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방공 훈련마저 ‘강 건너 불구경’
국민·정부 모두 ‘安保 불감증’ 심각
신속 대응 일본과 너무 대조

북한, 최대 규모 핵실험 전격 감행
‘核 위협’ 엄포 아닌 현실로
청와대 일각 ‘레드라인’ 타령만…

 

 

지난달 23일 실제 상황을 가정한 민방공 대피훈련이 서울 등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됐다. 이번 훈련은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 속에 을지연습과 연계해 이뤄졌다. 오후 2시 공습경보가 울렸다. 연막탄 등이 터지는 가운데 사람들이 입을 막은 채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강 건너 불구경’하는 사람도 눈에 많이 띄었다. 지하로 대피하라는 안내를 대놓고 무시하거나 귀찮다는 듯 달아나기도 했다. 이동이 통제된 15분을 못 참아 거리를 활보하고, 공습 사이렌이 울렸으나 차량들은 버젓이 운행됐다.

이날 훈련을 참관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민의 심각한 ‘안보 불감증(不感症)’을 우려했다. 지금처럼 무심하고 둔감한 사람들의 경우 막상 일이 터졌을 때는 훨씬 허둥대고 아무것도 못하게 될 것이란 탄식이었다.

안보(安保)와 관련한 불감증은 정부 또한 예외가 아니다. 북한이 8월 29일 평양 순안 일대에서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을 때다. 이 미사일은 일본 상공을 지나 발사 지점에서 약 2700㎞ 거리인 북태평양에 떨어졌다. 당시 일본에서는 미사일 발사부터 낙하까지의 상황을 NHK 등을 통해 생중계했다. 미사일이 도호쿠(東北) 방향인 것으로 추정되자 부근을 지나던 신칸센(新幹線) 등이 운행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우리 일각에선 아베 정부가 이른바 ‘북풍’을 위기 타개책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한반도 정세에 대한 위기감을 조장해서 정국 운영에 이용한다는 것이다. 설혹 그렇다고 치자. 과연 북한과 코앞에서 대치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는 어떠했는가. 미사일 발사 발표조차 일본보다 늦었을 뿐 아니라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 ‘태연자약’함에 외신들이 깜짝 놀랄 정도다.

그리고 일요일인 3일, 마침내 북한이 역대 최대 규모의 6차 핵실험을 전격 감행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이날 오후 3시 특별 중대보도 형태로 “9월3일 12시 북부 핵시험장에서 대륙간탄도로케트(ICBM) 장착용 수소탄(水素彈) 시험을 성공적으로 단행했다”며 핵무기 개발을 완성했다고 천명했다.

이에 앞서 기상청 국가지진화산종합상황실도 “3일 오후 12시29분께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진앙 북위 41.30도, 동경 129.08도)에서 규모 5.7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기상청은 이번 핵실험 규모는 5.7로, 지난해 5차 핵실험(5.04) 때보다 위력(威力)이 5~10배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쉽게 말하면 6차 핵실험의 위력이 10㏏(킬로톤, 1㏏=TNT 1000t) 급이던 5차 실험보다 크게 높아져 최소 50㏏에서 최대 100㏏ 이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50㏏만 하더라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투하된 폭탄의 2배 이상 규모다.

전문가들은 5차 핵실험이 원자탄과 수소탄의 중간 단계인 ‘증폭핵분열탄’이었다면, 이번 것은 위력의 강도로 볼 때 북한의 주장대로 ‘수소탄’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는 북핵의 결정적 관건인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북의 ‘핵(核) 위협’이 현실로 성큼 다가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은 너무 담대하거나, 아니면 ‘강심장’을 지녔는지 평온하기 그지없게 보인다.

이번 북한의 6차 핵실험은 문재인 대통령이 밝혔던 ‘레드라인(Red line, 한계선)’과 직결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서 무기화하게 되는 것이 레드라인”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문재인 대통령은 3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직접 주재하고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강력한 응징방안을 강구하겠다”며 북한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청와대 한 켠에선 “아직도 (레드라인까지) 길은 남아있다 본다”고 판단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북한의 거듭된 도발상황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의 대화 기조는 유지한다는 게 청와대의 기본 인식으로 읽혀진다. 자유한국당 등 야권에서 “안보 불감증에 걸린 문재인 정부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밤잠을 설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 와중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폐기까지 거론하고 있다. 6차 핵실험과 관련해선 “북한과의 대화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지만, 그 구멍마저 무너져 내리지나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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