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신 연구사의 제주식물이야기
(39)일색고사리

▲ 검은오름 풍혈과 일색고사리.

무더위에 나뭇잎들이나 풀잎들이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연못들이 바닥을 보이고 있어 식물들이 사람보다 더 어려운 여름나기를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런 무더위 속, 숲으로 피서를 간다면 곶자왈만한 장소도 없을 것이다. 곶자왈 중에서도 기반지형의 변화가 많고 암괴들이 크게 형성된 곳 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크고 작은 함몰지형이 발달하는 곶자왈, 이곳의 터줏대감 격인 식물로 일색고사리가 있다.

일색고사리는 관중과(科)의 다년생인 상록성 양치식물이다. 처음 이 식물이 보고될 당시에는 식물학자에 따라 “일색고사리”와 “양면고사리”라는 이름으로 다르게 불리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일색고사리를 정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분류학적으로는 쇠고사리속(屬)에 속하며, 이 속에는 저지대의 곶자왈이나 계곡에서 가장 많이 관찰되는 가는쇠고사리가 있고, 그 외로 쇠고사리, 좀쇠고사리, 털쇠고사리 및 울릉도에 자라는 털비늘고사리 등이 있다.

일색고사리의 분포에는 흥미로운 점이 있다. 국내 분포를 보면 제주도와 울릉도에만 자라고 있으며, 국외로는 일본에만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양치식물의 약 95%정도는 일본과 공통적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지만 이런 지리적 분포특징을 보이며 분포하는 양치식물은 처녀이끼과(科)의 “난장이이끼”라는 식물 정도가 있을 뿐이다. 고사리 종류에 관심이 많다면 식물지리학적으로 매우 특이한 분포를 보이는 경우로 좋은 연구소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아진다.

▲ 교래 일색고사리군락.

제주지역에서 일색고사리의 분포를 보면 한라산의 계곡과 곶자왈지역으로 한정되고 있다, 한라산의 계곡중에서도 낙엽활엽수림이 형성되어 있고 조금씩 물이 흐르거나 습도가 매우 높은 계곡사면에 자라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편은 아니다. 이보다 더 접근이 용이한 지역은 곶자왈인데, 낙엽활엽수림이 형성된 지역에 비교적 흔하게 자라고 있다. 곶자왈지역은 일반적인 일색고사리의 자생지보다 해발고도가 낮지만 특유의 함몰지형이 형성되어 분포가 가능하다.

고사리 일색인 곶자왈에서 일색고사리는 해발고도가 비교적 높은 교래리나 애월곶자왈지역에 대부분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곶자왈 내부에도 함몰지형을 따라서만 분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토양형성이 너무 많거나 지형의 상부보다는 함몰지형의 하부 쪽이나 사면에 분포를 한다. 반면 산양리나 무릉리 처럼 저지대에 위치한 곶자왈에는 이런 함몰지형에 밤일엽군락이 형성되어 차이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일색고사리는 낙엽활엽수림이 형성된 곶자왈의 하층을 대표하는 식물로 인식되고 있다. 그 외로 일색고사리의 분포지로는 세계유산 거문오름 분화구 함몰지형이나 풍혈 등도 있어 어렵지 않게 관찰 할 수 있다.

▲ 애월곶자왈 일색고사리군락.

일색고사리는 약 40~90cm 까지 자라서 고사리류 중에는 비교적 큰 키를 보이는 종류이다. 자생지에서 보면 대체로 크게 무리지어 자라는 모습이 자주 관찰되는데 이는 땅속에 뿌리줄기가 뻗으면서 듬성듬성 잎이 달리는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지상부의 잎몸은 그 길이가 약 40cm 내외 너비가 30cm 내외로 자라 끝이 뾰족한 형태이며, 상록성으로 겨울에도 관찰이 가능한 특징이 있다. 신기한 점은 일반적인 고사리종류와는 달리 앞면과 뒷면의 색이 거의 같다는 특징이 있는데, 일색고사리라는 이름이나 양면고사리라는 이명 역시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진다. 참고로 양면고사리는 이름 일본명을 그대로 표기한 것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꽃이 피는 식물과 달리 양치식물은 관상 포인트를 딱히 어디에 두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작은 종류들은 그 자라는 특성에 따라 석부작을 하여 연중 감상을 할 수 있지만 일색고사리처럼 크게 자라는 종류는 아무래도 관상용으로는 부적합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크기가 큰 종류라도 관중이나 나도히초미 종류처럼 새순이 나오는 시기에는 현란한 꽃을 피우는 식물에 버금가는 매력을 가지기도 하고 신비감이나 역동감이 드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이런 점이 고사리 마니아들을 설레게 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이번 여름, 무더위 속 숲속 피서를 계획하고 있다면 곶자왈의 숲길에 숨겨진 보물들을 찾는 일도 잠시 더위를 잊는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모두 고사리 일색이지만, 산양곶자왈이나 저지곶자왈 같은 낮은 지대 곶자왈 숲길이라면 밤일엽군락을, 교래곶자왈 같은 중산간지역의 곶자왈 숲을 찾는 다면 일색고사리군락을 찬찬히 즐기며 걷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 김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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