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맞이하는 많은 기념일들
그 가운데 평등한 생일
첫돌부터 장수축복의 환갑·팔순

헌신적인 삶 장모의 팔순
최근 몇년 배운 한국화 전시 계획
부끄럽다며 사양 다음으로 미뤄

인간은 한 평생 살면서 다양한 날들을 기념한다. 그 날들 중에서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는 기념일이 생일이다.

세상에 태어나 첫 해를 무사히 보내고 맞는 첫돌부터 시작되는 생일은 태어난 간지로 돌아왔다는 환갑을 지나 고희, 팔순에 이르기까지 친지를 초대해 잔치를 벌이며 축하한다. 첫돌은 무사히 일 년의 고비를 넘겨 삶의 안정권에 들었음을 확인하는 의미에서, 환갑은 장수를 축복하는 뜻으로 치러졌다고 한다.

과거엔 빈약한 먹거리와 열약한 의술 환경 등으로 인해 갓난아기가 돌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고비를 넘기고 세상의 풍파를 헤치며 살아남은 이들도 환갑을 맞이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물며 70세의 고희나 팔순은 큰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의 수명연장의 집요한 욕심에 의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고 충분한 영양과 관리가 더해져 100세 시대를 열었다. 1970년대만 해도 평균 60세를 맴돌던 한국인의 수명이 어느덧 80세를 훌쩍 넘겼다.

따라서 큰 규모의 행사장이나 음식점을 빌려 친지를 초대해 상을 차리고 한복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직계자손들의 절을 받으며 가무를 동원한 행사는 점차 기억 속으로 사라진 풍속이 되고 있다. 아마도 요즘은 기념 여행을 떠나거나 가까운 친척과 지인을 초대해 식사를 나누는 정도가 일반적인 모습일 것이다.

지난 주말은 장모님의 팔순기념 모임이 있었다. 여느 집과 별 다름없이 장모님의 형제분들과 자손 30여 명이 장인어른의 단골 중국음식점에 모여 순서대로 덜어주는 요리에 잔을 부딪치고 케이크에 촛불도 밝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3시간 남짓 소요된 잔치는 무사히 끝났고 감사의 떡을 돌리고 덕담을 나누며 마무리됐다.

하지만 원래 계획했던 장모님의 팔순 기념행사는 따로 있었다. 장모님은 몇 년 전부터 취미활동으로 한국화를 배우고 익히신다. 그 솜씨를 손자 손녀들의 카드나 편지에 그려 넣어주시기도 하시고 부채를 만들어 여름에 바람을 실어주시기도 하신다. 그 순수한 그림은 어느 유명작가의 작품보다 감동스럽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팔순기념으로 어머님의 작품을 중심으로 가족 전시회를 열어 기념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름 하여 ‘김한주 여사 팔순기념 가족전’ 이다.

어머니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의상을 전공한 딸은 어머니 옷을 한 벌 짓고, 건축가인 아들은 어머니의 집을 디자인하고, 대학에서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는 손자는 할머니사진을 찍어 걸고, 그림을 공부하는 손녀는 초상화를 그리고, 연출가인 필자는 설치미술로 어머니의 팔순 상을 차릴 계획이었다. 모두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어머니의 삶에 대해 차분히 생각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각자의 작품으로 표현된 어머니의 모습은 큰 감동으로 많은 이들에게 전도 되었을 것이다.

바쁜 생활에 어렵게 시간 맞춰 모인 뷔페식당에서 인파에 밀리며 접시를 들고 전전하는 잔치는 각박한 삶을 더욱 치열하게 느끼게 되고, 신용카드 한 장 들고 가면 코스별로 요리가 나오는 중국음식점에서의 잔치는 마련하는 입장에서 성의를 표현하기 어렵다. 풍습과 관습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형식과 표현은 다양하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장모님의 팔순기념 가족 전은 당신의 그림 실력이 아직 내놓기에 부끄럽다고 극구 사양하시는 바람에 할 수없이 몇 년 미루기로 했다. 아쉽지만 뜻을 존중해 선물로 새 붓을 몇 자루 마련해드리고 기다리기로 했다.

꼭 특별한 기념일이 아니면 무슨 상관이겠는가? 몇 년 후 나들이하기 좋은 날을 정해 전시를 열 예정이다. 파독 간호사 출신인 장모님은 평생 가족에 헌신하셨고, 지금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된 듯 어지러운 그러나 반드시 반듯하게 바로잡힐 이 나라의 밑거름으로 순종하며 살아오셨다.

그런 삶을 기념하는 자리는 당연한 것 아닌가? 이제 예술도 전문가의 전시적 작업에서 한걸음 더 들어가 누구나 참여하고 즐기는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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