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태종 치세 다룬 ‘제왕학 교과서’
신하 직언·충고 겸허 수용
‘정관의 治’로 태평성대 꿈 이뤄

여권, 입맛·성향에 맞지 않는다고
걸핏하면 ‘적폐세력’ 몰아
지금 필요한 건 경청·포용 리더십

 

 

‘정관’은 당(唐) 태종 이세민의 연호다. 그의 치세를 기록한 ‘정관정요(貞觀政要)’는 제왕학의 교과서라 불린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으로 손꼽히는 태종 시절, 당나라는 정치·경제·문화·예술 등 모든 면에서 성세를 누렸다. 이를 태평성대를 뜻하는 ‘정관의 치(治)’라 한다.

이세민은 최고 통치권자인 제왕의 잘못된 행동이 백성은 물론 나라 전체에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기에 스스로를 낮추면서 아랫사람의 직언과 충고를 겸허하게 수용하고 적극 실천에 옮겼다.

정관 10년에 태종이 신하들에게 물었다. “제왕의 사업인 창업(創業)과 수성(守成) 중 어느 쪽이 더 어려운가?” 측근 중 한 사람인 방현령이 고했다. “천하가 혼란스러울 때는 영웅들이 다투어 일어납니다.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런 군웅들을 쳐부수어야 합니다. 그걸 생각하면 창업이 더 어렵다 할 것입니다.”

직언의 대명사 위징(魏徵)이 즉각 반론을 펼쳤다. “새로운 제왕이 천자의 자리에 오르려면 반드시 전대의 혼란을 고스란히 짊어진 채 세상을 평정하고 민심을 이끌어야 합니다. 원래 창업이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므로, 그것을 손에 넣는 것이 어렵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천하를 손에 넣은 뒤에는 교만에 빠져 욕망이 이끄는 대로 내달리고 맙니다. 이런 점에서 창업보다는 수성이 어렵다고 할 것입니다.”

두 갈래의 다른 대답에 태종이 말했다. “창업의 어려움은 벌써 과거 일이 되고 말았구나. 앞으로는 그대들과 함께 힘껏 수성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생각이다.”

당태종은 신하들과의 격의 없는 토론을 통해 ‘나라를 세울 때의 리더십’과 ‘나라를 다스릴 때의 리더십’을 구분할 수 있었다. 또 ‘군주는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는 군주민수(君舟民水)의 이치도 터득했다. 자신을 낮추고 부족함을 드러낼 줄 아는 용기, 신하들의 직언을 경청하고 수용하는 리더십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6개월을 맞은 이달 10일, 청와대가 ‘결정적 순간’ 10가지를 꼽아 공개했다. 그 10가지 장면은 5월 10일 취임식 첫 인사를 필두로 △첫 국회연설(6월 12일) △첫 청와대 앞길 개방(6월 26일) △협치를 위한 첫 당 대표 초청 행사(7월 19일) △야구장 첫 시구(10월 25일) △첫 국빈 (미국 트럼프 대통령) 행사 등이었다. 절반은 공식 행사고 나머지는 소통에 중점을 뒀다.

청와대는 “10가지 장면을 고르는 과정이 참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전 정부의 꽉 막힌 ‘불통(不通)’과는 달리, 국민과의 격의 없는 소통에 주력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70%선을 웃도는 고공행진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본질적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많다. ‘적폐(積幣) 청산’ 목소리가 유독 커서인지, 다른 부분은 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의 ‘전투력’도 야당 때 못지않게 막강하다.

최근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공작 사건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수사를 받고 있던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등을 구속적부심을 통해 석방한 신광렬 판사에 대한 집중 공격은 대표적인 사례다. 일반인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라면 이해라도 할 터인데, 국회의원까지 대거 나서 ‘적폐판사’로 몰아붙이는 것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신 판사는 1970년대 ‘동아투위 사건’과 한국전쟁 때의 ‘거창양민학살 사건’과 관련 국가 상대 소송 재판장을 맡아 동아일보 해직기자 및 희생자 유족들의 ‘한(恨)’을 풀어준 판결의 장본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입맛에, 성향에 맞지 않는다고 불문곡직(不問曲直) 적폐세력으로 폄하하는 것은 ‘내로남불’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야권에서 ‘여론살인’ ‘사법부 독립 훼손’ 등의 거센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23일 카이스트 에너지포럼 주최로 열린 강연에 참석한 스티븐 추 스탠퍼드대 석좌교수는 “한국이 독일의 사례(원전 정책)를 따라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추 교수는 미국 오바마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주도한 친환경론자이자 1997년 노벨물리학 수상자이기도 하다. 그는 신재생 아니면 원자력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의 허구성을 꼬집었다.

탈(脫) 원전과 최저임금 등 각종 경제정책과 관련 대통령 공약이나 정부에 반하는 의견도 겸허하게 경청하고 수용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나라를 세울 때의 리더십’이 아니라, ‘나라를 다스릴 때의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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