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일본의 ‘플레이파크’

영국 앨런 남작부인의 책 한 권이 변화의 물꼬 터
1979년 행정과 시민의 힘으로 첫 모험놀이터 개장
놀이시설 갖춘 곳 아니라 ‘아이가 놀이 만드는 곳’

노는 게 목적이고 전부인 시절이 있다. 시기적으로는 ‘아이’ 혹은 ‘어린이’로 불릴 때다. 그때 제대로 놀아보지 못하면 평생 노는 재미를 알지 못한다. 제대로 논다는 건 무엇일까. 그걸 찾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에는 수백 곳의 모험놀이터가 있다. 기획을 통해 몇 차례 일본 모험놀이터를 둘러보고 우리에게 적절한 놀이와 놀이터는 무엇인지 생각하는 기회를 가져본다. [편집자주]

▲ 일본에서 첫 개장한 하네기 플레이파크의 모습 ⓒ하네기 플레이파크 홈페이지

일본 도쿄도를 중심으로 4곳의 모험놀이터를 찾았다. 일본 현지에서는 ‘모험놀이터’라는 단어보다는 ‘플레이파크’라는 영어식 표현을 쓴다. ‘플레이파크’를 말 그대로 풀어쓰면 ‘놀이공원’이 되지만 우리나라에서 불리는 놀이공원과는 이미지가 다르다.

기자들이 찾은 일본의 플레이파크는 도쿄도에 위치해 있다. 네리마구청에서 직접 만든 ‘고토모노모리’, 세타가야구 노자와에 있는 ‘뎃토히로바’, 신주쿠에 위치한 ‘토야마 플레이파크’, 시부야에 속해 있는 ‘하루노오가와 플레이파크’ 등이다. 이번 시간은 이들 플레이파크를 소개하기에 앞서 일본의 전반적인 모험놀이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 일본의 플레이파크들을 소개하는 팸플릿

▲ 오무라 부부의 노력이 결실

일본은 공원이 무척 많은 곳이다. 복잡한 시가지가 있는 곳이라도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공원을 만나게 된다. 이런 공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 바로 ‘플레이파크’라고 불리는 모험놀이터다. 플레이파크는 몇 곳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수백 곳은 된다. 협회에 가입해서 활동을 하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기 때문이다. 협회는 특정비영리활동법인인 ‘일본모험놀이터만들기협회’가 있다. 여기에 소속된 플레이파크는 모두 192곳이다.

그런데 일본은 왜 플레이파크를 수십 곳도 아닌 수백 곳을 만들었을까. 발단은 책이었다. 1968년에 영어로 쓰인 책이 5년 뒤인 1973년 ‘도시의 놀이터’라는 이름으로 출간된다. 이 책은 어린이의 자유로운 놀이터의 방향과 실제 설계 사례를 담고 있다. 당시 초판 번역된 이 책은 일본 플레이파크의 원점이 됐고, 전문가 뿐 아니라 부모 세대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렇다고 일본의 플레이파크가 유럽보다 빠른 건 아니다. 유럽은 일찍이 모험놀이터에 관심을 기울였다. 세계 최초의 모험놀이터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덴마크 코펜하겐 외곽에 만들어진다. 폐기물 놀이터였다. 깔끔한 놀이터 환경에서보다 폐기물이 굴러다니는 곳에서 아이들이 더 기뻐한다는 연구 결과로 만들어진 게 모험놀이터였다. 영국의 조경사였던 마조리 앨런 남작부인이 2차 대전이후 이곳을 찾아 영국에도 모험놀이터를 심기 시작했다. 그런 노력을 한 앨런 부인의 역작이 일본에 번역되면서 일본 플레이파크의 시작을 알리게 됐다.

앨런 부인은 영국의 놀이터 개혁을 이끈 인물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영혼이 부러지느니 차라리 다리가 부러지는 게 낫다. 다리는 언제든 고칠 수 있지만 영혼은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앨런 부인의 저서가 일본인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일본에서 ‘도시의 놀이터’라는 이름으로 번역 된 ‘Planning for Play’라는 제목의 책이다. 앨런의 책을 번역한 이는 도쿄 세타가야구에 살던 오무라 겐이치와 오무라 아키코 부부다. 도시계획을 하던 오무라 겐이치는 도시계획에 놀이터를 담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평소에도 “우리 아이의 놀이 환경은 우리의 어린 시절과는 다르다. 아이에게 그 놀이 세계를 체험시켜 주고 싶었다”고 회고한다. ‘그 놀이’란 바로 옛날 방식의 놀이를 말한다. 별도의 놀이시설이 있는 게 아니라 자연과 벗 삼아 놀던 그 시절을 말한다. 그가 해외시찰 중 앨런의 책을 만났고, 그 우연은 일본의 놀이터를 바꾸는 시발점이 됐으니 그걸 우연이라고만 해야 할까.

▲ 일본 플레이파크에 시동을 걸게 만든 앨런의 역작 ‘도시의 놀이터’

책 출간 이후 오무라 부부는 유럽 일대를 돌며 책에서 소개한 스웨덴, 영국, 덴마크, 스위스, 네덜란드 등의 놀이터를 직접 관찰한 뒤 일본에 돌아와 뜻이 맞는 사람들과 교류를 이어간다. 드디어 모임이 만들어진다. 자원봉사를 하는 어른들로 구성된 ‘놀자모임’이었다. 이들 부부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세타가야구 교도에 살았기에 1975년 7월부터 9월까지 ‘교도아이들천국75’를 시작하고, 이듬해는 ‘교도아이들천국76’을 가동한다. 결국 1979년 행정과 시민의 협동으로 첫 플레이파크가 만들어진다. 국제아동의 해 기념사업으로 일본 최초 상설 모험놀이터인 ‘하네기플레이파크’가 문을 열게 됐다. 이후 30여년에 걸쳐 192곳으로 확장됐다.

▲1990년대 이후 급증

일본의 모험놀이터인 ‘플레이파크’는 시민의 노력에 행정이 힘을 보태고 있다. 일부 지역은 행정이 직접 놀이터를 만들어 위탁 운영을 하는 곳도 있다.

일본모험놀이터만들기협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플레이파크 현황을 보여주고 있다. 플레이파크는 연중 운영되기는 하지만 주중의 며칠만 오픈하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선택을 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플레이파크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1979년 이후 1986년까지는 단 4곳에 불과했다. 1992년까지만 하더라도 23곳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급증한다. 1997년까지 36곳이 추가되고, 2002년까지 67곳의 플레이파크가 만들어진다. 2010년을 전후해서도 48곳이 문을 열었다. 모험을 즐기는 플레이파크가 늘어나는 이유는 있다.

협회의 홈페이지 첫 화면은 놀이가 어떤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첫 화면은 ‘어린이에게 놀이란?’이라는 글이 사로잡는다. 놀이는 뭘까. 그 답을 협회는 해준다. “모험놀이터는 아이가 놀이를 만드는 놀이터”라고. 그러면서 산림을 둘러싸고 빵을 굽거나, 낙엽 위에서 샤워를 하며 시간을 보내라고 말한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산림에서 빵을 굽는 게 가능할까. 낙엽 위에서 뒹구는 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다. 답을 내리자면 플레이파크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다. 불을 피우는 행위가 허용되고, 못할 게 없는 곳이 바로 플레이파크다. 대신 놀이는 아이들이 만들어야 한다.

놀이는 생각이다. 낙엽과 흙투성이의 자연 소재를 쓴다. 놀이터에는 위험 요소도 있다. 삽과 망치를 둔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바로 놀이인 셈이다. 자연이 곧 선생님이다.

▲ 절반 이상은 도시공원에 위치

그렇다면 플레이파크는 어떤 곳에 위치하고 있을까. 절반이상(54.2%)은 도시공원에 들어 있다. 일본의 도시공원에는 큰 나무가 있고, 땅이 숨을 쉰다. 플레이파크를 만들기엔 제격이다.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도 있다. 그럴 여유가 없는 지역은 사유지와 공공관리지역에 플레이파크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 경우도 40%나 된다. 땅을 놀리기보다는 어린이를 위해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 만나 볼 플레이파크엔 모험이 가득하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다. ‘모험’을 ‘위험’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든다. 기계가 가득한 놀이시설이 있는 곳은 환영하지만, 자연 그대로인 상태에서 모험을 즐기는 ‘플레이파크’를 만난다면 우리 사회와 부모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기겁할지 모르겠다. 앨런 남작은 이런 글을 남겼다. “삶은 용기와 끈기, 강인함을 요구하지만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위험이 주는 자극을 즐기면서 스스로 사물을 깨우쳐 나가는 아이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한다.”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