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담 인터넷 올리며 일파만파
진실추구 기자도 ‘가짜뉴스’ 양산
누명 벗었으나 마녀사냥 만신창이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취사선택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질문

 

 

유시민 작가가 ‘240번 버스’ 논란과 관련 “진짜 욕을 먹어야 할 사람은 최초 보도한 언론사”라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jtbc ‘썰전’에서 유 작가는 “언론보도의 기본 원칙마저 지켜지지 않았다. 누군가 비난받을 만한 행동에 대한 기사를 쓸 때는 당사자 해명을 실어주거나 노력은 해야 한다. 그런 과정도 없이 SNS 내용만 보고 기사를 썼다”는 것이다.

‘240번 버스’ 파문은 한 목격자가 민원성 글을 인터넷에 올리며 시작됐다. 주요 내용은 버스 안에서 한 아주머니가 울부짖으며 아기만 내렸으니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데도 기사는 그냥 무시했다. 다음 역에서 아주머니가 울며 내리는데 기사가 큰소리로 욕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 글은 삽시간에 퍼지며 여론이 들끓었다. 기자들도 진실을 파헤치기는커녕 SNS 글 그대로 ‘가짜뉴스’를 양산해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서울시버스운송조합 게시판엔 항의 글이 폭주해 사이트가 마비됐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운전사를 처벌해 달라’는 민원이 빗발쳤다.

이틀 후 버스의 CCTV가 공개되며 기사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졌다. 해당 영상엔 승객들이 내리고 문이 닫히기 직전 여자 아이가 뛰어내리는 장면이 찍혔다. 온라인 상에 떠도는 목격담과는 달리 아이는 떠밀려 내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차했다. 버스는 16초간 정지한 뒤 출발했다. 이후 도로 안쪽으로 차선을 변경했고, 이 같은 차선 변경은 불가피한 조치였다.

글을 올렸던 목격자가 해명에 나서고 사과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60대 해당 기사는 이미 마녀사냥으로 ‘인격적인 살인’을 당한 후였다. 기자들도 최초 가짜기사를 그대로 베껴쓰며 여기에 직·간접으로 가담했으니 ‘기레기’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가짜뉴스’가 판치고 있다. 최근엔 필리핀 유력 일간지의 한 칼럼니스트가 가짜뉴스를 인용해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미국 정부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가 망신살이 뻗쳤다.

그는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우리는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그의 나라를 운영할 시간을 줘야 하고, 그들의 독립성을 존중해야 한다”며 필리핀의 편에 서서 분명한 목소리를 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칼럼니스트가 인용한 것은 아랍권 알자지라로 위장한 가짜뉴스였다.

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진짜뉴스와 가짜뉴스를 섞어 6개의 뉴스를 제시했을 때, 이를 모두 식별할 수 있는 사람은 고작 1.8%에 불과했다고 한다. 일반인이 진짜와 가짜뉴스를 가려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들은 자신의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뉴스를 보면 심리적 만족감을 느낀다. 진실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면 효용성이 있다는 것. 가짜뉴스가 성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라쇼몽 효과’라는 말이 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으로 해석하면서 본질 자체를 다르게 인식하는 현상이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골라 취사선택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일본의 거장 감독인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羅生門)’에서 유래됐다.

사무라이 부부가 숲길을 지나던 중 산적을 만나 아내는 겁탈을 당하고 사무라이는 죽음을 당한다. 이를 목격한 나무꾼이 사건을 신고해 재판을 받게 되지만 살인 사건에 대한 진술은 제각기 달랐다.

산적은 자신이 무사 남편을 살해한 것은 맞지만 그 아내의 요구 때문이었다 했고, 부인은 산적이 사라진 후 남편의 눈빛에서 자신을 향한 경멸을 느껴 찔러 죽였다고 말한다. 영매사에게 불려나온 사무라이 혼령은 겁탈 당한 아내가 강도에게 도망치자고 해서 모욕감에 자살했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나무꾼은 사무라이의 아내가 남편과 강도 모두에게 납자답지 못하다고 모욕하자 남편이 마지못해 산적과 결투하다 죽었다고 주장한다.

욕정 및 배반, 살인에 얽힌 이 스토리는 4명의 인물들이 모두 자기 말이 진실이라고 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는 끝까지 알 수가 없다. 사건은 분명 하나인데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과연 진실이란 무엇인가’였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이러한 주제를 통해 인간의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적인 관점을 나타내고자 했다.

일파만파를 불러 일으켰던 ‘240번 버스’ 파문도, 실은 믿고 싶은 대로만 기억하고 말하는 ‘라쇼몽 효과’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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