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켈리비아(Kelibia)

▲ 켈리비아 포트에서 내려다 본 항구 모습
▲ 켈리비아 포트의 내부 모습
▲ 지중해 방향으로 쌓아 올린 켈리비아 포트의 모습
▲ 켈리비아 포트의 내부 모습. 축조술이 아랍의 성의 전형이다.

페니키아인의 기원전 도시 케르쿠안(Kerkouane, 지난 주 연재)을 둘러보고 나니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 참에 ‘켈리비아(Kelibia)’까지 둘러보고 튀니스(튀니지의 수도)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직원의 도움을 얻어 새로운 도시로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케르쿠안에서 켈리비아까지 가는 차편이 없었다. 관리소 직원에게 버스를 알아보았더니 시골 길을 적어도 30분 이상 걸어야 하는데 주위에 인가가 없기 때문에 지리를 모르는 사람은 버스가 다니는 길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걱정이 태산이었다. 유적지에서 나오는 남의 차를 얻어 타려고 노력을 해 보았지만 방향이 다 달랐다.

용기를 내어 다시 매표소로 가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관리직원들에게 켈리비아까지 데려다 줄 수 있느냐고 말을 붙여 보았다. 직원들은 나에게 이것저것 묻더니, 어떻게 혼자 이 먼 곳까지 왔느냐면서 신기해했다.

내가 안전을 고려해 이날도 어김없이 갖고 나온 신문기사(내 활동 모습이 기사화된 튀니지의 일간지 la press지 등)와 외국인 거주증, 그리고 제주매일에 연재중인 보도물을 보여주면서 다음 기사로 케르쿠안과 켈리비아를 연재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고 했더니 잠시 후 직원 하나가 나를 켈리비아에 데려다 주겠다고 나섰다. 관리인의 도움으로 드디어 켈리비아로 출발할 수 있었다.

▲ 성안에서 성밖으로 나가는 켈리비아 포트 성문 출구.
▲ 지중해를 향해 있는 켈리비아 포트의 대포

▲고마운 사람들
켈리비아로 향하면서 내 목적지가 켈리비아 포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내까지만 데려달라고 부탁했다. 그 사이 나는 고마운 직원에게 튀니지에 대한 나의 느낌을 짧은 튀니지 아랍어로 40분간 대화를 나눴다.

1시간 정도 달리니 저 멀리 산꼭대기에 켈리비아 포트가 보였다. 나를 시내까지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켈리비아 포트에 데려다 주려고 한 것이었다. 나중에 내려 갈 때 알았지만 시내에서 켈리비아 포트까지도 아주 먼 거리었다.

매표소에 도착한 뒤 고마움을 보답하기 위해 기름 값이라도 하라고 약간의 성의를 표시했더니 극구 사양을 했다. 매표소로 들어서서는 이 곳 켈리비아 포트 유적지 직원이 내개 입장료도 받지 않고 이 곳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며 생수 한병을 건넸다. 그는 케르쿠안 유적지 사무소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새로 만난 직원은 켈리비아 포트 유적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시작했다. 늘 느끼지만 튀니지 인들은 모두 친절하다.

▲ 켈리비아 시내 모습
▲ 튀니지의 모스크 양식

▲헐고 세워지고 아픈 역사의 반복
켈리비아는 튀니지에서 북동쪽으로 114km 떨어져 있는 캡 봉 반도(Cap Bon)에 있다. 인구는 5만9000명 정도로 조그만 어촌마을이다.

내가 보고 싶었던 켈리비아 포트는 150m의 산 정상에 있었다. 켈리비아 포트는 외관상으로도 매우 웅장하였다. 들어서는 포트의 입구가 ㄷ자 형으로 돼 있어, 외적이 침입하면 3면에서 공격 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성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아주 넓은 성 안의 모습이 펼쳐졌다. 그런데 건물 양식과 성탑 모양들이 좀 이상했다. 요새 안 폐허가 된 옛 집터들과 건물 축조 양식이 눈에 뛸 정도로 서로 달랐던 것이다. 기원 전 로마, 비잔틴, 아랍, 오스만투르크의 흔적들이 곳곳에 있었다.

이 포트는 기원전 264년에서 241년, 카르타고와 로마 사이에 벌어진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파괴되었다가 서기 580년에 비잔틴 제국이 지배하면서 재건됐다. 지금의 포트는 로마 건축물 양식을 가지고 있다. 이 후 6세기에 이곳을 점령한 아랍 족이 노르만족에 대항하기 위해 로마의 기초위에 다시 지었고, 16세기에는 이곳을 지배하던 오스만투르크가 에스파냐(스페인)와 전쟁을 하면서 또 재건됐다. 17세기에는 이 포트에서 오스만투르크와 프랑스간의 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어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이탈리아와 독일군의 군사 요새로 사용하는 등 기원전부터 여러 민족들이 지금의 튀니지지역인 ‘아프리’를 지배하기 위해 이곳으로 상륙하면서 전쟁의 중심무대가 된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비운의 요새이다.

▲ 켈리비아 매표소에서 우연히 만난 튀니지국립도서관 직원의 가족들과 포즈를 취했다.

▲지중해의 중심 바다를 보다
포트 꼭대기에 올라가니 많은 관광객들이 풍광을 즐기면서 성 둘레를 산책하고 있었다. 항구 쪽으로는 오스만투르크가 설치한 큰 대포들이 바로 폭탄을 발사할 것 같은 자세로 놓여있었다. 항구 쪽 바다는 켈리비아 해협 또는 시칠리아 해협이라고 불린다. 지중해의 중심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지중해는 하얀 집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바다의 수평선과 하늘이 전혀 구분이 안 되는 에메랄드빛이다. 나는 지금 튀니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과 바다를 보고 있는 것이다.

포트에서 나와 시내로 가야하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택시가 오지 않는다. 산 아래를 내려가 지나가는 차를 보면서 손을 흔들었더니 벨기에에서 여행을 온 관광객들이 탄 차였다. 내가 아시아에서 온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무척 놀라워했다.

20여분을 달려 중심가에 있는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나불 행 버스시간을 찾다가 가만히 보니 이곳에서 나불을 거치지 않고 튀니스로 직접 가는 버스가 있었다. 나는 아침에 케르쿠안을 보기 위해 튀니스에서 나불로, 나불에서 켈리비아로, 다시 케르쿠안에 갔었다. 기쁨에 버스표를 사려고 줄을 섰는데 앞쪽에서 표가 매진이 되어버렸다. 다음 버스는 3시간 후인 저녁 8시에 출발한다는 것이다. 튀니지 도착하면 밤 11시. 만일 또 버스표가 매진되어 버리면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야 하나 하고 근심어린 모습으로 서 있는데 누가 나에게 와서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한다. 튀니지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여직원이었다. 나는 만난 기억이 없는데 그 분이 나를 알아본 것이다. 자기 고향이 켈리비아라고 하면서 어제 자녀들과 고향에 왔다가 지금 튀니스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행운이란 이런 것인가 놀랍고 신기했다. 자녀들 보는 앞에서 너무 기뻐서 나도 모르게 포옹을 했다. 주위에서 다른 튀니지 인들도 포옹하는 것이 신기했는지 나만 쳐다봤다. 아! 맞다. 여기는 이슬람국가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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