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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방인의 도시, 제주
데스크 승인 2017년 10월 11일 (수) 김은석 | 제주대학교 교수
   
 

김은석

제주대학교 교수

 

오늘날 과학문명 발전 상상을 초월
그리스 신들을 능가하는 능력
그러나 미래는 디스토피아일 수도

애월읍 하가리의 ‘낯선 변화’
개발주의 광풍 몰아친 제주 축소판
진정한 가치·미래 성찰의 가을 기대

 

대학 강의실에 전자출석부가 등장했다. 아날로그 방식에 길들여진 나는 출석 부르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다.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컴퓨터의 정확성 앞에서 “사이보그가 장차 내 인문학 강의를 대신하지 않을까”라는 철없는 생각마저 해본다.

오늘날 과학문명의 발전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제우스의 천둥번개가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핵폭탄을 능가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AI) ‘알파고(AlphaGo)’는 지혜의 신 아테네의 권좌를 넘보고 있고, 성형외과 의사들은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무수히 복제하고 있다.

그리스 신의 권능을 초월하는 이 힘들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마 지칠 줄 모르는 도전정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미래가 꼭 밝은 것만도 아니다. 헉슬리(Aldous Huxley)는 이미 ‘멋진 신세계’에서 과학기술이 가져다 줄 안락함과 신속함 대신 인간소외의 어두운 그늘이 있음을 폭로하고 있다.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의 멋진 신세계’는 인간의 부푼 낙원, 유토피아(Utopia)가 아니라 인간의 오만과 착각이 빚은 디스토피아(Dystopia)일 수 있다는 것이다.

20년 전 한 일간지에 기고했던 애월읍 하가리에 대한 글이다. “나는 하가리를 좋아한다. 여기서 느끼는 감동은 하이테크 기술에 대한 경외감이 아니다. 주민의 일상의 궤적을 따라 만들어진 마을 안 길을 걸어보라. 그 작은 길, 올래는 걷기 위한 것이 아니라 멈추기 위한 것 같고, 휘어지고 갈라지면서 호흡을 조절하게 만드는 듯싶다. 너무 빠르면 걸음을 멈추도록 하고, 멈추어서면 다시 걷도록 하는 올래는 수대에 걸쳐 살아온 주민들이 만든 하나의 자기완결적 소우주이다. 자연과 인간의 구별 자체가 사실상 무의미한 초월적인 장소이다.”

며칠 전 이 마을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내게 다가선 것은 낯선 이방인의 허탈감이었다. 하나의 실루엣으로 다가섰던 마을 안 길, 올래는 자동차 진입로로 확장되었다. 밤새 이야기를 쏟아낼 것 같은 올래 담장은 싸늘한 콘크리트 벽으로 차단되고 말았다. 시대의 편린을 담은 추억의 초등학교는 관광객들의 포토존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나의 무지 탓이다. 그러나 여전히 안타까운 것은 이 변화의 물결이 다름 아닌 제주의 축소판이라는 데 있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변화를 선택했을까? 하긴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역개발에 따른 지가 상승, 그만큼 개발은 황금 알을 낳는 주민 합의사항에 다름 아니었다.

그래서 선거 때만 되면 후보들은 너나 없이 중앙으로부터 개발비를 따올 적임자임을 자처했고, 그들에게 우리 역시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들과 샴페인을 터트리는 동안, 제주도정과 도의회가 앞 다투어 개발지상주의의 첨병임을 자처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러나 그 광풍이 휘몰아친 제주는 어떠한가? 일부에게는 여전히 부를 성취할 수 있는 가슴 벅찬 도시이다.

하지만 다수에게는 고향이라는 포근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가슴 뭉클한 곳과는 거리가 있다. 상업주의의 끝없는 소비관성이 주종을 이루는 관광도시에서 교통체증과 환경오염으로 삶의 터전이 황폐화되고, 수많은 타인을 양산하면서 끝내 비정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내는 이방인의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직 경제논리에 매몰되어 가지와 잎만 생각하는 근시안적 사고에 길들여져 온 결과는 너무나 참담하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제주를 제대로 가꾸지 못해 후손들에게 홉즈가 말한 야수들이 뒤엉키는 정글로 물려주어서야 되겠는가. 상품화되는 자연이 제주의 자랑거리이고, 관광객과 투자유치가 우리의 희망이라는 지금의 제주 담론은 산학협력의 미명아래 전문가와 자본, 정치권력이 창출해낸 허구이다.

깊어가는 가을이다. 이 사색의 계절, 우리는 더 이상 권력과 자본의 달콤한 수사에 현혹되지 않고 제주의 진정한 가치와 미래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제주매일 김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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