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신 연구사의 제주식물이야기
(34)사스래나무

▲ 과거 문헌에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좀고채목(정명은 사스래나무).

한라산 백록담 중심으로 발원하는 계곡 따라 다수 분포
고산환경 적응 위해 키가 다소 작고 둥근 형태 수관 소유
불리는 이름만 10여개…목재 각종 농기구 제작에 활용

팔만대장경을 새긴 나무이면서 그 보다 앞서 천마총의 천마도를 그린 나무로 많이 알려진 자작나무, 여러 문학작품에서는 하얀 여인네의 모습 같은 자연속 신비한 소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자작나무는 분포 지역에 따라서 이른 봄 수액을 얻을 수 있는 더 없이 소중한 나무이며, 목재는 다양한 농기구제작의 재료로 활용되는가 하면 수피에 붙어 있는 하얀 껍질까지도 요긴한 불쏘시개로 그 역할을 다하는 다재다능한 나무이다.

자작나무과 자작나무속(Betula)에는 거제수나무, 사스래나무, 박달나무, 자작나무, 개박달나무, 물박달나무 등이 있다. 교목성으로 자라며 잎의 잎맥이 9∼16쌍이고 앞꽃차레의 길이가 3cm 이하로 짧은 종류인 사스래나무, 거제수나무, 박달나무 등과 교목 또는 관목형태로 자라고 잎의 잎맥은 5∼9쌍인 종류인 자작나무, 물박달나무, 개박달나무로 크게 구분을 한다.

자작나무과에는 자작나무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한라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서어나무종류와 개암나무종류, 새우나무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한라산의 자작나무인 사스래나무(Betula ermanii)는 과거 좀고채목으로 더 많이 불렸다. 이전 식물도감을 보면 좀고채목은 사스래나무의 한 변종으로 잎이 달걀모양이고 표면에 털과 지점이 거의 없고 뒷면 맥위 털이 있고 지점이 거의 없어 두 종류를 구분하여 특산식물로 취급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같은 종으로 처리하고 있다.

한라산을 오르면서 사스래나무를 보기위해서는 조금 높은 지역까지 발품을 팔아야 한다. 자작나무들이 높은 지역에 사는 식물이어서 구상나무림이 보이기 시작해야 하나씩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체로 한라산의 사스래나무는 구상나무림에 혼재하여 분포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외로 백록담으로 중심으로 발원하는 계곡을 따라 다수가 분포하고 있다. 대표적인 고산성식물로 중국, 일본을 비롯하여 극동러시아지역에도 분포하고 있으며, 국내에는 거의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자라고 있다.

한라산에서 사스래나무가 자라는 모습은 흔히 사진에서 보는 늘씬하며 곧게 자라는 원추형의 모양은 아니다. 한라산의 고산환경에 적응하면서 키가 다소 작고 가지가 옆으로 많이 펼쳐 둥근형태의 수관을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잎이 무성하게 달려있는 여름보다는 오히려 겨울이나 이른 봄이 그 자태를 확인하기 쉬운 편이다.

사스래나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무래도 다른 나무들과는 구분되는 하얀 수피일 것이다. 여느 나무에서는 볼 수 없는 색상이며,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가로로 찢겨서 나가고 갈색의 속살이 살짝살짝 드러나기도 한다. 지금은 활용도가 거의 없지만 이 종이 장 같은 수피조각들은 비가와도 사용이 가능한 불쏘시개로 매우 요긴한 존재였다,

사스래나무는 그 자태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특징이 있어 꽃이나 열매에 대한 관심은 덜한 편이다. 자작나무종류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사스래나무도 암꽃과 수꽃이 한나무에 따로 피는 종류이다. 가지의 끝 쪽으로 보면 벌레처럼 비스듬하게 달려있던 수꽃은 5월경부터 피기 시작하여 바람이나 옷깃에 살짝 닿으면 꽃가루를 사방으로 흩어져 날리며, 이 보다 안쪽으로 보면 암꽃도 볼 수 있다. 열매는 긴타원형으로 두툼하며 종자에는 날개가 달려있다.

지금은 사스래나무라는 이름을 정명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과거문헌을 보면 아주 다양한 이름을 가진 나무 중 하나였다. 문헌들을 찾아보면 1950년대 이전에 벌써 10가지 넘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쇠고채목, 새수리나무, 큰사스래피나무, 긴고채목, 좀고채목, 가새사시나무, 가새사스래, 왕사스래 등등 다양하다. 높은 산에만 자라 학자들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랐고 지역마다 조금씩 차아기 있었기 때문으로 보아진다.

사스래나무는 “숲의 주인”, “가장 아름다운 나무” 등등 문학적인 소재로 칭송도 많은 만큼 실생활에서도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용도를 가지고 있다. 자작나무 종류들은 고로쇠나무처럼 수액을 채취하는 용도로 이용되며, 핀란드에서는 사우나의 중요한 소품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특히 목재는 도리깨, 쟁기, 호미자루 등 각종 농기구 제작에 활용도가 많은 식물이며, 우리가 생활에서 많이 이용되는 이쑤시개를 만드는 나무이기도 하다. 이렇게 유용한 나무이면서도 주변에서 보기 힘든 이유는 아무래도 환경과 관련이 있는데 공해와 이식이 매우 약한 나무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오월중순부터는 한라산 고산지역을 붉게 물들이는 털진달래와 산철쭉을 만나기 위한 발걸음으로 몸도 마음도 바빠질 것이다. 올해 고산지역 상춘의 목적에는 구상나무 숲이나 계곡을 지나면서 불처럼 타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는 한라산의 자작나무인 사스래나무의 매력에도 한번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 녹지연구사 김대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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