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독일의 아이들

‘놀이’가 아동기에 아이들을 살찌우는 활동이라면, 초등학교 졸업(10세) 이후 독일의 아이들에게 행복과 성장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은 ‘방과 후 자율 활동’이다. 이 곳 아이들은 학교가 파하면 오롯한 개인이 되어 각자가 좋아하는 활동에 몰두한다. 그것은 꿈과 직접 연계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으나 아이들은 그것이 근본적으로 자신의 성장을 어떻게 도울 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 지난해 11월 24일 독일 프랑켄탈시에 있는 김미경씨(통역)의 자택에서 12세부터 18세까지 여려 연령대의 독일 아이들과 만났다. 오후 4시가 갓 지난 시간이지만 해가 저물고 있다. 꿈과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는 아이들의 모습이 진지하다.

◆오후엔 무엇을 하나요?
독일 학교들은 오후 수업이 거의 없다. 이 곳에 모인 아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니콜라스(18세, 12학년)도 오후 1시에서 3시30분 사이에 모든 수업이 끝난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가 기타나 댄스, 오케스트라, 수영 등 각자가 좋아하는 활동을 한다.

하루 일과를 보자. 니콜라스는 밤 11시에 잠자리에 든다. 오전에 8시까지 학교에 가고 오후 1시에서 3시30분 사이에 학교가 끝나면 드럼을 치거나 플루트를 연주한다. 주 4회 라틴과 왈츠 등의 춤을 배우고, 주 1회는 프랑켄탈 시(市)가 운영하는 음악학교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한다.

니콜라스는 음악을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에 대해 “(음악이)좋기도 하고, 나중에 음악이나 영어 선생님이 되면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다”며 “이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니콜라스 외에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예체능을 배우고 있었다. 레오니는 가라데와 피아노, 플루트를 배운다. 지나는 오보에를 불고, 비비안은 바이올린을 켠다.

독일은 학교 수업이 무료다. 방과 후 활동도 대부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비용이 없거나 아주 저렴하다. 시간도 많고 돈이 들지 않으니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어릴 때부터 교양을 쌓고 꿈을 준비할 수 있다. 돈이 없으면 학교 밖 배움 자체가 차단되는 한국과 다른 환경이다. 

▲인터뷰가 끝난 뒤 아이들이 소파에 모여 앉아 즐겁게 웃고 있다.

◆숙제는 없어요?
하교하는 아이들의 책가방은 가벼웠다. 숙제가 있는 교재만 들고 집으로 가기 때문이다. 숙제에 할애하는 시간이래 봐야 하루 1시간이 채 못 된다. 비비안(12세, 7학년)부터 니콜라스(18세, 12학년)까지 모든 아이들이 30분에서 45분사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라는 것을 하는 시간 전부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 공부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아니 모두가 학교에서만 학교 공부를 하기 때문에 자신들만 따로 학교 밖에서 공부를 더 해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과외 공부를 하고, 새벽까지 책을 보는 한국 학생들의 상황을 신기해했다.

비비안(12세, 7학년)은 “중요한 시험이 있으면 1주일 정도는 새벽까지 공부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동기를 못 찾을 것 같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자벨(12세, 7학년)은 “늦게까지 공부하면 다음날 피곤해서 학교생활을 오래 못 할 것 같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매일, 각자의 꿈을 키우다
아이들 모두에게는 꿈이 있었다. 이들은 꿈을 준비하기 위해 매일 집 밖을 나선다.

아직 꿈을 찾진 않았지만 여행을 많이 하고 싶다는 이자벨은 체력을 키우기 위해 배구를 시작했다. 이집트에 잠수하러 가는 것이 꿈이라는 요나스는 매주 아빠를 따라 잠수를 하고 있다. 고백하건데 요나스의 꿈을 들었을 때 ‘하필 이집트에서 잠수’하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요나스는 기자의 속마음을 알아채기나 한 듯 진지한 표정으로 잠수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변호사가 꿈인 레오니는 범죄 실전 지식을 쌓기 위해 FBI 영화와 법 서적을 즐겨본다. 레오니는 취재진을 만난 이날 모 법률회사에 인턴으로 합격했다며 방학기간 좋은 경험을 하게 됐다고 연신 싱글벙글 즐거운 모습이었다. 작가가 꿈인 비비안은 해리포터와 퍼시 잭슨의 주인공들을 믹스해 새로운 판타지를 개발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현재 인터넷 폼에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 비밀이라고 새침한 표정으로 더 이상의 질문을 거부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생활에 모두 만족해했다. 가끔 친구들과 갈등이 있고, 초등학교 졸업 후 바로 진로(김나지움 9년제 인문계학교, 레알슐레 6년제 실업학교, 하우프트슐레 5년제 직업교육 학교)를 결정해야 하는 점이 부담스럽다면서도 지금의 삶에 별 문제가 없으며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아직 꿈이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취재진에게는 이들이 한국 학생들보다 더 구체적이며 개성적인 꿈을 꾸고 있다고 느껴졌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좋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오늘 방과후 자신이 배운 것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살찌울 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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