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총애받던 實勢
김기춘·조윤선 끝내 구속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발목

‘찬란했던 유희’ 幕 내리고
꽃길 뒤로 한 채 나락의 길로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인 것을…

“추락하는 모든 이에게 날개가 달렸네요…. 이제 자러 가야겠어요. 사랑하는 이여, 유희는 끝났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여류시인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시 ‘유희는 끝났다’의 일부다.

날개 달린 것들은 하늘을 날 수 있다. 그러나 이 날개가 제구실을 못하면 결국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왕(王)실장’ 김기춘과 ‘박근혜의 신데렐라’ 조윤선의 구속을 보며 느끼는 단상(斷想)이다. 현 정권에서 승승장구했던 두 사람이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국면으로 날개가 꺾이며 나락의 길로 들어섰다. 이들의 ‘찬란했던 유희(遊戱)’ 역시 끝이 난 셈이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78)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이 지난 21일 전격 구속됐다. ‘최순실 게이트’ 와중에서 법꾸라지(법률+미꾸라지)의 면모를 드러내며 빠져나가는 듯 했으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끝내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기춘대원군’이란 별명에 걸맞게 김기춘 전 실장은 현 정권의 최고 실세(實勢)로 꼽혔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했기에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 의혹을 모를 리 없건만, ‘모르쇠’로 일관하며 국민을 기만해왔다. 더욱이 박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담화를 통해 “최씨에게서 일정부분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했는데도 불구하고 발뺌하기에만 급급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김 전 실장과 박 대통령 일가(一家)와의 인연은 유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법무부 검사였던 1972년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하며 고(故) 박정희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를 ‘김똘똘’이라고 부르며 중앙정보부 최연소 대공수사국장에 중용하는 등 무척 아꼈다고 한다.

특히 1974년 ‘육영수 여사 시해사건’의 범인인 문세광에게 자백을 받아내는 공을 세우면서 박근혜 대통령과도 끈끈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태우 정권 시절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거쳤던 그가, 박 정권이 출범한 이후 고령(74)에도 불구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전격 발탁된 이유이기도 하다.

‘박근혜의 여자’ 조윤선 전 장관의 이력 또한 이에 못지 않다. 그는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공동 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이어 2008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入城)했다.

박 대통령과의 인연이 본격화 된 것은 제18대 대통령선거 경선이 시작되면서다. 경선 캠프 대변인을 하며 박근혜 후보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인수위원회 대변인을 맡는 등 ‘박(朴)의 입’ 역할을 톡톡히 하며 두터운 신임을 쌓았다.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 초대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냈다. 15개월간의 장관직 이후엔 첫 여성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발탁된다. 이후 수석 직을 내려놓고 20대 총선(總選)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이혜훈 의원과의 경선에서 패배해 쓴 맛을 봤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의 신뢰는 여전해 다시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직을 꿰찬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현직 장관 신분을 유지한 채 구속된 첫 번째 인물이란 불명예를 역사에 남기게 됐다.

두 사람 모두 인생 전반을 탄탄대로의 꽃길을 걸어왔지만 이제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차디찬 감옥에서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겨울을 보내게 됐다. 뿌린 대로 거둔다고, 인과응보이자 사필귀정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고 했다. 아무리 대단한 권력도 십 년을 넘기기 어렵고, 붉고 아름다운 꽃도 십 일을 넘기기 어렵다는 뜻이다. 영원할 것 같은 권력이나 아름다움도 언젠가는 쇠하기 마련이다. 이를 뻔히 알면서도 순간의 욕망에 함몰돼 버리고 마는 게 우리네 인간사인가.

고려사(高麗史)의 ‘간신(奸臣) 열전’ 서문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세상에 간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다만 현명한 임금은 그들을 적절히 부림으로써 나라를 바른 길로 이끌어 나갔다. 만약 임금이 한번 간신들의 술수에 빠지면 나라는 거의 패망에 이르렀다.”

그릇된 것을 간언(諫言)하지 못하는 신하도 간신이다. 그러기에 혼군(昏君)과 간신은 영원한 콤비다.

시인은 ‘유희는 끝났다’에서 추락하는 모든 이에게 날개가 있다고 읊조렸다. 하지만 그 날개는 비상(飛翔)의 날개가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날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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