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상징적 공간 불구 사실상 ‘방치’
스토리·콘텐츠 강화 문화공간으로

매주 토요일 오후 제주목관아가 분주해졌다. 원도심 일대를 둘러보는 기행과 관덕정 광장에 플리마켓이 열리면서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고 해질 무렵 목관아에 불이 켜지면 여름 더위를 시켜줄 고즈넉한 공연이 시작된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문화재의 가치를 되돌아보고 시민들과 함께 그 보전과 활용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올 여름에 기획된 ‘목관아는 살아있다’ 행사다.

전국적으로도 이러한 시도들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서울에서는 궁궐 문화콘텐츠의 다양화를 목적으로 문화유산의 활용과 가치 확산을 위해 마련된 고궁 야간개방 프로그램이 인기 만점이다. 경복궁의 ‘별빛야행’, 창덕궁 ‘달빛기행’은 티켓 예매가 몇 분 만에 동이 날 정도다.

얼마 전 창덕궁 달빛기행을 직접 다녀왔다. 달빛을 조명삼아 발아래를 비춰줄 청사초롱을 들고 아름다운 야행이 시작됐다. 금문교를 지나 인정전을 거쳐 낙선재·상량정·부용지·애련정에 이어 마지막 연경당의 전통 국악공연까지 즐기면 2시간 정도의 투어가 끝이 난다.

고궁과 주변 야간경관이 잘 어우러지게 설치된 조명에서부터 동선을 따라 관람객들의 발길을 어디서 머물게 할지, 머무는 지점에서 들려줄 역사문화적인 스토리는 무엇이고, 관람객이 느끼게 될 감동 포인트는 무엇일지에 대해 세심하게 계획되고 짜여졌다.

인정전에서 바라본 대도심 야경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듯 묘하게 어울렸다. 그리고 조선 황실의 마지막 공간이었던 낙선재의 고즈넉함, 상량정에서 들려주는 달빛아래 대금연주와 부용지와 애련정의 밤의 운치, 연경당에서의 다과와 함께 즐기는 국악공연까지 관람노선을 따라 창덕궁이 품고 있는 조선왕실의 희로애락과 무수한 사연들이 더 가까이 다가오듯 창덕궁의 여름밤을 온전히 느끼기에 충분할 만큼 그 연출은 놀라움과 감동 그 자체였다.

우리는 어떠한가? 서울에 경복궁이나 창덕궁이 있다면 제주에는 제주목관아와 관덕정이 있다. 제주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역사적인 건물이다. 1991년부터 본격적인 발굴 정비사업으로 제주목관아에 소요된 예산만도 215억원이 넘고, 복원에 소요된 기와 5만여장은 모두 도민들의 헌와(獻瓦)로 모아졌을 만큼 도민들에게는 제주의 심장과도 같은 상징적 공간이다.

그러나 복원이후 아직까지 원도심에 우두커니 자리 잡고만 있을 뿐 사람의 온기나 체취가 느껴지질 않고 생경스럽기까지 하다. 밤이 되면 원도심을 더욱 어둡게 만드는 공간이 되고 있다.

제주목관아와 관덕정에 생기를 불어넣을 방안이 필요하다. 서울 궁궐기행의 감동은 있는 그대로의 문화재가 아닌 다양한 콘텐츠를 넣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연출로 문화재의 가치와 의미를 높였기에 크게 다가왔다.

제주목관아와 관덕정에도 스토리를 넣어 특화된 문화체험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 또한 기획 개최되어 끊임없이 사람들이 드나들도록 해야 하고, 주변 조명을 설치하고 야간에 개방하여 도민들에게 친숙한 공간이 돼야 한다. 또한 관덕정 앞도 과거 도민들이 여겨왔던 살아있는 광장으로 회복시켜 사람들이 즐겨 모이도록 하자.

전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 교수는 “광장을 잃어버린 도시는 커다란 상실의 도시”라고 했다. 관덕정 앞마당을 이대로 둔다면 결국 제주인의 커다란 정신적 손실이라고까지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문화재가 각종 규제 등에 따른 지역발전의 걸림돌이라는 부정적 인식, 관광버스가 잠시 멈춰 설 때만 이용되는 문화재 공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문화재가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되려면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문화재활용의 콘텐츠와 연출 노력이 함께 해야 한다. 복원사업 당시 기와 5만여장 전량을 헌와해 준 30여만명 도민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생각하면, 제주목관아를 이대로 계속 잠자게 둘 순 없는 일이다. 제주목 600여년의 이야기를 목관아에서 어떻게 재미있게 풀어낼 것인가? 이것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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