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에 따라 역사마저 과거로 회귀(回歸)하는 것인가. 국정교과서에 이어 EBS 교재에서도 ‘제주 4·3’을 축소 편향해 논란이 일고 있다. 더욱이 EBS 교재의 경우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직접 연계돼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결코 쉽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해당 교재 168쪽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6·25전쟁’ 편을 보면 정부 수립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 설명하면서 제주 4·3사건의 출발점을 ‘제주도의 좌익세력 등이 5·10 총선거를 앞두고 무장 봉기했다’로 서술하고 있다.

이어 제주 3개 선거구 중 2곳에서 선거가 무효화됐고 이로 인해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됐다고 적시했다.

당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 자칫 제주 4·3사건은 좌익(左翼)의 무장봉기 때문에 발생했다. 그리고 정부가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도민들이 희생된 것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매우 크다. 즉 원인을 제공한 것은 무력(武力)을 사용한 좌익이며,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이를 진압했다는 논리가 그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주 4·3사건은 희생자가 2만5000~3만여 명에 달할 만큼 ‘한국전쟁(6·25)’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컸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사건을 설명하면서 희생자 규모 등의 기본 정보마저 담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하의 무차별적 국가 공권력(公權力)에 의한 도민들의 희생을 ‘진압과정’에서 불가피한 피해를 당한 것으로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EBS 교재는 수능 연계율이 70%에 이르는 등 사실상 학교 현장에서 교과서처럼 활용되고 있다. 이런 문제지까지도 편향적(偏向的)으로 서술됐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석문 제주도교육감도 교재의 문제점을 인식 “다양한 관점은 존중돼야 하지만, 국가 진상보고서의 성과까지 한 순간에 되돌리면 안 된다”고 큰 우려를 표했다. 이 같은 걱정만으로 ‘제주 4·3’에 대한 축소 및 편향적인 행태를 극복할 수는 없다. EBS 교재의 ‘오류(誤謬)’에 대한 시정 건의와는 별도로, 학교 현장에서 ‘4·3’을 더욱 충실하게 가르칠 수 있는 특단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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