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다양한 문화예술 하드웨어
‘제주의 색’ 입히기 본격 시작
독서문화대전·전국문학포럼 등

‘김만덕 정신’ 기린 뮤지컬도 ‘도전’
시민 노력·공직자 헌신 하모니 기대
삶도 알차게 영글어 익어갔으면

 

새해 아침에 가슴 속 깊게 웅크렸던 설레임의 이야기들로 초감제·본풀이·뒤풀이까지 만들어내느라 열달을 숨가쁘게 내달려 온 것 같다. 이제 한라산 자락이 붉게 물들어 알록달록 색동옷을 입은 듯 ‘설문대할망의 얼굴’인 백록담의 홍조가 돋보이는 11월도 지나가고 있다.

가을과 겨울이 맞닿은 지점이 오면, 도드라지게 문화예술의 향기를 느끼곤 한다. 최근 다양하고 다채로운 문화예술 분야의 하드웨어들이 들어서면서, 여기에 제주의 색을 입힐 수 있도록 생각들을 모아 한해 살림살이를 준비해왔다. 초겨울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준비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어 풀어내보고 있다.

지난 11월 초 제주해변공연장에서는 5000여 인파가 잔뜩 기대감을 갖고 인기작가 설민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인사말을 대신하여 ‘나뭇잎의 여정’이라는 나의 수필 중 몇 구절을 읽어내려 갔는데, 지루하다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나와 청중들 사이에 서로의 다름이 존재했다. 결국 인기작가의 독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나서야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그렇게 수줍게 첫 번째 ‘독서문화대전’을 풀어냈다.

최근 나이 90살에 이른 재일본작가인 김시종 시인께서 돋보기를 이중삼중 들고 기조강연 원고를 읽으시다 청중들에게 ‘자신의 본풀이와 같은 문학적 자산과 자신의 삶에 역정을 담은 이야기’를 읽어보도록 당부하기로 하였다. 순간 형식적 틀과 제주인의 한계를 넘어 한국인들이 근대사를 얼마나 참혹하게 살아냈는지를 전하려는 노작가의 ‘향기’를 느끼기도 했다. 그러면서 전국문학인 제주포럼은 전국 최초로 문인협회·작가회의·제주시 문화원 대표들이 모여서 함께 문학을 이야기하고 삶을 짚어보는 시·공간을 압축해서 풀어냈다. 이 또한 첫 번째다.

이제 또 다른 꿈의 ‘초감제’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조선 중엽 우리 섬 백성들이 다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큰손’으로 백성을 살려내었던 김만덕 할머니의 나눔, 그것은 지금도 우리 정신이자 사회를 일으켜 세우는 문화의 강이다.

요즘처럼 우리의 정신문화. 즉, 정체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조냥과 나눔’. 이 정신적 유산이야말로 우리가 가다듬어야 할 기상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뮤지컬에 도전하고 있다. 수준 높은 전문가들이 잘 만들어서 우리 고유의 콘텐츠가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리고 우리 제주어가 ‘사투리’가 아닌 일상 문화가 되고, 도로에 피어 있는 꽃들에 우리다움이 담겨있기를 바라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담아내는 행정 과제들을 구현해보고 있다.

그리고 ‘청정과 공존’, 즉 ‘환경과 문화’라고도 이야기하고 ‘자연과 인문의 공존’이라고도 정의 지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살아나서 함께 춤을 추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야외 음악당이나 시민회관이나 우리 시청 앞 광장 모두 우리 49만 시민들의 새로움을 일깨우고 우리 색상이 입혀 있는 문화 창조의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하면서 늦가을 거리를 걷는다.

2016년 세상을 달리한 ‘제3의 물결’의 저자 앨빈 토플러의 말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변화란 단지 삶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삶, 그 자체이다.” 내가 순간순간 변하고 있고 환경이 변하고 있다. 그러나 늘 원래 그대로 머물기를 우리는 본능적으로 원하면서 답습의 문화를 양산하고 있다.

나의 생각과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하고 혁신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딱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었다. 그러나 사실 깊게 관찰해보면 이 모든 변화는 나의 삶, 그 자체라는 표현을 느껴보면 ‘내 인생, 사실 그 자체다’라는 지점에 생각이 머무른다.

“공항로 입구에 제주 돌담으로 화단을 만들고, 제주 찔레꽃을 심고 번화가에 제주어 문양을 담은 예쁜 간판을 내걸어 보자” 이런 이야기는 깨끗한 제주공동체에 우리 향기가 담겨 있는 문화적 자산들을 담아보겠다는 작은 소망들을 구현해보려는 시도들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은 멀다. 땀 흘리며 매달리고 있는 시민들의 노력과 공직자들의 헌신이 좋은 하모니를 이룰 수 있었으면 한다.

어느 노래 가사 속의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는 말처럼 제주시민의 삶도 알차게 영글어 익어갔으면 한다. 그리고 그 씨앗은 이 땅을 더욱 아름답고 향기롭게 물들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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