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 혁명시대 급속 도래
영원한 기계에 소외된 유한한 인간
슈마허의 ‘인간중심 경제’ 생각

대규모 글로벌화 경제에 대한 경고
로컬화·환경파괴 최소화 등 주장
알고 있지만 실천 못하는 현실 ‘고민’

 

근래 10여 년 동안의 우리의 삶은 그동안 이루어왔던 발전과 혁신의 정도와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변화 속에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인터넷 기술과 다양한 스마트 기기의 개발로 인해 웬만한 사람이라면 세상을 손에 쥐고 흔들 수 있게 되었다. 공간의 제약은 물론 시간의 차이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기술의 혁신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워질 정도다.

과거 영화 속에서 비현실적으로 보이던 신기술들은 이제 실제가 되어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든 지 오래다. 순간 이동,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형 로봇의 세상 등은 유비쿼터스·사물인터넷·AI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 접목되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를 총칭하는 4차산업 혁명의 시대를 맞아 어느덧 첨단기술들은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 익숙하고도 편리한 삶을 이끌어 간다. 비록 첨단기술엔 전혀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기술이 적용된 첨단기기들을 이미 사용하고 있으며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일상에서 사용되는 기기들 가운데 가장 가까운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늘 타고 다니는 자동차 역시 앞뒤로 장착된 여러 개의 센서와 네비게이션 등 장치들이 바로 사물통신기능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간단한 쌍방향 대화가 가능한 지니(Ginnie) 스피커도 AI기술의 산물이다.

이러한 기술의 혁신과 변화는 인간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만드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한편으론 인간을 점점 소외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어서 에른스트 슈마허(Ernst Schumacher)가 쓴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 중심의 경제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슈마허는 진정한 행복을 만드는 경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성장지상주의와 대규모 글로벌 경제를 추구하는 인류를 향한 경제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의 경고이기도 하다. 그는 대규모 글로벌화 사회와 경제가 가져올 부작용을 직시하고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라면 작은 경제, 로컬화, 그리고 환경 파괴를 줄이는 방식의 삶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이 출간되던 1972년 당시 우리나라는 겨우 전쟁의 상처를 딛고 먹고 살기에 급급한 시절이어서 어쩌면 경제학의 한 이론으로 받아들이고 먼 장래에 생각해봐야 할 문제쯤으로 인식됐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새 선진화에 도달한 오늘날 그의 주장은 이제 많은 부분 우리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강조되고 구현되어야 할 덕목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무려 4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그의 주장은 여전히 생생하게 유효하다. 기술과 첨단지식으로 전 세계를 하나로 엮어 진정한 글로벌시대를 이룬 지금, 오히려 더욱 새겨듣고 실천해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라고 이구동성이다.

인공지능·사물인터넷과 같은 첨단기술이 적용된 4차산업 사회는 삶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나아가 에너지만 있으면 영원히 돌아가는 기계와 기술이 삶을 지배하고 ‘유한한’ 인간은 점점 밀려나는가 싶은 이제야말로 인간 중심의 사회로 회귀해야 할 필요성이 차츰 커지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 보다 작고 보다 심플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중심된 세상과 삶을 지켜내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성장과 개발의 산물로서 누리게 될 물질적 풍요의 이면에는 인간성 파괴와 환경 파괴의 심각성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가 제시한 대안인 작은 규모의 경제와 로컬경제이론이라면 어쩌면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 진정한 인간의 행복을 찾는데 도움을 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경제 규모를 유지하고 특히 지역의 자원과 노동력을 활용한 경제 활동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당장 실천해야만 할 중요한 덕목이지만 10년 넘게 중소기업을 운영해온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을 실현하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걸 또한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이러한 그의 주장과 이론을 되새겨 보면서 기술의 진보에 못지않게 인문학의 연구와 진보가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를 ‘과연 진정한 선진사회’라 부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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