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튀니지 태초 인류는 나일 강 유역 고대 베르베르인들
여러 민족 지배 받은 역사는 문화관광강국 발판이 돼
아랍국 불구 일부일처에 옷차림 자유로운 신기한 나라

나는 여행 작가는 아니다. 2014년 9월 한국국제협력단원으로 튀니지국립도서관에 파견돼 활동하던 중 튀니지국립도서관과 한양대학교 중앙도서관 간의 MOU 체결을 위해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필자가 상임부회장으로 있는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장동훈 회장(제주매일 회장)의 권유를 받았다. <편집자주>

▲ 감시요새 리바트
▲ 외적 침입을 감시하는 라바트
▲ 아랍풍의 통로
▲ 로마 유적물

▲제주의 독자들과 만나다
당시 나는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몇 개월 동안 망설였다. 그 이유는 필자는 본업이 작가가 아닌데다 기행문조차 써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다시 제주매일의 어느 기자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튀니지 사람들과 부딪히며 겪은 일들을 진솔하게 표현한다면  여느 유명한 여행 작가의 글 보다 더 재미있게 독자들의 가슴에 가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격려였다.

그렇게 지난해 4월 6일 연재가 시작됐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총 20회로 마감하려고 했으나 어느덧 1년이 지나면서 53회가 됐다.

얼마전 필자는, 2년 동안의 튀니지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무사히 귀국했다. 튀니지국립도서관에서의 임무도 아울러 완수했다. 그래서 이번 글은 52회 동안 연재했던 튀니지의 여러 모습들을 총 정리한다.

▲ 거리의 카페
▲ 골목길 풍경
▲ 공원에서 즐기는 어린이들
▲ 노상카페
▲ 뒷골목 풍경

▲연재의 힘 8할은 현지 친구들
‘유럽을 닮은 아프리카, 튀니지를 가다’는 여행기라기보다는 생활자로서의 기행문이라고 해야 더 맞다. 그 이유는 나는 튀니지에 여행한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현지인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데, 긴 연재를 무난하게 마칠 수 있었던 큰 원동력은 이곳에서 사귄 튀니지 친구들 덕분이었다. 필자는 튀니지 친구들의 도움으로 여러 지방을 여행했으며, 아무 사고 없이 귀국 할 수 있었다. 어려울 때 항상 곁에 튀니지 친구들이 있었다. 

▲ 두가(DOUGGA)의 로마 유적
▲ 방치된 로마시대의 석상
▲ 젊은 연인들
▲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 카르타고 원형극장 로마 유적
▲ 카페풍경

▲튀니지의 역사
튀니지의 태초 인류는 기원전 4000년경 나일 강 유역에서 농경사회를 이루고 있던 고대 베르베르(Berber)인들이었다.

이후 기원전 9세기 티레(현재 레바논) 지역의 페니키아인들이 튀니지로 이주하면서 카르타고(Carthage)라는 도시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이주민의 대부분은 해상무역을 하던 상인들이었다. 카르타고는 기원전 6세기경 지중해 연안을 아우르는 왕성한 무역국으로 전성기를 누리다가 지중해 연안 상권을 두고 로마와의 포에니 전쟁을 벌이고 여기에서 패하면서 기원전 149년에 몰락하고 로마가 번영하게 된다.

그 후 튀니지는 5세기 반달족(Vandal)과 6세기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는다. 다시 서기 647년에 아랍민족의 침입으로 튀니지에는 아랍인들이 정착하게 된다. 이때 튀니지에 있던 무어인(북아프리카의 원주민과 아랍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왕국을 세우고 711년부터 1492년까지 오늘날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지배했다.

스페인의 그라나다와 바르셀로나는 무슬림들이 세운 도시이다. 우리나라는 이성계가 1392년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한 시기이다. 이 후 1534년 스페인의 침입이 있었고, 1580년 거대한 터키 제국의 왕조였던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약 300여 년간 이곳을 지배한다. 이 때 튀니지는 예속국가가 아니라 베이(Bey) 라는 지방 군주의 형태로 운영되다가 후세인(Hussein) 왕조가 형성되면서 사실적인 독립국가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러나 1869년 프랑스의 침입을 받는다. 1881년 ‘바르도 조약’을 시작으로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가 1956년 독립한다.

이후 1957년 7월 25일 초대 대통령인 하비브 부르기바(Habib Bourguiba)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튀니지는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성립된다. 튀니지는 이러한 역사 때문에 다양한 민족의 문화유적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문화유산은 튀니지를 관광대국으로 만들고 있다.

▲ 터키 이슬람교회
▲ 튀니지 민속음식점
▲ 튀니지 전통 가게
▲ 해수욕장 (2)
▲ 튀니지 국회

▲꼭 알아야 할 것들
튀니지에서는 지방으로 자유여행을 하게 되면 반드시 버스터미널을 알아두어야 한다. 북서부 지역은 뱁 사둔 역(Station de Bab Sadoun), 북동부와 남부 지역은 몽세프 베이 역(Station de Moncef bay), 캡봉 지역 및 남서부 지역 밥 알 리우아 역(Station de Bab Alioua)에서 타야 한다.
 
이슬람 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은 술을 생산하거나, 마시거나, 판매하는 것을 아예 금지하지만 튀니지에서는 포도주를 생산하며 술을 마시는 것도 허용된다.

튀니지 사람들은 스스러를 아랍족이라 하지 않고 ‘마그레부 인’이라고 한다. 마그레브(Maghreb)는 “(해가)지는” 또는 “해가지는 곳”이라는 의미다. 북아프리카 북부의 3개국인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와 리비아, 모리타니아를 포함하는 5개국을 지칭한다.

튀니지는 일부다처제가 금지되고 히잡의 의무 착용도 폐지한 나라이다 보니 튀니스의 거리를 걷다보면 짧은 치마와 민소매 차림으로 멋을 내는 여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언어는 튀니지 아랍어와 공용어로 불어를 사용한다. 튀니지 사람들은 유럽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며 아랍과 유럽의 문화가 공존한다.

튀니지를 여행할 때는 우리나라 외교부의 권고 사항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IS용병 중 최다국가가 튀니지이기 때문이다.

전투원들이 튀니지로 복귀하면서 벌어질 수 있는 테러 때문에 대규모 집회 장소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조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렇다고 여행하면서 심적으로 불안은 하였지만 크게 위험을 느껴 본적은 별로 없다.

유적지마다 경찰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튀니지 경찰들의 이미지는 외국 관광객의 안전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친절하며 내국인 보다 우선으로 보살펴 준다는 것이었다.

튀니지를 여행하면서 고마움을 베풀어준 사람들에게는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고(국기에 경례하듯이) 미소를 띠면서 작은 소리로 ‘함둘레(신의 가호가 있기를)’라고 말하면 아주 좋아 한다. 튀니스에서는 친한 사람들끼리 만나면 서로 껴안고 양 볼을 교차하면서 맞댄다. 남자들끼리, 여자들끼리는 이렇게 인사하지만 남자와 여자 간에는 특별한 관계가 아니면 이렇게 인사하지 않기 때문에 무턱대고 흉내를 내서는 절대 안 된다.

또한 튀니지를 여행하면서 허리나 머리를 굽혀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이 곳 사람들은 알라 외에는 허리나 머리를 굽히지 않기 때문이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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