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동네 꼬마아이들에게 무서운 언니, 무서운 누나였다. 밥을 먹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밖에서 동생의 우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번개처럼 달려나가서 동생을 괴롭힌 아이들을 혼내줬다.

내 동생은 지적1급 장애인이다. 인지능력이 세 살짜리 아이보다 낮아서 기분이 좋으면 소리를 크게 지르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볼 때면 TV 볼륨을 마구 높여 동네를 시끄럽게 만든다.

한번은 동생이 만들어낸 소음에 화가 잔뜩 난 이웃집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아주머니가 다짜고짜 던진 첫마디는 어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리라는 말이었다.

엄마는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 숙여 사과를 했고 하필 그날은 엄마의 생신이었다. 그날 엄마의 슬픈 표정은 아주머니의 폭언보다 나를 더 아프게 했다.

하지만 나는 동생을 괴롭히던 꼬마아이들도 우리에게 이사를 가라던 아주머니도 원망한 적이 없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나와 확연히 다른 존재를 불편하게 느낀다.

그 불편함을 드러냈다고 하여 어떠한 교육도 받지 않은 그래서 소양이 갖춰지지 않은 꼬마아이들을 원망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웃집 아주머니 또한 동생이 만들어낸 소음공해에 대한 피해자였고 그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가 이해심이 넓다기보다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보다는 그들을 이해하는 쪽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상적인 사회에 대해 정의를 내리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대답을 할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사회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라 생각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다수가 소수를 배려하는 나라. 다수의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나라. 그런 사회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 이상적인 나라이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적어도 이날 하루만큼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배려하는 날이기를. 그리고 더 나아가 365일 장애인이 비장애인이 누리는 권리를 똑같이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