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과교수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방학이 오는 것이 두렵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즐겁고 감사한 일이지만, 방학이 되어 매일 아이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것이 힘겹고 고단할 때도 있어서 일 것이다.

자녀양육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매순간 옳고 그름에 대한 혼돈 속에서 헤맬 때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것이다.

내가 큰아이를 낳고 기를 때 일이다. 산후조리 기간이 지나고 아이와 덩그러니 남겨졌을 때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모른다. 아이가 울거나 보채면 왜 그러는지 몰라 당황스럽고, 안고 있자니 아이도 나도 자세가 불편하고 업어보자니 더 힘들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하루를 온전히 바치다 보면, 몸은 지쳐가고 ‘나라는 존재는 뭐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체성의 혼란이 오기도 한다.

이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다가 문득‘이 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키우지? 다시 뱃속에 집어넣을 수도 없고...’ 이런 생각이 들면서 자녀양육에 대한 힘겨움과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다 보니 어제 희미했던 눈썹이 진해지고, 볼에 살이 오르고 손톱 발톱이 자라고, 발로 차는 힘이 점점 세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 ‘아, 내가 기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길이 더 많은 일을 하는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 내 어깨의 짐은 훨씬 가벼워 졌다.

아이들을 기르다 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내가 엄마지만 자녀양육문제에 있어서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품 안의 자녀일 때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절대 아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밥을 해주고 옷을 사주고 교육을 시키는 것등의 일 뿐이다. 그 이후에 음식을 씹어 삼키는 것, 소화시키는 것, 영양소가 살과 뼈로 가는 것, 그래서 몸이 자라는 것, 생각이 자라는 것, 옷을 자기 손으로 입고 벗는 의지를 갖는 것 모두 하나님의 영역이다.

혹자는 뇌의 영역이라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하나님의 영역을 부인하고 싶은 데서 오는 변명일 것이다. 왜냐하면 뇌발달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은 어쩔 것인가? 그래서 자녀를 양육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내가 잘 키워야지’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부모에게 얼마나 큰 부담을 안겨주는 생각인지 모른다. ‘하나님이 키워주시지’하는 생각을 하면 한결 짐도 가벼워지고 자녀가 자라는 것 볼 때마다 기쁘고 행복해 질 것이다. 엄마인 나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두손을 모을 수 밖에 없었다. 성경에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는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사사기13장12절)라고 하였다. 아이를 어떻게 기르고, 아이에게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놓고 기도한 마노아처럼 부모인 우리는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되, 그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해주실 것을 믿고 맡기는 담대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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