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불거지는 ‘행복주택’ 논란
건립반대 아닌 입지·원칙의 문제
道 일방적 강행…갈등 부추겨

제주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
임대주택 건립 써버리는 건
미래 세대·역사에 罪를 짓는 일

이른바 ‘행복주택’을 둘러싼 논란이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져 나온다. 지역의 대학총학생회 등 일부를 제외하곤 반대 의견이 대다수다.

그렇다고 젊은 세대 등 주거 취약자를 위한 ‘행복주택’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건립지가 왜 하필 시민복지타운 내 시청사부지여야 하는 가다. 행복주택은 이름만 그럴싸할 뿐 공공임대주택에 불과하다. 제주도는 시청사부지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교통 편리성 등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 부지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마련되었는가를 신중하게 고려했다면 이런 결정을 쉽사리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민복지타운이라 불리는 이곳은 낡고 비좁던 제주시 청사이전과 녹지공간 확보 차원에서 지난 2001년 도시기본계획으로 결정됐다. 당초의 구상은 신제주와 구제주를 잇는 가교(架橋) 역할과 함께 ‘화합의 장(場)으로서의 광장’을 꿈꿨다. 그러나 직선 시장이 바뀌며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원대했던 구상도 무산됐다. 사업 추진 과정에선 소유자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토지를 강제 수용당하는 아픔도 뒤따랐다.

그나마 시청사가 계획대로 이전됐다면 오늘과 같은 논란은 없었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2011년, 당시 김병립 제주시장은 시청사 이전 백지화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막대한 이전비용과 옛 도심의 공동화(空洞化) 등을 내세웠지만 속내는 달랐다.

가장 큰 원인은 다름 아닌 주변 상권 등의 반발 때문으로, 민선시대 표(票)를 의식한 행정이 손을 들고 만 것이다. 이후 시청사 이전은 물 건너갔다. 그리고 작금에 이르러 이전 사업비의 50%인 600여억원을 들여가며 주변 건물을 매입하거나 청사를 증개축한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

이와 함께 시청사에 버금가는 투자유치를 장담했던 제주시의 약속 또한 유야무야됐다. 특기할 것은 그간 관광환승센터 등 여러 활용방안이 나왔으나 모두가 ‘공공성 부족’으로 무산됐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희룡 도정이 들고 나온 게 바로 ‘행복주택’이다.

원래 행복주택은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으로 제주의 경우 주객(主客)이 전도될 정도로 의욕이 너무 앞섰다. 대표적 공공자산인 시민복지타운의 용도를 바꾸려면 반드시 도민들 의견부터 수렴했어야 했다. 그런데 제주도는 일단 국토부 공모에 응모한 후 발표하는 수순을 뒀다. 말이 좋아서 ‘선(先) 정책결정 후(後) 의견수렴’이지, 사실은 일방통행식 강행이었다. 모든 문제의 발단도 여기서 비롯됐다.

행복주택이 꼭 시청사부지여야 하는가란 질문에 도관계자는 이곳 말고 적합한 대체부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치졸한 변명과 핑계에 불과하다.

현재 제주시청 서쪽 탐라장애인복지회관 인근만 하더라도 약 400호 정도를 건립할 수 있는 국공유지가 있다. 건입동 해양경찰청부지에도 700호가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한다. 특히 제주시내 중심가와 20분 거리에 있는 도깨비도로 주변엔 마라도 면적의 6배가 넘는 LH공사 소유의 땅이 있다. 도정이 확고한 의지만 갖고 있다면 얼마든지 협의를 통해 행복주택을 건립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외면하고 시청사부지만 고집하는 행복주택이 과연 시청사 이전과 비견할만한 공공성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앞으로는 현실적으로 확보가 불가능한, 따라서 미래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겨둬야 할 땅을 왜 임대주택 용지로 쓰려고 안달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각에선 “행복주택은 청년정책을 가장한 전시행정으로 ‘선거용 전략’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등 정치권에서 “행복주택 강행은 찬반 주민 간 논쟁과 함께 청년·기성세대 간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다”며 “원점에서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더욱이 도가 최근 시민복지타운의 조성 취지를 무너뜨릴 수 있는 건축규제 완화 방침을 내놓자 반대여론을 돌파하기 위한 꼼수라는 주장이 나오는 등 행복주택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은 앞으로 더 첨예하게 번질 전망이다.

우리는 지난 1980년대 중반 개발 광풍에 파묻혀 수려했던 탑동바다를 매립해버린 ‘원죄(原罪)’를 지니고 있다. 주거 취약자를 위한다며 제주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을 임대주택 건립에 써 버린다면 미래 세대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원희룡 지사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려가 큰 행복주택과 관련 이제 그만 ‘고집’을 꺾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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