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헌 前 정무수석 검찰 출두
‘살아있는 권력’ 칼 겨눈 檢
노무현 정부 초기 상황과 흡사

당정청, ‘공수처 설치’ 본격 논의
검찰개혁 고삐 죄기 나서
검·경 수사권 조정도…결과 주목

 

 

청와대 정무수석은 ‘왕(王) 수석’이라 불린다. 민정수석과 함께 ‘살아있는 권력’ 청와대의 양대 축이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20일 검찰에 피의자로 소환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여권의 고위 관계자가 부패 혐의로 검찰 포토라인에 선 것은 처음이다.

검찰 출석에 앞서 전병헌 전 수석은 “저는 그 어떤 불법에도 관여한 바가 없다. 검찰에서 저에 대한 의문과 오해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 시절이던 2015년 7월, 롯데홈쇼핑에 압력을 넣어 자신이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e스포츠협회에 3억3000만원의 후원금을 내도록 한 혐의(제3자 뇌물수수)를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이 큰 주목을 받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다. 우선 수사 시점이다. 검찰이 인지수사 입장을 밝힌 날은 국정원 댓글 수사방해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변창훈 검사의 투신자살로 검찰이 뒤숭숭한 때였다. 이를 두고 검찰 안팎에선 조직 내부의 불만을 다독이기 위한 고육책이란 평가가 나왔다.

또 다른 하나는 청와대 정무수석을 겨냥한 검찰의 칼 끝에서, 대선 불법자금에 연루되어 전격 구속된 노무현 정권의 실세(實勢) 안희정 등이 오버랩된다는 점이다. 2002년 대선 불법선거자금에 대한 수사는 2003년 8월 ‘SK 비자금 사건’에서 시작되어 2004년 5월까지 9개월 동안 정치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대된 데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폭탄 발언 영향이 컸다. 수사가 한창이던 2003년 12월 노 대통령은 “자신의 불법 선거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에서 은퇴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했다. 검찰이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된 이유다.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진두 지휘한 수사 결과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는 823억2000만원, 민주당은 113억8700만원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씨와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구속됐고,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김영일 사무총장과 대선자금 모금의 주역이었던 서정우 변호사가 구속되기에 이른다.

이 사건은 친노 진영에도 타격을 줬지만 한나라당에겐 ‘차떼기 정당’이란 오명을 남겼다. 특히 한나라당은 불법 대선자금을 자진 헌납하겠다는 치욕적인 서약까지 해야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모금에 직접 관여한 증거가 없다며 면죄부(免罪符)를 받았다. ‘10분의 1이 넘으면 정계 은퇴’ 선언 또한 유야무야 됐음은 물론이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스타도 탄생시켰다. ‘국민검사 안대희’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당시 안 중수부장이 ‘살아있는 권력’까지 칠 수 있었던 것은, 검찰의 독립성을 유지하며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적폐(積幣)’를 도려내려 시도한 것이 국민들의 큰 공감대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 정부 초기 심혈을 기울였던 중수부 폐지 등의 ‘검찰개혁’은 어느 사이 물 건너 가버렸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훨씬 흐른 지금 진행되는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는,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얻었던 2003년 당시 정치권 대선자금 수사와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병헌 전 수석의 책임이 검찰에서 확인될 경우 전 정권에서 발생했던 비리가 현 정권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 정부와 청와대가 20일 오후 국회에서 당정청 회의를 열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에 대해 긴급 논의를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날 회의엔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물론 조국 민정수석까지 참석했다. 여권이 세간의 논란을 일축하면서 검찰개혁의 고삐를 다시 바짝 조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특히 전병헌 전 수석이 검찰에 출석한 당일에 고위 당정청 회의가 열린 것은 그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날 박범계 민주당 최고위원은 “적폐청산의 완결이자 첫 번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공수처 설치법”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이와 함께 검·경 수사권 조정(분리)에도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그 기저엔 수사권과 기소권을 검찰이 독점(獨占)하는 구조가 바로 ‘적폐’로, 이를 깨야만 검찰개혁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청와대 등 여권과 검찰의 ‘힘겨루기’는 물밑에서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집권여당과 이에 맞서 암암리 방어에 나선 검찰의 대응이 어떤 결말로 나타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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