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아인드라함(Ain Drahem)

겨울철 폭설 때문에 길게 만든 붉은 지붕 
여름엔 캠핑, 겨울엔 스키타는 ‘휴양도시’
코르크 만드는 나무 재배에 한국도 지원

지난 연재에서 타바르카(Tabarka)의 바르바리(Barbary) 해적을 소개하면서 튀니지에서 바로 앞 바다인 지중해를 건너면 바로 스페인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튀니지 역사를 알려면 무어인(Moors)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무어인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북아프리카의 원주민과 아랍인 들을 말한다. <편집자주>

▲ 아인드라함 마을 진입로
▲ 아인드라함 안내판
▲ 아인드라함. 빨간표시가 이인드라함.

▲스페인에서 쫓겨나 해적이 되다
무어인들은 이베리아 반도에 왕국을 세우고 711년부터 1492년까지 오늘날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지배했다. 그러다 스페인 왕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가 1492년 무슬림의 마지막 보루였던 그라나다를 정복하면서, 781년간의 스페인 내 무슬림 지배는 종식됐다. 이때 스페인은 ‘그라나다 칙령’ 을 반포해 스페인 전역에서 유대인과 무슬림을 추방했는데 그들이 갈 곳이라곤 북아프리카뿐이었다. 때문에 이들은 바르바리 해적(Barbary) 집단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바르바리 해적의 후원자는 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 도시의 영주들이었다. 이들은 지원을 해주고 노획물의 10%와 항구 이용료를 챙겼다. 바르바리 해적은 16세기 초부터 19세기 초까지 약 300년 동안 스페인·포르투갈·이탈이아·그리스·프랑스와 잉글랜드, 여기에 바이킹이 살았던 북극권의 아이슬란드·덴마크 해안까지 공격해 그곳 주민을 무차별적으로 노예로 끌고 가서 팔아버렸다. 그 당시 끌려간 사람이 15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바르바리 해적의 두목이었던 ‘하이르 앗 딘’은 두목이 되자 막강한 스페인 함대에게 근거지를 뺏길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오스만 제국의 술탄에게 충성을 서약했다. 1533년 오스만제국은 그에게 ‘베이르베이(Beylerbey)’라는 직위를 주고, 오스만 제국 지중해 해군의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러자 그는 알제리와 튀니지를 정복해 오스만 제국의 영토로 바쳤다. 이로서 오스만 제국이 북아프리카를 지배하게 된다.

▲ 아인드라함 풍경. 빨간지붕과 급경사 지붕이 관광자원.
▲ 아인드라함의 모스크
▲ 아인드라함의 관광자원인 급경사 지붕과 빨간 기와

▲우연히 만난 소녀들의 권유로 아인드라함을 가다
한편, 어느 날 나는 젠두바 주의 지중해 도시, 타바르카의 레제귀예(Les Aiguilles)와 제노바 요새(Genoese Fort)에서 나와 튀니스로 돌아가기 위해 터미널에서 르와지(8인승 승합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중학생 정도의 여학생 2명이 “안녕하세요!”라면서 수줍게 다가왔다. 얼떨결에 우리말로 “네! 안녕하세요!”하고 응대를 했더니 여학생 2명이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로 소리를 지르면서 정말 한국인이냐고 재차 물었다. 그러면서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면서 좋아했다. 케이팝(K-pop) 팬이라고 소개했다.

소녀들은 알제리와 이웃한 국경도시에서 한국인을 만날 줄은 꿈에도 상상을 못했다면서 나에게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튀니스로 돌아간다고 했더니 대뜸 여기까지 왔으니 아인드라함(Ain Drahem)을 보고 가라고 권했다.

사실 타바르카에 여행을 오기 전에 아인드라함까지 여행을 하려고 조사를 해봤지만 당일치기로는 어렵다고 판단돼 타바르카만 보고 돌아가던 참이었다. 특히 여행 자제지역이라 그전에도 쉽게 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 구도심에 있는 아인드라함 호텔

▲고지대의 산속 도시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아인드라함까지 거리가 30분이라고 했다.  겨울이었으면 5시만 넘으면 어둠이 깔리는데 그나마 8월이어서 해가 길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차를 타고 조금 올라가니 초원지대가 나오고 양과 소들이 방목되고 있었다. 아인드라함으로 가는 고갯길은 4차선도 되었다가 2차선도 되었다 구불구불했다. 거대한 호수도 보였다.

아인드라함은 ‘돈의 원천(source d'argent)’이라는 의미다. 해발 800m의 고지에 위치한 산록의 도시다.

튀니지의 도시들은 대부분 해안에 있지만 아인드라함은 튀니지에서는 보기 드물게 산속에 있었다. 아인드라함은 튀니지에서 강수량이 가장 많은 지방으로, 1950년대에 프랑스에서 댐 건설 노동자를 수용하기 위해 지붕이 붉은 색 타일로 된 작은 집을 지었다가 공사가 완료되자 지방 주민들에게 넘겨주면서 휴양도시로 개발됐다고 한다.

산림이 우거진 이곳은 여름철에는 현지인들의 캠핑 장소로 유명하며, 특히 이곳은 튀니지에서 유일하게 눈이 내리는 곳이라서 튀니지 사람들이 스키를 타는 겨울철 휴양도시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유럽같은 마을
아인드라함을 높은 곳에서 관망하기 위해 오솔길 오르막을 계속 올라가서 내려다보니 보이는 모든 건물들은 이곳의 유럽이 아닌가 생각 할 정도로 유럽풍의 건축물 일색이었다. 내려다보이는 건물들은 확연하게 내가 서있는 1950년대에 조성된 지역과 저 멀리 신도시와 호텔지역으로 나눠져 있었다. 건물들은 모두 빨간색 지붕들이었다. 이곳에 정착한 프랑스인들이 아인드라함을 튀니지의 알프스로 만들려고 지붕들의 기와를 모두 붉은색으로 덮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붕들이 하나같이 경사가 심했다. 튀니지 친구에게 물었더니 ‘폭설 때문에 지붕에 쌓인 눈이 쉽게 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답해 주었다. 

▲코르크참나무를 아시나요?
아인드라함에는 코르크참나무가 울창했다. 코르크참나무의 원산지는 남서유럽과 북서아프리카인데 튀니지에서는 이곳에서만 자란다. 와인용 병마개로 사용되는 되는 코르크는 코르크참나무의 껍질 부분을 벗겨내 가공한 것이다. 나무가 25년 정도 자라야 벗겨내기를 시작할 수 있고, 그것도 10년마다 한 번씩만 가능하다고 한다. 코르크 참나무는 약 200년을 사니까 한 나무에서 20번도 채취하지 못 하는 셈이다. 코르크는 액체가 닿으면 팽창하여 병을 밀봉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인드라함의 코르크참나무 숲은 1930년대만 해도 약 14만㏊로 전 세계 코르크 참나무 분포면적의 4.3% 정도를 차지했다. 그런데 지금은 벌채 등으로 7만㏊로 줄었다. 그래서 이 숲을 복원하기 위해 한국은 내가 소속했던 한국국제협력단을 통해 약 200만 달러를 무상으로 원조해 아인드라함에서 코르크참나무 산림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 9. 아인드라함을 상징하는 코르크참마무로 만든 조형물
▲ 코르크참나무, 겁질을 벗겨서오인용 코르크를 만든다.

▲아직은 위험한 지역
시내를 둘러보는데 기념품 가게에 코르크나무로 만든 그릇과 장식품 등이 특산품으로 팔리고 있었다. 아인드라함은 평화롭게 보이지만 타바르카나 아인드라함은 알제리 국경과 가깝기 때문에 거의 다다르면 길목에서 경찰들이 현지인들도 신분증을 모두 걷어서 조사를 한 후에 돌려줄 정도로 검문검색이 심한 곳이다. 내 경우는 외국인이어서 그런지 검문을 하지 않았다. 이곳을 여행할 경우에는 테러 위험이 있을 수 있어서 튀니지 현지인 친구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다. 좀 모험은 했지만 타바르타에서 우연히 만난 케이팝을 좋아하는 여학생 덕분에 아인드라함까지 여행하는 좋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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