도가 있으며 안뜰 주위에는 응접실들이 있었다. 항구와 거주 구역, 상점, 작업장, 거리, 광장, 신전, 공동묘지가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에 있었던 그대로라고 한다.

앞서 ‘신전 토펫’(연재 9회)에서 보았던 카르타고의 수호신이며 달의 여신인 ‘타니트’의 표식이 아포트로파이온에 있는 바닥 모자이크에서도 보였다.

거주 지역을 벗어나 1㎞정도 도로를 따라서 들어가니 아르그 엘 가주아니(Arg el Ghazouani) 공동묘지가 나왔다. 이 공동묘지는 이 시대에 이루어졌던 카르타고의 장례 건축을 알 수 있는 값진 자료다. 지금도 발굴되지 않은 50기를 포함해 약 200기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공동묘지는 담장으로 둘러싸였다. 상근 감시인이 지키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땅속에 파묻혀 잊힌 도시. 그 이유는 지금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잊혀 진 도시였기에 신전과 주거지와 도로, 광장, 정교한 장신구와 그릇 등의 유적과 유물들이 아주 좋은 상태로 발굴되고 있다. 지금의 신도시보다도 더 구획정리가 잘되어 있는 기원전 도시 유적을 보면서 이 도시를 건설한 페니키아인들이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알고 있는 페니키아인들은 오늘날의 레바논, 시리아, 이스라엘 북부로 이어지는 해안에 살았고, 항해술이 뛰어났으며, 최초로 알파벳을 사용한 문명이었다는 정도다. 

나는 이곳에서 페니키아인의 생활모습과 건축기법을 보면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기원전의 세계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페니키아인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담벼락에 손을 갖다 대고?눈을 감아 보았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 유적지는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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