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의례(儀禮)는 다르다. 게임은 일련의 규칙으로 규정된다. 그리고 그 규칙에 따라 무한한 수의 승부를 벌인다.

 의례에도 일련의 규칙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한 시합이다. 승부결과가 양 팀에 균형을 가져온다.

‘야생의 사고’의 레비-스트로스는 뉴기니 가후쿠-가마족의 축구시합에서 게임의 의례에의 전환을 본다. 그들은 양 팀의 승부가 똑같아질 때까지 며칠이고 계속 시합을 한다. 게임을 의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게임은 분리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게임이 시작할 때는 양쪽이 평등하다. 그러나 게임이 끝날 때는 거의 승자와 패자로 갈린다.

반면에 의례는 결합시키는 속성을 갖는다. 의식제례로 인해, 원래 분리되어 있던 두 집단 사이에 유기적인 관계가 새롭게 성립된다.

게임의 대칭성은 미리 결정되어 있다. 그것은 구조적인 성격을 갖는다. 비대칭성은 그 후에 생긴다. 요행이든, 재능에 의한 것이든, 일의 우연성으로 그것은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의례의 경우는 그 반대가 된다. 비대칭성은 미리 결정되어 있다. 의례행위는 모든 참가자를 거의 승자로 만든다.

선거는 일종의 의식제례

선거를 게임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종의 의식제례로 본다. 모두가 틀리지 않는다. 대칭되는 사람들이 선거법이라는 규칙으로 당선을 놓고 한 판 승부를 겨루기 때문에 그것은 게임이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양쪽이 평등했으나, 선거결과 승자와 패자로 갈린다는 점에서도 그것은 게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선거의 의식제례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선거를 통해 유권자는 국가 또는 지역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느낀다. 정치행태에 대한 불만과 의혹을 해소한다. 그리고 정치절차의 민주성과 합리성을 확인한다. 선거과정에서 카타르시스 즉 분노와 불만을 발산하거나 지지를 열광적으로 표출하여 감정을 정화한다.

승자와 패자는 게임의 결과

이제 내일이면 이번 선거의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그러나 그것은 게임의 단순한 결과일 뿐이다. 이제 모두가 승자가 되는 의식제례의 측면을 살려야 한다. 대칭되는 세력을 결합시키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당선을 놓고 치열한 승부를 벌이다가도 당락이 결정되면 훌훌 털어 버리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 민주주의 선거의 멋이다. 그것이 바로 선거의 의식제례의 정신이기도 하다.

승자가 됐다고 하여 우쭐댈 일도 아니다. 패자가 됐다고 하여 낙담할 일도 아니다. 당선은 분명 영광스러운 것이되, 거기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낙선은 한편으로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내일이 있어 값진 것이다.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끝마무리가 깨끗해야 한다. 물론 정해진 규칙을 어긴 사람은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나는 그것에 토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정정당당하게 싸웠으면 결과에 승복할 줄도 알아야 한다. 치사하게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필요이상 정치 문제화하여 선거 후유증으로 비화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지금까지 경험해 왔듯, 선거가 끝나면 선거과정에서 생긴 불신과 감정의 골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후보자 따라 마을과 마을 사이, 문중과 문중 사이, 그리고 학벌 따라 서로 반목했던 좋지 못한 경험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번에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런 감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내일을 기점으로 말끔히 씻어내야 한다.

이번 선거는 지역살림을 맡을 사람을 뽑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제주도민의 자존심을 구긴 불법선거후의 재선거다. 이런 과정과 절차의 결과가 불신과 감정으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하나를 얻고 둘을 잃어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서로 화합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선거의 의식제례의 측면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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