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창업 79년 오너 첫 구속
바둑서도 ‘대마’ 잡히는 것 허다
사상 초유 총수 不在…경영 ‘비상’

글로벌커녕 1인체제 자인한 꼴
삼성 위기는 과거교훈 저버린 결과
책임 통감 ‘환골탈태’ 계기 삼아야

바둑에 대마불사(大馬不死)란 용어가 있다. ‘큰 말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경제계에서도 곧잘 인용된다. 그동안 국내에선 재벌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공적자금과 특혜를 줘서라도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대마불사론’이 등장하곤 했다. 그러나 큰 말은 쉽게 죽지 않을 뿐이지, 바둑에서 대마가 잡히거나 죽는 것은 허다했다.

‘삼성’은 우리 경제의 명실상부한 ‘대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7일 특검에 의해 전격 구속됐다. 삼성그룹 창업(創業) 79년 만에 오너로서는 처음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이다.

이 부회장이 구속되자 일부 언론은 ‘최순실 덫’에 삼성이 걸렸다고 보도했다. 사상 초유의 ‘총수 구속’이란 사태를 맞아 삼성은 리더십 부재 속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는 운명에 놓였다는 동정어린 투다. 하지만 자업자득이다.

정경유착과 관련된 삼성의 ‘흑역사(黑歷史)’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병철 창업주는 5·16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부정축재자 1호’로 지목됐지만 주식 등을 헌납하며 감옥행을 모면했다. 1966년엔 이른바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더 큰 곤경에 처했으나 차남(이창희 당시 한국비료 상무)가 덤터기를 쓰면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 또한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秘資金) 조성사건’에 연루되어 250억원의 비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음에도 불구속기소로 끝났다.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이 터져 다시 궁지로 몰렸지만 무혐의처분을 받았고, 2008년엔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의혹 폭로에 따른 특검수사도 용케 피해 구속을 면했다.

그러나 시대상황이 바뀌고 국민들 의식이 변해서일까. 3대(代)에 이르러 더 이상의 요행수(僥倖數)는 없었다. 박영수 특검의 두 번째 구속영장 청구에 이재용 부회장은 결국 덜미가 잡혔다.

현재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 공여를 비롯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재산국외도피,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 등 5가지다.

이 부회장은 삼성이 승마선수 육성을 명목으로 2015년 8월 최순실씨가 세운 독일 회사인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와 210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고 35억원 가량을 송금하는데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최씨와 그의 조카 장시호씨가 설립한 사단법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16억2800만원을 후원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씨가 배후에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에도 대기업 중 최대인 204억원을 출연했다. 뇌물수수죄는 실제 돈이 건너가지 않아도 약속만으로 성립해 특검팀은 삼성이 건네기로 한 430억원 전체에 뇌물 공여 및 제3자 뇌물 공여 혐의를 적용했다.

이 부회장 측은 최씨 일가 지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사실상 강요에 따른 것이라며 줄곧 ‘피해자’라는 주장을 펴왔다. 이에 대해 법원은 결과적으로 삼성의 최씨 일가 지원과 박 대통령의 삼성 경영권 승계 지원 사이에 ‘대가성(代價性)’이 있다는 특검 측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그룹이 ‘대한민국 최대 광고주’라는 사실은 이재용 부회장 구속 이후 재차 확인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이 향후의 삼성을 ‘걱정’하고 나선 것이다.

‘초유의 총수 부재 경영 올스톱… 한국경제 리스크로 번질 수도’란 제목을 내세우는가 하면, 삼성의 연매출(300조원)과 자산총액(350조원) 등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거론하며 삼성그룹을 옹호하는 신문도 있었다. 마치 삼성과 한국경제가 혼란에 빠진다면 그 책임은 특검 등에 있다는 식이다.

영장기각이 무죄(無罪)가 아니듯이 구속 역시 유죄(有罪)가 아니며, ‘구속’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데는 필자도 동의한다. 그러나 국내 최대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인 삼성이 이 부회장 구속으로 경영이 ‘올스톱’ 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애플 등 세계 최강(最强)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삼성이 글로벌 기업은커녕, 총수 1인체제로 운영돼 왔음을 자인(自認)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국민은 결국 망한다고 했다. 삼성그룹이 처한 위기도 과거의 잘못을 망각하고 그 교훈마저 저버린 결과다.

정초의 ‘불길(不吉)한 예언’이었을까.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올 1월 열린 2017년 시무식에서 이렇게 강조한 바 있다. “위기를 만든 것도, 극복하는 것도 (결국은)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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