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를 ‘틀린 것’으로 모는 사회
권위주의 낡은 유산 ‘블랙리스트’
‘이명박근혜 정부’서도 잔존

MB때는 국정원이 직접 주도
“민주주의 부정” 명백한 범죄행위
철저한 수사·처벌로 적폐청산을…

 

 

사람들에게 ‘+’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며 그 의미를 물었다. 수학자는 덧셈이라 말했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답했다. 목사는 십자가라 하고, 교통경찰은 사거리를 뜻한다고 했다. 또 간호사는 적십자라고 하며, 약사는 녹십자라고 답한다는 것이다. ‘다름과 틀림’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예화(例話)다.

하나의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제각각이었다. 그렇다고 이를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블랙리스트’.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 의견이나 주장을 ‘틀린 것’으로 치부하는 왜곡된 판단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블랙리스트(Blacklist)의 유래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 왕이었던 찰스 1세(1600~1649)는 의회를 완전히 무시하고 전제정치를 일삼았다. 이에 대항해 일어난 게 크롬웰이 주도한 청교도 혁명이었다. 혁명은 성공했고 찰스 1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후 왕정은 폐지되고 청교도 윤리에 입각한 공화정(共和政)이 시작된다.

하지만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크롬웰이 병으로 사망하자 왕정복귀가 이뤄져 찰스 1세의 아들이 찰스 2세로 복위한다. 그는 즉위 후 아버지를 사형시키는데 관여한 판사와 관리 등 59명의 명단을 작성했다. 이게 바로 ‘블랙리스트’의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결과는 끔찍했다. 그때까지 생존한 31명 가운데 12명은 처형됐고, 나머지 19명은 종신형에 처해졌다. 특히 혁명 주동자였던 크롬웰은 시신을 꺼내 부관참시(剖棺斬屍)했다. 그리고 보복정치를 자행했던 찰스 2세는 ‘최악의 군주’라는 오명을 역사에 남겼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블랙리스트’는 존재했다. 우리 역사 속의 ‘살생부(殺生簿)’도 그 범주에 속한다. 세계 제일의 자유 국가임을 자임하는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산주의에 대한 결벽증적인 공포가 휩쓸던 시절인 1947년, 이른바 ‘할리우드 10인’이라 불리는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나돌았다. 대상은 감독과 각본가 등 영화계 인사였다. 이들은 의회의 ‘공산동맹’ 청문회 증언을 거부했다가 징역형에 처해지고 영화계에서 퇴출됐다.

그 중엔 영화사에 길이 남는 걸작 ‘로마의 휴일’의 시나리오(1953년)를 쓴 돌턴 트럼보도 끼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지 못했고, 아카데미상도 다른 사람 명의로 받아야 했다. 그가 가까스로 해금된 것은 1960년대 들어서였다. 역사는 이 광기(狂氣)의 시대를 ‘미국의 수치’로 평가하고 있다.

블랙리스트는 그동안 군사정권 등 권위주의 정부의 낡은 유산이자 전유물(專有物) 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며 오산이었다. 박근혜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의 블랙리스트까지 드러나면서 나라 전체가 온통 시끄럽다. 불과 10년 안에 일어난 사실이란 점에서 그 충격파는 더욱 크다.

문체부 등의 주도로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은 모두 9473명으로 거의 1만명에 육박한다. 대부분 문재인·박원순을 지지했거나 세월호 참사 등과 관련 시국선언을 한 문화예술인들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집권층의 눈 밖에 벗어난 모든 사람을 망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죄질로 치면 MB정부가 더 나쁘다. 숫자는 비록 82명에 불과하지만 국정원이 이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MB 때 국정원의 원훈(院訓)은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문화예술인을 ‘좌파 인사’로 분류해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는 게 ‘무명의 헌신(獻身)’인가. 더욱이 이미지를 실추시키기 위해 합성 나체 사진까지 만들어 인터넷에 유포했다고 하니, 참으로 창피스럽고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보수나 진보’ 혹은 ‘우파나 좌파’는 개인의 가치기준에 따라 입장을 달리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다.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 당국에 의한 블랙리스트는 민주주의 원칙을 부정하고 국격(國格)마저 실추시키는, 명백하고 엄연한 범죄 행위다.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제2차대전의 전범(戰犯) ‘히틀러의 블랙리스트’에서 빠진 작가들이 오히려 제 이름이 없는 것에 분노하고 항의했다는 대목을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지금 우리 문화예술인들의 심정이 그렇지 않겠는가. 이 시대,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글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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