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탄핵심판 ‘카운트다운’
특검 종료·헌재 최종변론도 끝나
‘인용이나 기각’ 결정만 남겨

어떤 경우도 엄청난 후폭풍 예상
촛불-태극기 세력 첨예 대립
‘네 탓’으론 난국 풀지 못해…

‘내 탓이오’ 운동이 시작된 것은 지난 1990년 가을이었다. 천주교가 중심이 된 이 운동은 김수환 추기경이 앞장서 당신 차에 ‘내 탓이오’ 스티커를 붙이면서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번졌다. 수 십 만장의 스티커가 순식간 동이 날 정도였다.

당시 김 추기경은 “지금은 자기를 먼저 돌아볼 때”라고 말했다. 불신과 갈등으로 점철된 사회 전반의 신뢰회복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 운동의 구호인 ‘내 탓이오’는 천주교의 ‘고백 기도’가 뿌리다. 기도문 중엔 가슴을 세 번 치며 “제(내)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란 구절이 있다. 죄의 반성과 용서를 구하는 기도다. 어떤 일과 관련 남을 탓하기 이전에 자신의 잘못부터 돌아보자는 뜻이다.

아무튼 ‘내 탓이오’ 운동은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모든 허물을 남에게 돌리는 것에 익숙해진 잘못된 관행(慣行)을 버리고 허물을 나 자신에서 찾자는 것은 일종의 ‘도덕재무장운동’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를 달리 해석하는 시각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이 사회에 팽배해 있는 불신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그리고 왜 생겨났는가를 외면한 채 그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식의 막연한 시각은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할 수가 없다는 논리다. 그 진의(眞意) 여부를 떠나 시절이 하수상한 때이고, 저마다 처한 환경이 각기 다르기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탄핵심판 시계가 ‘카운트다운(초읽기)’에 돌입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수사기간 연장을 승인하지 않아 특검 활동은 28일 공식 종료된다. 또 지난해 12월 9일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접수한 후 80일간 숨가쁘게 달려온 헌법재판소도 27일 스무 번째 재판을 끝으로 모든 변론을 마무리했다.

이날 최종 변론에서 국회 소추위원인 권성동 법사위원장은 “헌재가 피청구인(박 대통령)의 잘못에 대한 엄중한 책임 추궁을 통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결코 부끄러운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길 간절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박근혜 대통령은 이동흡 변호사가 대독한 의견서를 통해 “저의 불찰로 국민께 큰 상처를 드리고 국정운영에 부담을 드린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최순실씨에게 국가 기밀 문건을 전달한 적이 없고, 최씨가 국정농단을 하도록 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최종 변론이 마무리됨에 따라 재판관들은 2주간의 ‘평의(評議)’ 절차를 거쳐 최종 결정을 선고하게 된다. ‘대통령 하야(下野)’라는 돌발 변수가 남아 있으나, 향후 헌재의 탄핵심판 결과는 인용 아니면 기각 두 가지다.

만약 인용(認容) 결과가 나온다면 박 대통령은 즉각 파면되고 청와대를 떠나야 한다. 헌재의 탄핵 결정이 3월 10일 혹은 13일에 이뤄질 경우 19대 대통령을 뽑을 조기 대선은 5월 9~12일 사이에 치러진다. 반면 기각(棄却) 결정이 내려진다면 올해 대선은 당초 계획대로 12월 19일 실시된다.

문제는 인용이나 기각 모두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벌써부터 촛불 세력과 태극기 세력 간에는 ‘기각되면 혁명(革命), 인용되면 내란(內亂)’이란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심지어 대통령 측 대리인단 입에서 “(파면되면) 시가전이 생기고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다”는 막말까지 쏟아내는 실정이다.

국민들이 내 편, 네 편으로 갈리는 등 국론이 분열된 상황에서 이 같은 일이 현실화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야말로 암담하고 참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촛불이든, 태극기든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만이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주의, 그리고 촛불과 태극기를 들었던 자부심과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다.

특히 여야 정치인들은 더 이상 이들을 부추기거나 선동하는 언행을 즉각 멈춰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의 위기’를 초래한 가장 큰 책임이 정치인들에게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네 탓’만 갖고는 오늘의 난국(亂國)을 바로 세울 수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모든 게 내 탓이오”를 외치며 국민화합을 호소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선의 방책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원하지만 감히 청하지 못하는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일 뿐이니, 우리 국민들의 슬픔과 나라의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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