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자신의 아이가 병설유치원 추첨에서 떨어졌다며 낙담하고 상심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부모들이 병설유치원을 선호하는 것은 대략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공립(公立)에 대한 어느 정도의 믿음에다, 상대적으로 사립에 비해 수업료 등 교육비가 저렴한 탓이다.

이를 지켜보며 맨 먼저 드는 생각은 저 어린 나이에 벌써 ‘탈락의 고배(苦杯)’를 맛봐야 하는가 하는 안타까움이다. 또 다른 하나는 병설유치원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정도의 처지에 놓인 그 부모들 심정이 새삼 떠올라서다. 필자 역시 이십 몇 년 전 똑같은 경험을 했었기에 더욱 그렇다.

유아기의 경험이 인간의 성격과 태도, 가치관 등의 형성 및 지적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그간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따라서 유아교육 진흥은 이미 국제적인 추세다. 한국에서도 1980년대 이후 유아교육에 대한 행·재정적 지원을 강화해오고 있으나 체계적이고 내실적인 운영은 아직 미흡한 상태다.

초등학교에 설치된 병설유치원의 경우를 한번 들여다보자. 어린이 교육과 관련 학부모들 간 위화감이 조성되고 유아교육에도 양극화(兩極化) 현상이 일어나는 등 사회 부조리를 해소하기 위해 병설유치원은 설립됐다. 제주지역만 하더라도 지난 1979년 한림초 병설유치원이 최초로 개원했으니 역사는 꽤 오래 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실(內實)보다는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하다보니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제주매일이 최근 ‘공교육 찬밥신세로 전락한 병설유치원’을 주제로 보도한 기획시리즈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방학 중 급식(給食)이다. 현재 방과후과정반을 운영하는 도내 거의 모든 병설유치원에서는 아이들에 대한 급식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영양(교)사들이 초등학교 방학기간이란 이유로 유치원 급식 업무에서 손을 뗀 상태다. 때문에 방학 중에는 식단과 품의, 재료 주문에 이르기까지 유치원 교사나 조리사 등 비전문가가 맡고 있는 실정이다.

방학 중 급식의 책임 주체(主體) 또한 명확하지 않다. 현행 학교급식법 등에는 학교에 영양교사와 조리사를 두고 어린이들에게 안전하고 균형 잡힌 급식을 제공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규 교원인 영양교사들이 방학 때 자가 연수의 필요성을 주장하면 그만이다. 여름이나 겨울방학 동안 급식업무에 공백(空白) 사태가 이어지는 이유다.

이로 인해 유치원 교사에 떠넘겨지는 업무 과부하(過負荷)는 가히 살인적이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보다는 식사 문제 등에 매달리다 보니 유아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현재 제주지역에는 96개교 140학급에 2800여명의 원아들이 병설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가파초를 제외한 95개교에서 방과후과정을 운영 중이다. 대부분의 학교가 방학 때만 되면 급식으로 인한 이런 난리를 겪고 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병설유치원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방학 중 급식소동과 함께 행정실 업무까지 고스란히 떠맡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와 병설유치원의 업무 분장이 모호해서다. 유치원 교사들 사이에서 “비협조적인 행정실 직원을 만나면 아이들 현장체험학습 때 버스대여 업무 등 온갖 잡일까지 맡게 된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이유다. 교장들이 대부분 병설유치원 원장을 겸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 같은 문제엔 무관심한 탓에 빚어지는 결과다.

기존의 학교시설과 인력을 활용해 유아교육을 일단 시작하자는 차원에서 시작된 병설유치원은 처음부터 불완전한 상태에서 출발했다. 병설(竝設)이기 때문에 전담 행정직원이 없고, 방학이 되면 영양교사들이 빠져나가면서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타 지역을 중심으로 병설보다 초등학교와 독립된 단설(單設)유치원을 통해 유아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이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경우 지속적인 경기침체에 따른 양극화 현상 및 자녀교육에 대한 부담증가 등으로 저출산 풍조가 확산되며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유아수의 급격한 감소로 나라의 장래마저 걱정할 정도다.

특히 인성(人性)을 포함 인간 발달의 기초가 되는 유아교육 단계부터 발목이 잡히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다. 정부는 지금처럼 예산타령만 할 게 아니라 ‘국공립 병설유치원 설립 의무화’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만 나라가 산다. 유아교육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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