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진씨 매입 ‘관덕정 중수기’ 보수 진행 과정 상세히 기술
당시 목사 한응수 “노력해서 음식 먹게하는 게 낫다”며 추진

최근 개인 수집가에 의해 매입돼 제주로 돌아온 관덕정 중수기(重修記)에는 당시 제주 목사였던 한응수의 애민정신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기록돼 있었다.

지난해 한국 문화예술 경매회사에서 유찰 된 것을 매입한 고창진씨(제주시 이도2동)는 “중수기 하나 걸려 있지 않은 관덕정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어느 누구라도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료가 떠돌아다닌다면 어떻게 해서든 입수하려 했을 것”이라고 했다.

고씨가 처음 중수기 이야기를 접했던 고서점에서 해당 목판을 한국고문헌연구소 서수용 박사에 번역을 의뢰한 내용을 살펴 보면, 당시 제주 관덕정이 크게 손상됐음에도 보수가 지연됐던 이유와 과정 등이 자세히 기술돼 있다.

1834년 관덕정 중수 당시에는 흉년으로 백성들을 동원해 보수하는 것이 염려된다는 관리들의 의견들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목사 한응수는 “먹고 사는 일이 어려운 백성들에게 할 일이 없어서 굶주리게 하는 것보다 노력을 하게 해서 음식을 먹게 하는 편이 낫다고 여겨 인부를 모아 일을 시켰다”고 기록했다.

주변의 우려와 달리 마을의 기와 기술자, 석수장이 등은 즐겁게 일을 하러 몰려들었고, 한응수 역시 자신이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한 방법으로 백성을 부리면 아무리 힘들더라도 원망하지 않는다’라는 맹자의 ‘왕도정치’를 실현했음을 짐작할 만할 문구도 중수기에 적어 넣었다.

실제 그는 백성들에게 고구마를 심도록 권장해 흉년에 대비하고, 남학당과 서학당을 개설했으며, 효자·효부의 가문은 부역을 면제해 주는 등 도민을 구휼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 제주시 오라2동에는 그의 공덕을 기리는 추사비도 세워져 있다.

이와 관련해 오문복 제주도 문화재위원은 “역사적 가치와 내용 등은 실제로 확인하고 전문가들과 많은 시간 살펴 봐야 하겠지만, 현재 관덕정은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중수된 만큼 중수 이유나 과정 등이 담겨 있다면 사료로서 가치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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