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보고서’ 비판 자당 의원
親문재인 세력 무차별 공격
“패권적 私黨化로는 정권 못잡아”

정진석 “문화혁명 때 홍위병 떠올라”
‘촛불 든 국민 우리편’ 생각은 큰 착각
김칫국 마시지 말고 自重自愛해야…

“참 두려운 일이다. 참 걱정스러운 일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이것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당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인가”

글은 계속 이어진다. “특정인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 촛불을 든 것이 아니다. 저를 포함해 어떤 성역(聖域)도 인정하지 않아야 제왕적 권력이 사라진다. 다양성이야말로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국민권력 시대’의 핵심가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이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는 민주당 싱크탱크의 ‘개헌 보고서’를 비판한 정치인들에게 쏟아진 ‘문자 폭탄’과 관련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이러니까 패권(覇權)주의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이러니까 외연이 확장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패권적 사당화(私黨化)로는 결코 우리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 본다”

발단은 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이 펴낸 개헌 관련 보고서에서 비롯됐다. 이 문건은 ‘개헌저지 보고서’라고 불릴 만큼 문재인 전 대표에게 편향됐다. 개헌을 주장했던 당내 대선주자 등이 반발했고, 이는 곧 친문(親文) 지지세력의 ‘문자폭탄’으로 이어졌다.

문제 제기에 앞장섰던 김부겸 의원에겐 하루 만에 3000여통의 항의 문자메시지가 쏟아졌다. 결국 김 의원은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야 했다.

비판 대열에 가세했던 박원순·김종인 등 비문계 의원들도 문자폭탄으로 몸살을 앓았다. 주 내용은 ‘당을 떠나라’, ‘개헌을 주장할거면 입을 닫아라’,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못 받을 것’ 등이었다. 심지어 경멸과 욕설의 의미가 담긴 ‘18원’ 후원금을 보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일종의 ‘후원금 테러’였다.

한때 문자폭탄은 더불어민주당의 ‘무기’였다. 특히 탄핵정국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친문 표창원 의원이 탄핵 찬반 의원들의 명단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공개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항의전화와 문자메시지가 빗발쳤다.

당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중국의) 문화혁명이 생각났다. 홍위병들을 앞세워서 대중 선동을 하던 그런 정치가 갑자기 떠올랐다”며 포퓰리즘에 기대고 영합하는 정치행태를 강하게 비난한 바 있다.

‘홍위병(紅衛兵)과 문화혁명’은 중국에 있어 치욕의 역사다. 1950년대 말, 중국에선 30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마오쩌둥(毛澤東)이 내건 이른바 ‘대약진운동’이 처절한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백성들의 먹을거리를 책임지지 못하는 지도자는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다. 마오가 권력에서 잠시 물러나게 되자 이 기회를 틈타 엘리트 세력들에 의해 권력교체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전개된다.

그러나 혁명으로 잔뼈가 굵은 마오쩌둥이 이러한 움직임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이를 제압하고 권력을 재장악하기 위해 꺼낸 카드가 문화혁명(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이었고, 이의 최전선에 앞장선 그룹이 바로 홍위병들이었다.

홍위병들은 중국 혁명정신의 재건을 빌미로 자본주의 요소가 깃든 모든 것을 때려 부쉈다. 숱한 사람들이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갖은 핍박과 죽임을 당했으며, 문화재와 유적 등 5000년 중국문화가 상당수 파괴됐다. 당시 직·간접으로 희생된 사람만 1000만명에 이를 정도로 ‘광란(狂亂)의 피바람’이 분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은 역사적 퇴보(退步)와 함께 백성들 또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으나, 마오쩌둥은 권력 재장악이란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사냥이 끝나자 홍위병들은 토사구팽(兎死狗烹)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문자폭탄’을 두고 정진석 의원이 ‘홍위병’ 운운한 것은 지나친 표현이자 비약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행태가 계속 되풀이된다면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읽혀질 수도 있다. 한때는 ‘무기’이던 것이 부메랑이 되어 ‘자충수(自充手)’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 주변에선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격’ 혹은 ‘성급한 샴페인 제 발에 발등 찍히는 꼴’이란 말이 나돈다고 한다. 문재인 전 대표는 현재 유력한 대선(大選)주자일 뿐, 본격적인 선거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따라서 민주당을 비롯해 문재인 전 대표와 그 지지 세력들은 보다 겸허한 마음으로 ‘자중자애(自重自愛)’해야 한다. 촛불을 든 국민과 민심을 모두 다 자기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커다란 오산(誤算)이자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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