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구속 수감된 朴 전 대통령
현대사 주역 대부분 비극적 종말
‘적폐청산’ 또다시 大選 화두로

증오 버리고 和合 선택한 만델라
흑백갈등 해소 국민 하나로 묶어
“우리도 그런 대통령이 그립다…”

 

“자유로 이어질 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나는 알았다. 내 안의 비통함과 증오를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감옥’에 갇히게 되리라는 사실을….” 지난 1990년 2월, 27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된 넬슨 만델라가 남긴 말이다.

새삼 만델라가 떠오른 까닭은 모든 것을 껴안는 ‘관용(寬容)’, 이를 바탕으로 ‘화해(和解)’의 길로 나아간 그의 진정한 용기가 부러워서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참담한 현실과 지극히 대비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사를 이끌었던 대다수 주역의 종말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끝내 구속 수감됐다. 첫 부녀대통령이자 첫 여성대통령이란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과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검찰의 구속으로 이어지며 결국 몰락했다.

‘최순실의 덫’에 걸렸다고는 하나 현실과 철저하게 괴리된 ‘자기 확신’과 ‘불통의 리더십’이 초래한 자업자득(自業自得)이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법과 역사의 냉엄한 심판 뿐이다.

이런 와중에 5월 ‘장미대선’의 유력 대권 후보는 정권교체와 함께 ‘적폐(積弊) 청산’을 유난히 부르짖고 있다. 정권 획득은 모든 정치세력의 가장 큰 목표이며,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을 없애겠다는데 이를 마다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적폐청산’은 이번에 처음 듣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숱하게 들어왔던 말이다. 그 의지대로라면 지금쯤 과거의 낡은 질서와 쌓인 폐단이 사라져야 마땅하나 정권교체기 때마다 계속 반복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은 ‘나는 선(善)이고 상대는 악(惡)이다’라는 이분법에 기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자체가 ‘적폐’인데도 남의 허물만 들춰내어 까발리고 죄를 묻는 것이 마치 ‘정의’인양 생각하는 자기도취가, 서로 상대방에 대한 증오(憎惡)를 악순환 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를 ‘관용과 화해’로 극복한 게 바로 넬슨 만델라다. 인생의 정점기인 근 30년을 감옥에서 보내는 등 만델라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그러나 온갖 역경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내고 ‘증오를 버린 평화의 사도’로 우뚝 섰다.

남아공(南阿共) 최초의 흑인변호사인 그는 젊은 시절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로 불렸다. 당시 백인정권의 무자비한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개인의 영달을 버리고 민주 투사의 길을 걸을 때였다.

그가 가입했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처음엔 간디와 같은 비폭력노선을 추구했다. 그러나 1960년 통행증 반대를 위한 비폭력시위 중 경찰의 발포로 69명이 사망하고 400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샤프빌 학살(虐殺)’을 목격한다. 이후 투쟁방향을 바꿔 ‘민족의 창’이란 무장투쟁단체를 조직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그에겐 ‘테러리스트’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결국 1964년 체포되어 국가전복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일단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으로 악명 높은 로벤섬에서의 감옥생활은 절망과의 싸움이었다. 하루 종일 채석장에 나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돌을 깨는 노역이 이어졌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것. 그럼에도 만델라는 이에 굴하지 않고 무서운 용기로 암담한 현실에 맞서 자신의 이상을 지키며 스스로를 단련했다.

무려 27년 만에 자유를 되찾은 그에게 가장 큰 적(敵)은 회한과 분노, 증오였다. 만델라의 위대성은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그는 모든 것을 감옥에 남겨두고 왔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의 감옥(監獄)’에 갇혀 결코 자유롭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백인들을 향한 복수심에 들끓던 흑인들을 혼신의 힘을 다해 설득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을 용서하고, 화해할 수 없는 자들과 화합하며, 포용할 수 없는 자들을 관용으로 품어 안았다.

그 결과 1991년 마침내 백인정권과 평화협상을 통해 인종차별정책을 폐지시켰다. 이로써 악명을 떨치며 300여년 지속되었던 ‘아파르트헤이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관용과 화해’의 정치는 계속됐다.

2013년 12월 5일 넬슨 만델라의 타계 소식에 전 세계는 추모의 물결로 그를 아쉬워했다. 그것은 평생을 자유와 평등, 관용과 화해로 ‘하나됨’을 위해 헌신해온 한 거인(巨人)에 대한 애도이자 찬사였다.

5월 대선을 앞두고 이런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바라는 건 우리에게 너무 값비싼 사치일까. 용서는 화해로 나아가는 길이지만, 미움과 분노는 또 다른 증오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69주년을 맞은 4·3추념일, 어김없이 제주엔 또다시 꽃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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