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간이 우선이다] <8> 서울 초안산, 뚝딱뚝딱모험놀이터

서울시·도봉구 올 여름 서울 제1호 모험놀이터 개장
초안산 일대 나무집 등 최소 시설로 놀이 공간 조성
흙·나무·물 자연 재료로 모험심 자극 동심 사로잡아 

도심에 살고 있어도 주변에 산이나 강이 있으면 생활은 훨씬 풍요롭다. ‘뚝딱뚝딱 모험놀이터’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8일 서울을 찾았을 때 녹천역(도봉구)을 빠져나오는 순간 첫 느낌은 그것이었다.

문정임 기자

△ 푸른 나무가 손님을 맞이하는 초안산

사실, 이날 취재진은 녹천역을 녹번역으로 착각해 은평구를 찾았었다. 이른 아침 지하로만 이동하다보니 방향감각을 잃고 수첩에 잘못 기록된 주소지로만 향했던 것이다.

녹번역이 목적지가 아님은 역을 빠져나온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가까운 곳에 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사무실 빌딩이 즐비했고, 유명 브랜드 아파트들의 신축 공사가 어지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고민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동네로 보였다.

다시 땀을 닦고 도착한 서울시 도봉구 녹천역. 산에서 뻗어 나온 시원한 나무 그늘이 작은 아파트 단지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 엄마도 아이도 노는 재미에 흠뻑

역을 빠져나오자 마을의 절반이 짙은 녹음이었다. 초안산이다. 오른 편으로 창동 주공아파트가 자리했다.

산이 만들어준 그늘을 따라 마을로 들어갔다. 산 입구는 아파트 안쪽에 있었다. 창골 어린이공원, 표지판이 보였다. 가을 초입이었지만 낮 기온은 30도를 넘고 있었다. 그러나 산 입구에 들어서자 촉촉한 흙과 빽빽한 녹음이 청명한 공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초안산으로 훈련 나온 운동선수들이 산이 떠나갈 듯 기압을 넣고, 한쪽에서는 동네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리를 주무르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때, 저 위에서 꺄르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졌다.

“엄마 내가 던질게, 엄마, 엄마! 나 봐봐!” “에잇. 생각보다 힘드네. 다시. 다시. 엄마, 와 넣었다!”

금요일 오후 2시. 아직 학교가 파하기 전이었지만 엄마, 아빠와 찾은 어린이들이 여럿씩 모여 노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 구비된 투호를 던지고 있었다. 엄마도, 함께 온 고모도 모처럼 어린 시절 즐겨했던 투호 실력을 뽐내며 아이들에게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을 설명했다. 아이들은 흙을 밟고 밧줄을 잡아당기고 물 속에 손을 집어넣으면서 함성을 멈추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이라는 이연주 양은 “엄마가 재미있는 놀이터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동네에서 보던 놀이터와 다르다”고 즐거워했다. 이 양은 “물도 있고, 나무도 있고, 소리를 마음껏 지를 수 있어서 좋다”며 “집에 있는 코순(강아지)를 데리고 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경사진 지형을 따라 위로 시선을 옮기니 2층 높이의 나무집이 보였다. 어릴 적 꿈꾸던 아지트의 모습이다. 톰 소여의 모험이 연상됐다. 이 놀이터의 유일한 인공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여자아이가 나무집에서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밧줄 사다리를 타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 무서워!” “무서워? 그럼 내려올래?” “아니! 재밌어! 완전 신나!” “그래 좀 더 해봐!”

아빠와 엄마가 나무 집 아래서 딸들의 도전을 응원했다.

이 동네에 산다는 지호 아버지는 “초안산 입구에도 놀이터가 있지만 아이들은 이 곳에만 오려한다”며 “내가 보기에도 산이 훨씬 재미있다”고 말했다.

지호 어머니는 딸이 올라간 나무집을 가리키며 “어릴 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으면서 내가 꿈꿨던 곳”이라고 아이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 지난해 7월20일 서울 월천초등학교에서 도봉구청이 학부모와 주민을 대상으로 모험놀이터 설명회를 열고 있다. 설명회는 지난 5월 17일부터 총 다섯 차례 마련됐다. 도봉구 제공
▲ 지난해 7월20일 서울 월천초등학교에서 도봉구청이 학부모와 주민을 대상으로 모험놀이터 설명회를 열고 있다. 설명회는 지난 5월 17일부터 총 다섯 차례 마련됐다. 도봉구 제공

△ 기존에 놀이터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 

서울시와 도봉구가 손을 맞잡고 서울시 제1호 모험놀이터를 만든다는 소식은 지난해부터 이곳 제주까지 전해졌다. 놀이시설은 최소화하고 나무와 흙, 경사진 지형을 최대한 활용해 아이들의 모험심을 마음껏 자극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초 아이디어를 제안한 서울시 최윤종 공원녹지정책과장은 지난해 본 지와의 통화에서 “공원을 어떻게 관리할까 해외 자료를 보다가 아이들이 방해받지 않고 놀 수 있는 곳은 모험놀이터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 지자체는 공무원들의 아이디어만 모으지 않았다. 아이들이 즐거운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의 의견을 들었다. 지난해 5월부터 7월까지 주민센터와 초등학교에서 다섯 차례 주민 설명회를 열었고, 마지막 날에는 그간 설명회 장에서 주민들이 제시한 안들을 미니어처 놀이터로 만들어보는 설계 워크숍도 가졌다. 도봉구는 이에 앞서 순천의 기적의 놀이터와 일본의 모험놀이터를 방문하는 등 새로운 놀이터 구상에 정성을 쏟았다.

도봉구 관계자는 “이번 모험놀이터는 기존의 놀이터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며 더 깊은 추진 배경을 솔직히 털어놨다.

△ 금지된 놀이를 할 수 있는 곳

서울시 도봉구의 뚝딱뚝딱 모험놀이터는 매일 아침 9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문을 연다. 이 시간 놀이터에는 놀이 전문가와 자원봉사가 배치된다. 다소간의 위험이 있을 수 있어 입구에는 ‘내 안전은 내가 책임진다’는 문구를 붙여두었다.

이 곳에서 아이들은 할 일이 많다. 물을 휘젓고 흙을 파고 투호를 던지고 진짜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처럼 나무집에 올라 온갖 모험을 즐긴다. 평평한 땅에 언덕을 만들 수도 있고 솔방울과 나뭇가지 곤충도 놀잇감이 된다. 모닥불을 피우거나 나무에 오르기 등 기존 놀이터에서는 금지된 놀이도 가능하다. 가까이 캠핑장이 있어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에게는 주말 코스로도 사랑받고 있다.

‘뚝딱뚝딱 놀이터’는 서울시 명칭 공모를 통해 선정됐다. 전래동화에서 도깨비가 외치는 ‘금 나와라, 뚝딱!’ 주문처럼 어린이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해 다양한 놀이 활동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앞선 놀이터 이름 공모에는 1051건이 접수됐다. 2위는 ‘모험비밀기지’였다.

사실 초안산 입구에는 이미 놀이터(창동 어린이공원)가 있다. 고무 소재 바닥과 조합놀이대로 상징되는 기존의 ‘판박이’ 놀이터다. 모험놀이터가 들어서면서 바로 옆 놀이터는 꼬마 손님들을 잃게 됐다.

초안산은 늘 그대로 있었지만 아이들이 놀기 위해 산을 오르는 일은 많지 않았다. 지자체가 산 일대에 즐거운 모험놀이터를 조성하면서 이 곳에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떠나질 않고 있다.

산 입구에서 만난 여인순 할머니(78)는 “이 마을에 오래도록 살았는데 놀이터가 만들어지면서 아이들을 자주 보고 있다”며 “손자들을 대신해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나에게는 큰 기쁨이자 즐거운 활력소”라고 너털웃음을 보였다.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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