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끝으로 公職서 모두 은퇴
개발독재 및 압축성장 등
‘격동의 세월’ 온 몸으로 경험

‘베이비 부머’ 상징 역사 속으로
욕심 내려놓으면 ‘人生 제2막’
다시 한번 일어나 파이팅하길…

 

6월 4일자 연합뉴스는 굴곡의 현대사 산증인인 ‘58년 개띠’의 퇴장을 다루고 있다. 내년에 만 60세(환갑)가 되는 1958년생들이 올해 공로연수나 명예퇴직으로 모두 공직에서 은퇴한다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민간영역에서 일했던 동갑내기들은 4~5년 전부터 일선에서 물러났다. 정년 60세가 법제화되기 이전에 대부분의 기업 정년은 만 55세였다. 공직사회의 ‘58년생’ 은퇴는 사실상 우리 사회에서 ‘베이비 부머’의 전면적인 퇴장을 의미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인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태어난 세대를 뜻하는 베이비 부머의 상징이 바로 58년 개띠들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 은희경의 장편소설 ‘마이너리그’가 나왔을 때도 1958년 개띠들이 화제가 됐었다. 당시 신문들은 ‘58년 개띠들의 변두리 인생’ 혹은 ‘삼류(三流)에게 내미는 연민의 손길’ 등의 제목으로 서평을 쏟아냈다. 출판사(창비) 서평 또한 ‘패자부활전 없는 세상에 던져진 대한민국 보통 남자들의 인생유전’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58년 개띠’ 속에 함축된 이미지는 매우 독특하다. 격동(激動)의 한국 현대사를 비슷하게 살아온 57년 닭띠나 59년 돼지띠와는 달리, 유독 1958년생에겐 ‘58 개띠’가 무슨 관용구처럼 따라다닌다.

58년 개띠인 필자도 그 이유와 원인을 알아 보기 위해 몇 차례의 인터뷰를 시도해봤지만 똑 부러지는 결론은 없었다. 아마도 1958년 출생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여기에 ‘개’의 특성이 가미되면서 베이비 붐 세대를 대표하게 된 것으로 짐작할 따름이다.

58년 개띠의 머릿속에는 ‘공간’과 관련한 많은 추억이 있다. 그 공간에는 개발독재 및 압축성장의 편린(片鱗)들이 가득하다. 이들은 끌어주는 선배 흔치 않고, 밀어주는 후배 또한 찾기 어렵던 시대에 일찍부터 혼자 크는 연습을 했다. 자긍심인지 자존심인지 모를 ‘배포’ 하나로 자기 공간을 버텨냈다.

58년 개띠들은 말 그대로 ‘개 같은 인생’을 살았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학교를 다녔고 혹독했던 박정희 정권 아래서 청춘을 보냈다. ‘광주 5·18’ 때는 피 끓던 데모대의 선봉에서, 아니면 진압군(鎭壓軍)의 일원으로 나뉘어 서는 역사의 아픔도 경험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급속한 경제성장 덕에 일자리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가정보다는 일벌레로 살며 사회의 중요한 허리 역할을 맡았던 1997년에는 사상 유례 없는 IMF 경제위기를 맞았다. 이로 인해 빚어진 ‘사오정(45세 정년)’과 ‘오륙도(56세까지 회사를 다니면 도둑놈)’ 신세도 결국은 이들 58년 개띠 몫이었다.

58년 개띠는 ‘나’보다 ‘우리’가 우선인 통념 속에서 묵묵하게 누군가의 아들과 딸로, 또는 누군가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살아 왔다. 작년 연말 몇몇 친구의 주선으로 남녀 갑장(甲長)들이 모여 저녁 술자리를 한 적이 있다. 명칭은 그럴싸하게 ‘마지막 50대 밤을 보내는 58년 개띠들의 합창’이었다.

술잔이 한 순배 돌자 “우리가 졸병일 때는 선배들이 저녁을 먹자고 하면 만사 제치고 따라나섰는데… 요즘 후배들 약속이 있다고 당당히 거절하는 걸 보면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우울한 화제가 더 많았다.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효도 세대인 반면 일찌감치 효도받기는 포기했다거나, 자식들 취업 및 결혼문제 걱정 등등…. TV에서 떠들어대는 ‘100세 시대’가 반갑기보다 오히려 두렵다는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이제 얼마 없으면 공직(公職)에서조차 58년 개띠들은 자취를 감추게 됐다.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는 나름대로 제 역할을 감내하면서 열심히 살아왔다. 어느 노랫말처럼 가는 세월 잡을 수가 없고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없듯이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인생 제2막’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허위(虛威)와 욕심만 내려놓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요즘 핫한 인기를 끌고 있는 유모어가 하나 있다. “너희는 늙어 봤냐? 난 젊어 봤다…”가 바로 그것이다. 참으로 유쾌하고 짜릿한 뒤집기 한 판이 아닐 수 없다.

굴곡(屈曲)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 58년 개띠들이여, 다시 한 번 일어나 파이팅하자.

사족을 붙인다면 지난 연말 헤어지며 다시 만나자고 굳게 기약했건만 여태 소식이 없다. 올해가 가기 전에 그 약속 꼭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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