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보영                              제주국제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나는 매일 한라산을 넘어 다닌다. 아침에는 서귀포에서 제주시 방향으로 저녁에는 제주시에서 서귀포 방향으로. 푸릇한 나무들을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내 알록달록 옷을 갈아입더니 하나 둘 잎이 떨어진다. 자연의 섭리는 늘 경이롭다. 인간의 노력을 벗어난 경이.

살아가면서 인간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 노력해서 될 수 없는 부분, 때로는 경이롭지만 그것이 때로는 인간의 힘없음을 무던히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녀를 양육하는 부분이 그렇다. 자녀들이 커가는 걸 보면 너무나 경이로운데 양육하는 부모로서는 한계 상황에 봉착할 때가 많다.

나는 자녀가 셋이다. 작년 막내아들까지 수능을 마쳤고, 나 역시 뒷바라지를 열심히 했다. 셋의 학창시절은 정말 다사다난 했다. 건강문제로 학교생활문제로 날마다 걱정이 떠날 날이 없었다. 엄마가 대신 아파주고 싶었고, 대신 학교생활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 수 없어 아이들이 건강하기를 스스로 든든히 서가기를 바라며 수많은 날을 기도로 지샜던 것 같다. 엄마로서 한계는 절대자에 대한 신뢰와 의지를 더욱 절박하게 했다.

자녀들이 커가면서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자녀를 먹이고 입히는 것 밖에는 없었다.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친구와 무슨 말을 하고 지내는지, 학교 공부는 잘 따라가는지, 선생님과는 잘 지내는 지, 엄마에게 이야기 해주는 범위 밖에는 도통 알수 가 없다. 모든 부모들이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같은 생각을 하리라고 본다.

부모로서 내가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 한계상황을 극복해 보려고 컴퓨터에 물어본다. 여러 가지 서적들을 탐독하고 실천해 본다. 그것도 역시 끝을 드러낸다. 이러한 한계를 벗어나 언제 어디서든 시공을 초월해 눈동자같이 자기의 자녀를 지켜보시는 분이 있다(시편 17편8절). 눈동자 같이 지켜 볼 뿐 아니라 능력도 주신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장13절). 성경 빌립보서에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했던 바울이 했던 말이다. 능력을 주시는 분을 의지할 때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당장의 수능만 끝나면, 대학만 가면 다 될 것 같지만, 대학 가면 직장 걱정, 직장 얻으면 결혼 걱정, 걱정에 걱정이 끝이 없다. 대신해 줄 수 있는 것도, 힘을 더해 줄 수 있는 것도 인간은 한계가 있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의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절대자의 보이지 않는 손길과 힘이 필요하다.

작년 이맘때, 졸린 눈 비벼가며 아이 수업마치면 교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이 학원으로 저 학원으로 다시 학교로 기사노릇을 자처 했었다. 엄마로서 힘든 능선을 넘고 있는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한계는 여기 까지였다. 힘을 다해 달렸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가 지났다. 이젠 밤에 일찍 잘 수 있고 몸은 편해졌다. 하지만 마음은 더 쓰인다. 그래서 작년 보다 올 해는 더 두 손을 모은다. 오늘도 능력을 주실 하나님께 우리 아이들을 의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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