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도심(동)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귀농인(歸農人) 창업자금’ 중 31%를 챙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이 지원금을 노려 제주시 동(洞)에서 혜택이 가능한 다른 동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행정이나 제주도의회가 이 같은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 채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9월 관련 조례 개정안이 도의회에 상정됐지만 지역구 의원들 간 이해관계가 엇갈려 심사 자체가 보류된 것은 단적인 예다. ‘전형적인 표(票)퓰리즘’이 아닐 수 없다.

제주시가 최근 도의회에 제출한 ‘귀농인 농업창업자금 운영실태’에 따르면 2009년~2016년까지 귀농창업 지원 금액은 모두 210억6300만원(135건)에 이른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25건 47억8400만원의 귀농인 창업(創業)자금을 지원했다.

이 기간 귀농인의 69%는 제도의 취지에 걸맞게 농촌(읍면)지역으로 주소를 이전, 인근에 농지나 주택·과수원 등을 구입해 귀농생활에 들어갔다. 이에 반해 전체 귀농인 가운데 31%는 읍면지역이 아닌 제주시 동지역으로 주소를 이전 지원금에만 눈독을 들여 ‘귀농의 진정성’마저 의심되고 있다.

불합리한 제도를 악용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서울에서 이도2동으로 주소를 옮긴 A씨는 성산읍 삼달리 농지를 구입하면서 귀농자금을 지원받았다. 또 인천에서 봉개동으로 이주한 B씨는 애월읍 봉성리 농지를 구입했는가 하면, 부산에서 오라동으로 이사한 C씨는 외도동의 빌라를 구입하며 자금지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주소를 옮긴 곳 모두가 ‘농어촌으로 지정된 동지역’이었다.

당초 이 제도는 제주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려는 이주민들을 지원하고 농촌지역으로의 인구분산(人口分散) 효과 등을 거두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제주시 및 서귀포시 동 지역 상당수가 조례상 농어촌으로 지정되면서 일부의 경우 ‘눈먼 돈’ 챙기기와 투기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귀농인 창업자금은 어디서 거저 나온 공짜 돈이 아니라, 도민들의 피 같은 세금이다. 또한 ‘도시 집중화’로 인한 각종 부작용을 그 누구보다 도의원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관련조례 개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도의원의 책무를 망각한 처사다. 이러고도 앞으로 ‘지역 균형발전’ 등을 운운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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