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양공 전쟁에 임하며
君子 도리만 내세웠다 참패
‘이상과 현실의 괴리’ 간과한 결과

北, 또 ICBM급 미사일 도발
‘8월 한반도 위기설’ 나돌아
어쩌다 이 지경까지 몰렸는지…

중국 고사성어에 ‘송양지인(宋襄之仁)’이란 말이 있다. 이를 직역하면 ‘송나라 양공의 어짐’ 쯤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그 속뜻은 아주 다르다. 전쟁에서 아무 의미 없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쓸데없는 인정을 베풀거나 배려를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비웃는 것이기 때문이다.

춘추시대 송나라 환공이 세상을 떠나자 뒤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이 바로 양공(襄公)이다. 양공 7년, 송나라 땅에 운석이 비처럼 쏟아졌는데 이를 본 양공은 자신이 패자(覇者)가 될 징조라며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웃인 제(齊)나라의 혼란을 틈타 쳐들어가 추종 세력을 만드는 등 일부 성과를 거뒀다.

이를 기화로 양공은 점점 교만해졌다. 이복형이자 재상인 공자 목이가 “작은 나라가 패권을 다투는 것은 화근”이라며 간언했으나 듣지 않았다. 급기야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하나인 초(楚)나라와의 싸움에서 사단은 터졌다.

당시 송나라의 군사력은 초나라에 미치지 못했다. 초나라가 대군을 파병하자 양공은 홍수(泓水)라는 강에서 맞아 싸우기로 했다. 마침 송나라 군대가 먼저 홍수에 도착했고, 초나라 군대는 막 강을 건너고 있었다. “저쪽은 수가 많고 우리는 적으니 강을 건너기 전에 쳐야 합니다”고 신하들이 건의했으나 양공은 듣지 않았다.

초군이 강을 건너오자 “적이 미처 진용을 가다듬기 전에 치면 적을 지리멸렬시킬 수 있습니다”며 공격할 것을 다시 간했다. 이에 양공은 “군자는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곤란하게 만들지 않고 괴롭히지 않는 법이다”라고 일갈하며 이를 외면했다.

양측이 전열을 가다듬은 후 전면으로 맞붙었다. 결과는 수적으로 열세였던 송나라의 대패로 끝났다. 당시 사마(司馬)였던 자어가 탄식했다. “싸움(전쟁)이란 승리하는 것이 공을 세우는 것이다. 무슨 예의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왕의 말대로 해야 한다면 처음부터 싸울 필요도 없이 노예가 되었어야 하지 않은가….” 양공은 이 싸움에서 얻은 부상으로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다.

중국의 역사서인 사기(史記)를 비롯해 좌전(左傳)과 십팔사략(十八史略) 모두 ‘송양지인’의 고사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전하는 것은 송나라 양공의 어짐(仁)이 아니라,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꼬집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지난달 28일 한밤중에 사거리 1만㎞ 이상으로 추정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 2차 도발을 감행했다. 1만㎞ 이상이 확인되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거리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최후통첩선인 ‘레드라인(금지선)’에 다가선 것. 이른바 ‘8월 한반도 위기설’이 고조되는 이유다.

이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 위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특히 8월 하순 진행될 연례 한미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에 미군의 첨단 전략 자산이 대거 참가할 예정이다.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전략폭격기 B-1B 랜서 외에도 B-2 스텔스 폭격기와 핵잠수함 동해 배치 등이 그 면면이다.

또 미 해군의 대테러 전담 특수부대인 네이비 실(NAVY SEAL) 16팀과 미 육군 제10산악사단 경보병 2개 대대 등 최정예 부대가 한반도에 이미 파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참수(斬首)작전 및 핵시설 점거’ 등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 미국 측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군사적 옵션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청와대 관계자 역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4기 추가배치를 묻는 질문에 “상황이 엄중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앞서 거론된 군사 옵션 등을 북한과 중국을 압박하는 ‘외교적 카드’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만 유엔 안보리를 중심으로 전개될 미·중간 제재 논의가 향후 북핵 프로세스의 분수령이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만약 중국이 고강도 대북 제재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중국 기업들을 겨냥한 마지막 보루인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의 칼을 뽑아들 가능성이 커져 보인다. 이게 실제 이뤄진다면 그 파장은 경제 등 전반으로 번지며 ‘한반도 위기설’은 자칫 현실화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엄중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몰렸는지, ‘송양지인’이란 고사성어가 문득 떠오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