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 어디 있습니까”
빨래판인 줄 알았던 어느 할머니
법정스님 “모르면 무용지물”

세계적 온열치료도 마찬가지
우리 조상 ‘비법’ 미국 교수가 응용
관심 가졌으면 우리 먼저 개발

법정 스님 살아생전의 재미있는 일화다. 법정스님이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보관돼 있는 장경각에 들렀다가 나오는데 시주오신 어느 할머니가 물었다. “스님, 팔만대장경이 여기는 없는데 어디 있습니까?” 이에 스님이 “선반에 꼽혀있는 게 팔만대장경입니다”라고 답하자 할머니는 “아! 빨래판인 줄 알았더니 그것이 부처님 말씀이었군요”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법정스님은 ‘아무리 좋은 지식이라도 알아보지 못하면 빨래판 밖에 되지 못하는구나’라는 생각에 귀가 번쩍 뜨였다고 한다.

의학은 과학이다. 그리고 과학은 대부분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가지 자연현상이나 환자의 체험을 분석,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얻은 지식을 이용해 인간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이 의학이다.

탁산(Taxanes)이라는 항암제가 있다. 이것은 어떤 식물에서 발견된 약제다. 영국에 가면 교회공동묘지가 있다. 영국의 교회공동묘지에는 수천년 전부터 특정한 나무를 울타리로 사용해 왔다. 지금처럼 사람이 많지 않았던 옛날엔 동물들이 공동묘지의 사체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을 막기 위해 짐승들이 싫어하는 나무들을 심게 됐고 그 나무가 바로 ‘유트리(Yew Tree·주목)’다.

이유는 유트리가 가진 독특한 독소 때문이었다. 짐승들은 본능적으로 또는 체험적으로 이 식물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있었고, 고대 영국인들 또한 이를 알고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의학자는 이러한 현상을 면밀히 분석, 유트리의 독을 사용해 항암제를 만들어 냈다.

요즘 세계적으로 체열 전신온열치료가 암치료의 화두다. 미국의 프레드허치슨 암센타의 라파스키 교수가 개발한 체열 전신온열치료의 기본 원리는 체온을 조금만 올려도 우리 몸의 면역능이 올라가서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잡아먹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체 내 면역증강 효과를 라파스키 교수가 알아내서 치료법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우리 선조들이 수백년 전부터 사용한 치료법이다. 예전엔 애들이 감기에 걸리면 부모님들이 온돌방을 뜨끈뜨끈하게 데워서 아랫목에 이불을 뒤집어 씌워 재우곤 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감기가 씻은 듯이 나았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무슨 원리를 알아서가 아니라 영국의 공동묘지 담장나무처럼 그냥 아버지·할아버지가 사용하던 방법을 따라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온열치료현상을 미국의 한 의학자가 관심을 갖고 연구하여 면역증강 효과를 발견함으로써 새로운 치료법으로 전 세계에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라파스키 교수가 젊은 시절에 한국에 왔을 때 필자와 같이 찜질방을 간 적 있다. 찜질방에서 내가 이야기한 ‘감기의 온돌치료’에 대해 매우 관심을 보였던 기억이 난다. 실제 라파스키 교수는 우리의 감기환자들이 습관적으로 체험하던 것을 간과하지 않고 연구와 분석을 통해 ‘훌륭한’ 치료법으로 응용한 것이다.

몇 년 전에 중국 과학자가 중국에서 수천년간 민간에서 사용해온 약초에서 치료약을 개발한 공로로서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기존의 약보다 훨씬 부작용도 없고 효과가 좋은 약이라고 한다.

과학은 자연현상을 면밀히 검사하여 그것을 분석하는 ‘분석학문’이다. 의학은 이러한 분석 결과를 인체의 질병 치료에 응용하는 응용과학이다.

우리나라는 노벨의학상 수상자가 없다. 국가에서 많은 투자가 있고 새로운 시도들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이다. 의학은 과학이고 과학은 자연현상과 체험의 면밀한 분석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선조들이 남긴 체험의학을 무시하지 말고 하나 하나를 면밀히 연구하면 세계적인 치료법이 한국에서도 개발될 수도 있다고 본다.

우리 한국 의사들이 감기의 온돌 치료 효과에 대해서 그냥 민속의학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원리에 매달렸다면 지금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전신온열치료의 최초 개발자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공을 온돌에 전혀 경험이 없던 미국 의학자에게 빼앗긴 것이 너무 안타깝고, 그 미국 의학자에게 찜질방을 체험 시켜주고 온돌의 감기치료 효과를 이야기 해준 내가 ‘매국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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