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간이 우선이다] <10> 일본 동경의 중심부, 시부야의 하루노오가와 플레이파크

'시부야에서 놀 수 있는 곳을 생각하는 모임’서 이끌어
플레이리더를 두지만 리더보다 놀이 도우미 역할 톡톡
도쿄의 중심부 위치하면서도 최대한 자연을 끌어들여

일본 아이들은 우리의 어린이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잘 뛰어논다. 거기엔 자연과 벗 삼는 놀이터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일본에서 ‘플레이파크’라고 부르는 놀이터다. 이들 놀이터에는 기본적으로 나무가 있고, 흙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놀이시설은 찾을 수 없다. 일본의 플레이파크 4곳을 하나씩 소개한다. 

△도쿄의 중심부에 위치

온통 흙 범벅이다. 옷은 시커멓게 되기 일쑤이다. 진흙이 물과 어우러지면 더 가관이다. 우리 부모라면 이런 곳에서 놀라고 할까. 그런 곳에 놔두면 기겁할 부모들이 한 둘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깨끗한 옷을 입고 놀러 갔다가 깨끗한 상태 그대로 들어온다. 흙을 묻힐 이유가 하나도 없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흙을 찾는 건 어렵다. 놀이를 연구하고, 놀이를 펼쳐 보이는 단체가 하는 말이 있다. “흙을 찾는 건 대박이다”고.

일본은 그럴 필요가 없다. 오히려 모래가 있는 플레이파크는 없다. 모든 게 흙이다. 흙을 파고 논다. 곁엔 나무도 있다. 이런 놀이 환경이 조성되는 이유는 플레이파크 상당수가 공원시설에 포함돼 있어서다.

도쿄 시부야구에 있는 ‘하루노오가와 플레이파크’(이하 하루노오가와파크)도 그런 놀이공원이다. ‘하루노오가와’는 일본인이라면 초등학교 때부터 부르는 동요인 ‘봄의 시냇물’과 연관이 있다. 그 노래가 만들어진 곳이 이 일대다. 100여m만 가면 그 노래비가 있다.

하루노오가와파크가 있는 시부야는 도쿄의 중심이기도 하다. 1964년 도쿄올림픽이 열렸던 요요기공원도 있으며, 공원 내엔 메이지신궁이 자리를 틀고 있다. 하루노오가와파크는 요요기공원 남서쪽의 작은 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 아이들이 물감을 갖고 놀고 있다. 이곳에서는 물감이 바닥에 떨어지거나 책상에 묻거나 옷에 흘릴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지역 주민들의 의지로 10년 만에 완성

하루노오가와파크는 올해로 출범 13주년을 맞는다. 2004년 시작됐다. ‘시부야에서 놀 수 있는 곳을 생각하는 모임’이 이곳을 이끌고 있다. 탄생 배경은 이웃으로 놀러가야 하는 문제점 때문이었다. 시부야구 남서쪽에 위치한 세타가야구에 있는 플레이파크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게 30년 전이라고 한다.

시부야에서도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플레이파크 조성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무려 10년간에 걸친 투쟁을 벌여야 했다. 게다가 주5일제 수업이 본격 도입되면서 토요일에 어린이들이 갈 곳이 사라졌다. 지자체가 자연스레 움직이게 된 배경도 됐다. 하루노오가와파크 부대표인 고미즈 지에코씨(69)가 그런 말을 꺼냈다.

“구청장 선거가 진행됐는데, 그걸 이해해주는 후보가 있었죠. 그래서 플레이파크가 진행됐어요.”

하루노오가와파크가 들어선 곳은 일반적인 공원이었다. 플레이파크를 만들면서 개발이 시작됐다. 하지만 개발이라고 해봐야 자연과 최대한 가깝게 만드는 작업이다. 여기는 조그만 언덕이 있다. 그걸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흙은 다른 곳에서 사들여 덮였다. 흙이어야 하는 이유는 있다. 이곳을 이끌고 있는 이들의 말을 빌리면 답이 나온다. 그들은 “맨발을 추천한다”고 한다. 맨발에 닿는 흙의 감촉을 느껴보고, 자연과 가까이 해보라는 뜻 아니겠는가.

▲ 플레이파크는 플레이리더라는 도우미가 있다. 플레이리더인 사토씨가 어린이의 불 피우기를 지켜보고 있다.

△놀이에 부모 개입은 없어

이곳을 찾는 부모들은 어린이들을 자전거에 싣고 오기도 한다. 몇 번씩 옷을 갈아입히는 게 다반사다. 그래서인지 옷가지들이 수없이 많다. 놀면서 더러우면 갈아입히고, 또다시 놀이에 빠져들게 한다.

“시간은 걸리죠. 건강이요? 확신이 있기에 놔둔답니다. 엄마들이 옷을 서로 가져다 놓고 갈아입히곤 하죠.”

여기서는 놀이에 부모가 개입하는 일은 드물다. 어린이와 어린이의 다툼에 어른이 끼어드는 것도 많지 않다. 고미즈 부대표는 그에 대한 이유도 설명했다.

“기다리세요.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만일 엄마들이 관여를 하려고 하면 ‘기다려보세요’라고 말합니다. 애들끼리 싸울 때도 지켜보게 해요. 울고불고 난리죠. 그러다 애들이 손잡고 나와요. 순서요? 줄 세우는 것도 없어요. 서로 싸우고 난리가 나죠. 애들끼리 스스로 깨우칩니다.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야죠.”

수전 솔로몬이 쓴 책이 떠오른다. 솔로몬은 ‘놀이의 과학’이라는 책에서 미국 놀이터의 최대 위협요소를 부모라고 했다. 부모가 개입함으로써 아이들의 독립심을 박탈하고, 또래와 다른 연령대가 만날 기회를 없앤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는 대한민국의 부모들도 미국의 부모들이랑 매한가지다. 일본의 플레이파크에서는 다르다. 부모가 개입하는 모습을 만나는 건 어렵다. 고미즈 부대표는 말을 더 이었다.

“자유라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더불어서 ‘금지’라는 간판도 없애고 싶어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지시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도우미격인 플레이리더 역할도 중요

일본의 플레이파크 운영 형태는 다양하다. 지자체에서 위탁 운영을 해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보조사업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그러지 않고 자체적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파트너와 협력을 통한 위탁이나 보조운영은 전체 플레이파크의 32.4%를 차지한다는 통계가 있다.

하루노오가와파크는 보조운영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시부야구청의 보조를 받고 있다는 말이 된다. 구청 예산의 대부분은 인건비이다. 이 예산으로 젊은이들의 일자리도 만들어내고 있다. 바로 그 젊은이들이 플레이리더이다. 플레이리더는 플레이파크를 이끄는 중심축이다. 하루노오가와파크엔 모두 3명의 플레이리더가 있다. 하루노오가와파크에서 놀던 어린이가 플레이리더가 되어 이곳에 취직도 했다.

플레이리더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업무를 맡는다. 그러나 플레이리더는 ‘리더’가 아니다. 놀이에서 플레이리더는 리더가 되면 안 된다. 플레이리더는 어린이들의 놀이를 지켜보고 도와주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리더’가 아니라 ‘도우미’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플레이리더인 사토 다이스케씨(27)를 만났다.

“처음에 온 애들은 도와주죠. 애들이랑 놀아주기도 해요.”

사토씨를 만났을 때 그는 한창 불을 피우는 애 곁에서 그 애를 지켜보기만 했다. 갑자기 이상해졌다. 우리나라에서 불 피우면서 노는 놀이가 가능한가? 이곳 플레이파크는 애들에게 불을 피우는 놀이를 하게 만든다. 사토씨는 불을 켜고 싶은 아이의 욕망을 바로 채워주지 않았다. 놀이에 플레이리더가 개입하는 걸 최대한 자제를 한다. 사토씨는 불 피우기에 열중인 애를 바라보며 이런 말을 했다. “어떻게 하면 불이 붙을까. 불은 밑에서 올라온단 말이야.”

우리는 상상하기 힘든 불장난이 여기에선 가능하다. 여기에서는 톱과 망치도 있다. 톱으로 나무를 잘라도 되고, 망치로 못질을 해도 된다. 어찌 보면 위험천만한 놀이터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게 플레이파크의 전형이다.

일본은 왜 플레이파크를 만들었을까. 이유는 있다. 도심에서 아이들이 놀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그것도 자연과 가깝게 만든다. 플레이파크는 말만 ‘놀이공원’이지, 실제는 ‘자연공원’이다. 일본 전체 플레이파크 194곳 가운데 88곳이 도쿄도에 몰린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하루노오가와파크에서 만난 두 자녀의 엄마인 요시무라씨는 지방에서 도쿄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시골에는 자연이 많은데, 도쿄는 그러지 않다고 했다. 요시무라씨가 아이들을 데리고 하루노오가와파크를 들른 이유를 알만하다. <제주매일 문정임,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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