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서 충돌한 아버지와 아들
모처럼 가족식사서 감정 조절 실패
아이들 쌓인 불만 사춘기에 폭발

평소 표현하는 것도 감정조절 방법
자식도 또 다른 인격체 존중해줘야
화내기 이전 어른들 성찰 필요

 

일행들과 식당에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식사하고 있는데 갑자기 앞자리서 욕과 함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야! xx, 너 이리 안와?”

취객끼리 싸움이 난 줄 알았다.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해대는 남자에게 시선이 모두 쏠렸다.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성이 잔뜩 난 중년 남성은 식당 문을 박차고 나가는 아들을 뒤따라 뛰어 나갔다.

놀란 손님들이 웅성거리자 식당주인은 상황을 설명했다. 핸드폰을 사달라고 조르던 아들이 아버지의 잔소리에 벌떡 일어나 나갔고 그런 아들에게 화가나 욕을 하고 소리를 쳤다는 것이다.

폭언을 퍼부으며 쫓아가는 아버지를 쳐다보던 아들의 표정을 보았다. 두려움에 가득했다. 잘은 모르지만 처음 화를 내는 아버지는 아닌 듯했다.

분노의 감정은 상대와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인데 평소에 아버지가 화를 잘 내고 자식은 줄곧 참아왔을 것이다. 만 2세가 지나면서 아이는 자기주장이 생기고, 부모는 ‘욱’하는 일이 잦아진다. 특히 육아에 지친 부모는 아이에게 쉽게 욱하게 되는데, 아이는 이런 모습에서 부정적 감정의 표현을 배운다.

어릴 때는 부모의 분노에 따른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처리할지 몰라서 누르고 있다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터져 나오게 된다. 즐거운 가족식사의 자리에서 타인들을 의식하지 않고 폭발한 아버지나 아들 모두 감정조절에 미숙한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감정의 영향을 받고 감정을 표출한다. 아기들은 배고프면 운다. 본능적으로 울게 되고 또 이를 보는 엄마는 울음만으로 아기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어릴수록 본능적으로, 숨김없이 자신의 감정 상태를 드러내지만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감정을 숨기거나 무시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쌓여 있다가 나중에 폭발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평소 자신의 감정을 예민하게 살펴보며 꼭 그러지 않아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본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어느 정도는 평소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도 분노 조절방법, 즉 화를 다스리는 방법의 하나다. 어렵겠지만 이렇게 말해보자. “너의 그 말과 행동이 나를 슬프게 만드는구나. 그리고 화가 나지만 참으려고 노력중이야.”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나한테 솔직히 말해줄래? 너의 감정을 이해하고 싶어.”

또한 기다리는 것과 자식을 또 다른 인격체로 존중해줘야 한다. 부모가 바라는 대로 잘 자라주면 참 좋겠지만 자식은 부모 뜻대로 되지 않는다. 머리가 커지면서 대들기까지 하니 부모의 심정은 착잡하고 복잡해진다. 오죽하면 “무자식이 상팔자”란 말이 나왔을까? 그 만큼 자식 키우는 일이 힘들다는 말일 것이다.

자녀교육은 너무 강압적이거나 너무 허용적이어도 안된다. 강압적으로 키워진 아이는 평생 감정을 수용 받지 못한 의존 욕구가 남는다. 그래서 누구든 나를 잘 대해 주지 않거나 이해해 주지 못하면 큰 분노가 생긴다. 또한 감정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어릴 적에 공감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남의 입장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줄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면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한다.

또 허용적인 교육은 자녀가 자기감정을 견디는 연습을 못한다. 그래서 참을성이 부족하다. 결국 너무 눌려 있어도 어느 날 폭발하지만, 너무 허용적인 교육 환경도 늘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채워 주지 않으면 스스로 감정을 감당해 내지 못하기 때문에 늘 불편하고 ‘욱’하는 사람이 된다.

‘욱’하는 자식의 모습은 ‘욱’하는 어른의 모습이다. 절대로 자식을 욱하는 어른으로 키우면 안 된다. 어른이 되기 전에 이미 욱하는 어른보다 더 무서운 괴물이 되어버린 아이들이 있다. 부산 중학생 잔혹한 폭행사건과 창원지역 중학생 폭행사건을 보면서 비행 중학생들의 모습이 바로 욱하는 어른들의 투영된 모습이 아닐까 안타까울 뿐이다.

‘욱’하는 괴물이 된 청소년들의 범죄를 묻기 이전에 왜 그들이 그렇게 괴물이 되었는지 어른들의 반성이 필요하다. 어른들의 성찰, 부모들의 성찰이 반드시 먼저 선행돼야 한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