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법과 원칙’ 등 내세워
朴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
대선과 맞물려 ‘갈등·충돌’ 예고

‘유승민 내치기’로 시작된 오판
총선·탄핵 등 거치며 자충수로
오기와 독선이 초래한 ‘自業自得’

 

어느 신문은 우리의 현실을 ‘갈가리 찢겨진 대한민국’으로 표현했다. 우선 계층과 세대 간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촛불과 태극기로 민심이 나뉘더니, 검찰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또 다른 갈등과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27일 오전 박 전 대통령에게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 21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고 ‘검찰에 경의(敬意)’를 표한 지 6일 만이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검찰의 구속영장이 청구된 세 번째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날 기자들에게 배포된 자료에서 검찰은 “피의자는 막강한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하여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케 하거나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권력 남용적 행태를 보였다”며 “중요한 공무상 비밀을 누설하는 등 사안이 매우 중대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그동안 다수의 증거가 수집됐지만 피의자가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부인하는 등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상존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공범인 최순실과 지시를 이행한 관련 공직자들뿐만 아니라 뇌물 공여자(이재용 부회장)까지 구속된 점에 비추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반한다고 덧붙였다.

검찰이 ‘법과 원칙, 그리고 형평성’을 내세우며 어디로 튈지 모를 공을 법원에 떠넘긴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의 운명은 법원의 ‘발부 혹은 기각’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현재 박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는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공무상비밀누설 등 무려 13가지에 달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몰락(沒落)은 지난 2015년 6월 ‘유승민 내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민주적 절차와 방식으로 선출한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에겐 아무런 결격사유가 없었다.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든 게 죄라면 죄였다. 그러나 청와대는 그에게 ‘배신(背信)의 정치’란 낙인을 찍었다. 가히 독재자적 발상이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의도는 곧 드러났다. ‘배신의 정치’를 빌미로 사사건건 맞서는 비박(非朴)계인 김무성 당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를 모두 축출하려는 속셈이었다. 결국 ‘정체성’ 시비는 개혁의 뜻을 품은 비박 세력들을 쫓아내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다음해 4월의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공천권을 장악해 ‘친박 친위대’를 만들기 위한 교활한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이는 이한구 의원이 공천위원장이란 칼자루를 잡으며 현실로 드러났다. 김무성 등 비박계가 항거에 나섰지만 시퍼렇게 ‘살아있는 권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호가호위(狐假虎威)의 대명사인 이한구가 휘두른 칼은 당내 개혁세력을 난도질하는 ‘망나니의 칼’이었다.

친박의 중심인물이자 ‘진박(眞朴) 감별사’를 자처한 최경환과 윤상현 의원 등의 꼴불견 행태도 잇따랐다. 이 같은 상식을 초월한 친박 세력의 횡포는 ‘여권의 심장부’인 TK는 물론 수도권의 민심마저 등 돌리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그리고 그 결과는 2016년 ‘4·13 총선’에서의 새누리당 대참패(大慘敗)로 막을 내렸다. 야권이 분열된 상태에서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를 진 것이다. 새누리는 비례대표 17석을 포함 겨우 122석을 얻는데 그쳐, ‘원내 제1당’의 자리를 더불어민주당에 내줬다.

반면에 야권은 수도권에서 압승한 더민주당이 123석으로 원내 1당에 올랐다. 국민의당도 호남을 기반으로 38석을 건짐으로써 제3당의 지위를 확고히 굳혔다. 새누리당으로선 상상조차 하기 싫던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무려 16년 만에 형성된 것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국민들이 매서운 회초리를 들어 냉엄한 심판을 내렸으면,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대오각성하고 환골탈태(換骨奪胎)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오기와 독선의 ‘불통(不通) 리더십’은 계속돼 분당(分黨)으로 이어졌고,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 등이 드러나며 박 대통령은 결국 국회의 탄핵의결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랐다. 그리고 국민을 대신하여 헌재가 내린 판결은 ‘대통령 파면(罷免)’ 이었으며, 지금 법원의 구속 여부 판단만 기다리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몰락은 개인을 떠나 국가나 국민 모두에게 치명상을 안겼다. ‘장미대선’을 앞두고 보수 세력이 지리멸렬한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배신의 정치’를 한 것은 유승민이 아니라 바로 국민을 배신한 박근혜였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 아닐 수 없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