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 기치 내걸어 정권교체
개혁 주도할 장관 인사 놓고 잡음
후보자 다수 각종 비리의혹 논란

일부 청문보고서 채택 안 됐지만
임명 강행해 청문회 무용론 제기
국민대표기관 국회 의견 존중해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촛불 민심의 핵심 키워드는 ‘적폐 청산’이었다. 당시 정치권을 비롯한 우리사회 곳곳에서 자행되는 폐단과 잘못된 관행들을 타파하라는 국민적 요구가 거세게 분출됐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선서식에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고 말했다. 사회 개혁과 적폐 청산을 강조했다. 그런데 개혁과 적폐 청산을 주도할 새 정부 장관 인사(人事)에 잡음이 일고 있다. 사전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고 내세운 장관 후보자들의 흠결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논란이 뜨겁다.

문 대통령은 적폐 청산의 일환으로 지난 대선 당시 공약으로 고위 공직자 5대 원칙을 제시했다. 병역면탈,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논문표절 대상자를 인선에서 배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첫 인사로 단행한 이낙연 국무총리를 필두로 장관 후보자의 상당수가 ‘5대 비리’에 해당됐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위장전입 등 문제로 국회 인사청문회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지만 청와대는 임명을 강행했다.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몰래 혼인신고’ 문제가 불거지자 자진 사퇴했다.

인사 청문회를 앞둔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논문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그는 2006년 김병준 교육부 장관의 논물 표절 의혹이 나왔을 때 교수노조 성명을 주도해 취임 18일 만에 물러나게 한 바 있다. 이로 인해 김 후보자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전형”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음주운전과 임금체불 문제 등이 지적되고 있다. 국방부 장관 후보자인 송영무 전 해군참모총장의 경우 위장전입에 더해 고액 고문료 논란과 납품비리, 논문표절 등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제기되고 있다.

이들 후보자들은 장관 임명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여·야 관계가 삐걱대 정국(政局)이 경색될 가능성이 있다. 갈 길 바쁜 문재인 정부로서는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새 정부도 인사 문제로 국정 운영의 발목이 잡히는 모양새다. 야당 탓을 할 것은 아니다. 인사검증을 소홀히 한 청와대 책임이 크다.

새 정부 ‘인사 난맥’에 국민들의 실망이 커지고 있다. 시중에서는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1년만 하면 이 나라의 적폐가 어느 정도 청산되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청문회에서 후보자들의 적폐행위가 낱낱이 까발려 창피를 당하면 사회의 도덕성 강화에는 도움이 된다는 역설(逆說)이다. 그만큼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후보자들이 많다는 말이다.

새 정부는 인사에 있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청문보고서 채택이 안 된 후보자를 억지로 임명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협치’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후보자가 장관이 된들 그가 추진하는 각종 개혁에 신뢰와 힘이 실릴 수 없다. 그러면 적폐 청산은 물 건너가게 된다. 국회가 거부하는 후보자는 과감히 쳐내야 한다. ‘발목잡기’ 운운하며 자신들의 인사 실패를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사전 검증 등 잘못을 스스로 시정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청와대는 야당의 반대 속에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국민 눈높이의 검증을 이미 통과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국민의 높은 지지율을 과신한 오만함으로 비춰졌다. 국민 여론을 근거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력화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어느 정권이든 초기 국정지지율은 고공행진 한다. 그것에 취하기 시작하면 탈이 난다. 우리나라 역대 정권은 예외 없이 출발은 거창했으나 끝은 초라했다. 신기루 같은 지지율에 취해 독선과 아집의 정치를 한 결과다. 문재인 정부는 그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새 정부는 겸허한 마음으로 인사부터 제대로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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