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빌라 화재로 중증장애인 사망
현장 자력 탈출 못해 비극
인권 현장 ‘사회적 타살’ 지적 공감

지진 등 발생 시 ‘취약계층’ 어떡하나
‘장애인 우선’ 매뉴얼 부재 현실
기본적 장치는 행정의 선량한 의무

 

“아빠, 지진 나면 우리 가족은 다 죽는 거야? 아빠는 장애인인데!” 대략 7년 전, 지금은 중학생인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 나에게 던진 질문이다.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해 내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려는 찰나 ‘결정타’가 날아왔다. “아빠가 우리 가족을 구할 수 있어요?”

나의 대답은 이랬다. “걱정마라. 아빠가 가족을 다 구할 거다. 지진을 생각해서 무너지지 않게 설계된 집으로 이사 왔잖아. 가족이 피할 곳도 다 생각해 놨어. 어딘지 알아? 바로 앞 초등학교 운동장이야”

일본의 지진과 츠나미(지진해일)를 텔레비전에서 본 딸이 불안감에 ‘미덥지 못한’ 아빠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질문에 ‘아빠의 품격을 갖추고’ 자신감 넘치게 말했지만 장애3급의 아빠의 현실에서 지진이 나면 과연 내 몸 하나 건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진심’이었다.

지난해 2월 제주시 용담동 빌라에 거주하는 하반신 마비 중증장애여성이 혼자서 잠을 자고 있다가 화재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처럼 화재에 의한 장애인 인명피해는 자력탈출이 불가능하여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과 같이 24시간 도와주는 활동보조인이 곁에 있었다면 목숨을 건질 수도 있지 않았나 싶기에 ‘사회적 타살’이라는 인권현장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도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인데 지진이 나면 어떨까. 동사무소에 전화해서 장애인 대피 매뉴얼이 있는지 확인해 보면 “글쎄요”라고 답변할 가능성이 크다.

학교 현장도 마찬가지다. 지진발생시 장애학생에 대한 대처 매뉴얼이 별도로 있는지, 내용의 부실함을 알게 되면 역시 곤혹스러울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 행정자료를 보면 재해위험지구의 마을에는 약 1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재해발생 시 신속히 이동하기 어려운 노인·어린이·장애인 등이 1000명 이상이라고 한다. 지진 발생시 국민행동요령을 보면 노인·장애인·어린이 등을 먼저 구조하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국민행동요령이지 ‘행정행동요령’이 아니다. 도내 1000명 이상의 재해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지진발생시 행정행동요령이 있기는 한 걸까.

선진 외국의 경우는 확실해 준비돼 있다. 미국의 경우 ‘ADA(장애인법)’에서 장애인 지원에 대한 포괄적 접근의 근거를 마련하고 재난관련법령과 계획에서 구체적으로 이를 명시하고 있다. 연방재난관리청에 장애통합조정국을, 주단위에 전체 10개의 지역사무소를 두고 있다. 독일은 ‘장애인을 위한 피난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재난상황 시 장애인을 우선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재난 대비 기본 법률인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의거하여 관련 규정을 두고 있으나 이 계획에 장애인 안전취약계층에 대한 내용은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최근인 2015년 제시한 정부의 ‘안전혁신 마스터플랜 5대 전략, 100대 과제’에도 장애인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국민들에게 국민행동요령은 요구하면서 정작 법제에서 국가의 ‘장애인 우선’ 매뉴얼이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안전대책 취약성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에서도 지적한 사안이다. 2014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로부터 ‘자연재해와 위급상황에 대한 구체적 전략 부재, 각종 법령에 재난 대피체계가 없으며 보편적인 접근성과 장애포괄성이 더욱 보장될 수 있도록 포괄적 계획을 채택하고 시행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재난에 대한 청와대의 컨트롤타워기능을 제대로 회복시키겠다고 공언했고 재난취약계층에 대한 별도대책 마련도 약속했다. 이와는 별개로 원희룡 도정도 지진·슈퍼태풍·온난화 등 제주도가 당면하고 있는 지리적 특수성을 감안하여 재난·재해취약계층 행정대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원 지사가 관심을 갖고 추진하고 있는 유니버설디자인정책에도 반영돼야 한다. 장애인은 재해에 취약하다. 장애로 인한 불가항력을 최소화하고 보호할 수 있는 기본적 안전설계와 장치는 있어야 한다. 이는 행정의 선량한 의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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