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한국처럼 사계절 있는 튀니지…제주의 풍경과 흡사
오지 동굴에서 만난 가요 ‘강남스타일’ 한류 재확인
외국인 보호하러 산 정상까지 올라온 고마운 경찰관

▲ 베자의 농촌
▲ 베자주 주도의 거리
▲ 베자의 거리

근무가 없는 날이면 튀니지의 여러 지방을 여행했다. 대부분 광대한 고원을 보았기 때문에 튀니지에는 산맥과 울창한 숲이 없는 줄 알았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그 곳에서 우리나라를 소개할 때 사계절이 있는 나라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튀니지 사림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는데 그 이유를 튀니지에서 1년을 지내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이 곳에도 사계절이 있었던 것이다. <편집자주>

▲첫 산행에 나서다
어느 날 튀니지 친구가 튀니지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베자(Beja)’주에 있는 ‘즈빠(djebba)’로 산행을 가자고 했다. 그 전까지는 유적지를 중심으로 여행을 했을 뿐, 혼자서는 산행을 할 엄두를 내지 못 했었다.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토요일 이른 아침, 산행을 하기 위해 튀니지 친구를 ‘뱁사둔 르와지 터미널’에서 만났다. 즈빠는 뱁사둔 터미널에서 르와지를 타야 갈 수 있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행선지를 알리는 호객꾼들의 외침소리가 여전했다.

간신히 즈빠행 르와지를 찾아 탑승을 했는데 승객들이 없었다. 승객이 없는데도 8시가 되자 르와지가 출발을 하는 것이다. 르와지는 정원 8명이 다 승차를 해야 출발을 하는데 빈 좌석을 두고 출발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너무 신기해 튀니지 친구에게 질문을 했더니 자기도 처음 본다고 했다.

튀니지 친구가 르와지 운전기사하고 한참 대화를 하더니 나에게 정원이 다 안찼는데도 출발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즈빠는 인가가 별로 없는 산간오지라서 튀니스에 특별히 볼일이 있는 사람들은 오전 8시에 출발하는 르와지가 하루에 한번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계속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르와지와 달리 하루에 한번 출발하는 것은 특별히 운행해야하는 의무 사항이라고 했다.

▲ 즈빠 가는 길에서 본 테스투르 모스크

▲제주의 닮은 풍경
그러고 보니 탑승자 모두가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뿐이었다. ‘베자’ 방향으로 북부고속도로를 따라 1시간 정도 달렸다. 내가 주로 여행했던 중부나 남부지방하고는 확연이 다른 풍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주의 오름 같은 산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다른 지역과 다르게 나무들이 무성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시골길로 접어들자 완전히 제주의 중산간 마을을 지나는 기분이었다.

너무 신기하게도 산들은 어머니의 품처럼 완만한 제주도의 오름과 같았다. 나무들도 낯설지 않았다. 일부 밭들의 경계선은 돌담으로 된 곳도 있었다. 그런 풍경에 갑자기 고향이 그리워졌다. 튀니지 친구에게 내 고향과 똑같다고 감탄하며 말하자, 나의 눈망울을 보았는지 등을 살며시 두드려 주었다.

즈빠에 도착하니 오전 11시였다. 3시간이 걸린 셈이다. 르와지에서 내리려는데 운전기사가 튀니지 산간오지까지 온 한국인이 걱정되었는지 “나는 지금 튀니스로 돌아가. 더 이상 튀니스로 직접 가는 르와지는 없어. 여기서 다른 마을로 가는 르와지 막차가 오후 3시에 있으니 2시30분까지는 반드시 와야 해”라며 신신당부를 건넸다.

운전기사와 헤어지고 언덕길을 올라가니 국립자연공원인 즈빠의 제벨 산(Djebel Gorra Mountain)이 눈앞에 펼쳐졌다. ‘신들이 방’이라 불리는 한라산의 영실에 있는 ‘오백라한’을 보는 것 같았다.

바위들은 풍화작용으로 제주의 ‘영실’보다 더 아름다웠다. 멀리서 볼 때 처음에는 바람에 잘 다듬어진 바위의 모습이 사람이 지은 가스바(성, 城)처럼 보였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상하게도 등산로 중간에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집은 우리의 정자의 모습이었다.

지금의 즈빠는 인구가 없는 오지마을이지만 기원전 330년에서 기원후 640년 이르는 로마와 비잔틴의 시대에는 아프리카 지방 총독부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 제벨 마운틴 정상
▲ 제벨 마운틴 정상에서 내려다 본 즈빠 농촌마을 풍경

▲오지에서 만난 ‘강남스타일’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니 폭포수가 흐르고 지붕이 돌로 덮여 있는 광장이 나왔다. 인공으로 만든 광장인 줄 알았는데 석회암이 풍화작용을 받아 생성된 자연동굴이라 했다.

3면이 확 트인 동굴 안에서는 고등학생들이 단체로 야유회를 나왔는지 서로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었다. 학생들이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갑자기 ‘강남스타일’ 노래가 나왔다. 깜짝 놀랐다. 다가가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알고 즈빠까지 왔느냐면서 난리가 났다.

튀니지는 이슬람 국가지만 학생들의 복장은 캐주얼했고, 남녀가 어우러져 자유분방하게 서로 손을 맞잡고 춤을 추고 있었다.

▲ 즈빠의 제벨 마운틴 등산로. 필자를 걱정해서 따라다녔던 공원관리인이 멀리서 나를 지켜 보고 있는 모습.
▲ 즈빠의 제벨 마운틴 등산로..
▲ 즈빠의 제벨 마운틴. 정상에서 플을 뜯는 양떼
▲ 티발에서 베자로 가는 버스편을 알려주신 동네 어르신들

▲따뜻한 경찰관
다시 등산로를 따라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데 보이는 모든 것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런데 입구에서 만났던 공원 관리인이 계속 나를 따라 올라 오고 있었다. 내가 쉬면 같이 쉬고 올라가면 따라 올라오고. 무척 신경이 쓰였다.

정상에 도착하니 사방을 다 내려다 볼 수 있는 넓은 평원이 있었다. 기암 암석들은 석회암과 화폐석 석회암이라 색상마저도 신비로웠다. 한때는 누미디아왕국의 도시이면서 고대 로마도시였던 이곳은 주변 평원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방어에 이상적인 지형을 갖고 있었다.

정상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쉬고 있는데 멀리 경찰차가 산 아래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속으로 이런 오지에 웬 경찰차가 왔을까 생각하는데 얼마 후 공원관리인과 경찰관이 모자를 벗고 땀을 닦으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이곳도 IS가 나타나는 지역인가 하고 좀 겁이 났다. 그러자 경찰관이 웃으면서 나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내 튀니지 체류증을 확인하더니 “말하베(환영한다)”라며 거수경례를 하고 내려갔다.

얼마 전 튀니지의 최대 휴양도시 수스의 해변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IS테러가 발생했었는데 공원 관리인이 외국인인 나를 보호하기 위해 경찰에 연락한 것으로 추측됐다.

경찰관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정상까지 올라온 것에 대한 미안함에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외국인을 보호하려는 튀니지가 더 사랑스러워졌다. 아니면 튀니지 외교부에서 보증해준 체류증의 효과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차 시간에 맞춰서 정류장에 갔더니 르와지가 도착해 있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튀니지의 또 다른 풍광을 볼 수 있어서 보람됐다.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이었다. 동행한 튀니지 친구가 즈빠는 튀니지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특이한 자연환경이라고 말해주었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