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간이 우선이다] <4> 놀이터를 바꿔나가는 공동체들

순천시 ‘모험적 요소’ 넣은 제2호 기적의 놀이터 개장 
인천 배다리마을 주민들 버려진 공유지를 놀이공간으로
도봉구 초안산엔 서울 첫 모험놀이터 등장
청주, 전주, 울산 등 곳곳서 놀이터 의미 있는 생활공간으로 주목

▲ 제2호 기적의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순천시 제공

놀이터에 재미와 모험적 요소를 얹는 지자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아이들의 행복과 균형적인 성장을 위해서다. ‘표’가 되는 것도 아니고, 지역 사회의 주된 관심사도 아니지만 자치단체장의 역할이 주민의 행복을 키워주는 데 있음을 인식하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편집자 주>

△저 아래 남도에선 ‘기적의 놀이터’
지난해 제1호  ‘기적의 놀이터’(연향2지구 호반3공원)의 문을 연 전라남도 순천시는, 최근 2호(해룡면 신대지구)를 개장하는 등 2020년까지 10개소를 만든다는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하고 있다. 

1호 ‘엉뚱발뚱’ 기적의 놀이터가 경사진 지형에 물과 돌·모래·통나무를 둔 자연 친화적 놀이터였다면, 2호는 스페이스 네트·워터 슬라이드·잔디 미끄럼틀·바구니 그네 등 도전과 모험정신을 기를 수 있는 놀이시설을 채워 넣었다. 그래서 이름도 ‘작전을 시작하∼지’다.

2호 역시 인근 율산초등학교 학생들의 디자인 제안과 감수를 받아 만들어졌다. 기적의 놀이터의 큰 주제인 ‘스스로 몸을 돌보며 마음껏 뛰어놀자’와 ‘재미와 도전정신’이라는 이번 놀이터 조성의 제일 가치를 창의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충훈 순천시장은 “예전에는 공장을 많이 유치하는 사람이 유능한 시장이었지만, 이제는 ‘주민 행복’이 행정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며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에 아이들의 웃음을 만들어내는 일도 시장의 중요한 임무”라고 말한다.

▲ 인천 배다리 생태놀이숲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스페이스 빔' 사이트에서 발췌.

△‘공유지 놀이터 운동’의 첫 걸음
저 아래 남도에서 제1호 기적의 놀이터가 만들어지고 얼마 후, 인천의 한 지역에서는 공유지에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를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서다.

동인천역에서 도원역 방향으로 가다 보면 철교 근처에서 만나는 인천 동구 금창동 배다리마을. 인천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참고서를 사기 위해 여러 번 들렸을 곳이다. 이 마을 한 가운데에는 오래 전부터 개발한다고 했다가 아직 그대로인 땅이 있었다.

지금은 잠자리가 날아다니는 녹색 땅이지만 10년 전쯤에는 동구와 중구를 잇는 산업도로를 건설한다며 속흙이 보이도록 파헤쳐 졌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마을 사람들과 지역미술연구모임인 ‘스페이스 빔’은 ‘배다리 공유지’를 생태적으로 가꾸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오다, 어느 날 놀이터를 생각했다.

지난해 여름, 아이들을 포함한 주민과 작가들은 톱과 사포를 들고 합판을 잘랐다. 2m의 넓적한 그네 구조물이 만들어졌다. 통나무와 줄을 이어 놀이집도 세웠다. 오솔길을 따라 미끄럼틀이 만들어지고, 해먹 평상과 작은 모래 놀이터도 들어섰다. 공유지는 어느새 놀이터로 변신했다. 그 사이, 배다리 마을에서는 공유지에 너무 큰 놀이시설이 들어선 것 아니냐는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생태 놀이터가 문을 열었지만 산업도로 공사를 재개한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면서 주민과 문화예술인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주민들은 ‘배다리 생태놀이숲’이 산업도로 공사로 생긴 마을의 생채기를 회복하고, 아이들에게 안심하고 놀 수 있는 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마을의 의미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 지난해 10월 준공된 강원도 강릉 생태놀이터 '아이뜨락'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다. 생태놀이터는 총 5억 원을 들여 녹색도시체험센터 이젠(e-zen) 2500㎡ 야외공간에 기차 생태놀이터를 기본 콘셉트로 조성됐다. 연합뉴스

△자연과 어우러진 놀이시설, 재미는 두 배
비슷한 시기, 충북 청주시도 생태놀이터 ‘아이뜨락’의 문을 열었다.

청주시는 환경부가 진행하는 ‘자연생태공간(생태놀이터) 조성사업’을 통해 서원구 수곡동의 방죽말어린이공원을 생태놀이터로 바꿨다. 생태놀이터 조성사업은 녹지가 부족한 도시지역에 소규모 자연공간을 조성하고 이를 어린이의 놀이공간과 주민 휴식공간으로 제공하는 사업이다.

청주시는 어린이 모험공간에 거미 놀이 벽, 통나무 미로놀이터, 멀리뛰기 놀이터, 모래 놀이터, 하늘다리 등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기구를 시설했다.

책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나오는 집처럼 나무 위에 만들어진 놀이 집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채웠다. 공간 어디에나 즐비한 흙과 풀, 나무는 아이들이 다른 놀이를 고안해내는 중요한 밑 재료가 되어 주었다.

△서울시 첫 모험놀이터 ‘뚝딱뚝딱 놀이터’
올 봄, 서울시는 도봉구 초안산에 서울 첫 선진형 자연친화놀이터를 개장했다. 인공 놀이시설 대신 모닥불을 지펴 고구마와 밤을 구워 먹을 수 있는 일종의 모험놀이터다. 명칭 공모에서도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낸다는 동적인 의미를 담아 ‘뚝딱뚝딱 놀이터’를 선정했다.

초안산 모험놀이터는 낡고 개성 없는 놀이터를 창의적 공간으로 바꾸는 서울시의 ‘창의어린이놀이터 재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2015년 이후 50여개 이상의 놀이터를 재조성한 가운데, 초안산에는 기존 자연지형을 살린 모험놀이터를 조성했다.

뚝딱뚝딱 놀이터를 추진한 이동진 도봉구청장의 방 탁자에는 ‘학교가 안전했으면 좋겠어요’ ‘놀이터를 만들어주세요’와 같이, 아이들과 주민들이 직접 쓴 희망 메시지가 빼곡히 붙여져 있다. 이런 바람을 구정에 반영하기 위해 그는, 아동친화 관점에서 행정을 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도봉구는 지난해 11월 유니세프가 정한 아동친화도시 10가지 원칙을 조건 없이 모두 통과하며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로 인증받기도 했다.

이런 일을 해낸 이동진 도봉구청장의 생각도 조충훈 순천시장과 흐름을 같이 한다. 이 구청장은 “민주주의 영역이 자치 영역으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주민 생활과 맞닿은 부분에서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아동 또한 권리를 가진 시민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지역에서도 줄잇는 관심
놀이터에 주목한 지지자체는 하나둘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전주시는 최근 어린이 놀이시설이 없던 아중어린이공원을 생태놀이터로 조성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울산 남구는 달동 느티공원에 짚라인·징검다리 등 모험 놀이시설을 설치하고 자연소개 놀이시설을 확충하는 등 내달부터 낡은 놀이터 7곳에 특색 있는 스토리를 입힌다.

인천 배다리마을처럼 유휴지를 놀이터로 만들어 지역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시도는 서울 동북지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 동북4구 도시재생협력지원센터’는 성북·강북·도봉·노원 등 동북4구의 도시재생에 있어 유휴공간을 지역 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놀이터 조성 방향을 고민해나가고 있다.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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