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습사고 이민호군 영결식
반복되는 안전사고와 다짐
정부 ‘실습제도 내년 폐지’ 방침 발표

그것이 ‘미래’인 사람들도 많은데
밥 탄다고 밥솥 깨버리는 처사
건강한 꿈 안전하게 지켜줘야 순리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부모를 여의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아픔도 세월이 지나면서 잊어간다. 그래서 망각 덕분에 살아간다고도 한다.

지난 6일 우리는 산업체 현장에서 실습 중 사고로 숨진 18살 이민호 군을 보냈다. 영결식은 사망한 지 17일 만에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이석문 교육감·도의회 의원 등 기관·단체장과 학부모·학생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모교인 서귀포산업과학고에서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장(葬)으로 엄수됐다.

이 군의 사망과 함께 많은 우려와 다짐들이 쏟아졌다. 이날 장례위원장인 이 교육감과 원 지사는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이 군의 빈소를 방문했던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정치인들도 이구동성으로 조속하고 철저한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공언했다.

안타까운 죽음을 잊지 않겠다는 ‘기억’에 대한 약속이다. 그렇게 돼야 한다.

그런데 ‘망각’이 두렵다. 또 한사람의 희생이 덧없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말만 앞섰을 뿐 행동이 뒤따르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지난 3일 발생한 영흥도 낚시어선 전복 15명 사망사고 현장을 통해 우리는 ‘망각의 대한민국’의 오늘을 목도했다. 저체온 사망 때문에 촌각이 급한 데 5분 거리를 30분 넘어 도착했고 출동시간 번복 등 ‘세월호의 교훈’은 없었다.

그렇다고 밥이 탔다고 밥솥을 깨버릴 일은 아니라고 본다. 밥은 먹어야하고, 그것을 위해선 밥솥이 최고다. 결국 왜 밥이 탔는지를 알아내고,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정부는 지난 1일 김상곤 교육부 장관 주재로 열린 사회관계장관 회의에서 ‘고교 현장실습생 사망사고 대응방안’으로 내년부터 현장실습 전면 폐지 방침을 발표했다. 애초 직업훈련과 역량강화 차원에서 시작된 ‘현장실습제도’가 학생들의 노동 착취로 변질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전면 폐지는 아니라고 본다. 깨버리는 것은 쉽다. 아주 단순한 조치다. 하지만 확실한 대안도 없이, 그 밥솥이 ‘미래’인 사람이 있는데, 그리고 그들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밥솥을 깨버리는 행위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오만이자 또 다른 갑질로 비쳐진다.

소중하지 않은 목숨은 없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그래서 현장실습제도는 계속돼야만 한다. 인간은 실패에서도 배운다. 인명 손실을 통해서도 교훈을 얻는다. 지난 9월 부대 복귀 중 유탄에 맞아 숨진 이모(22) 상병의 아버지도, 이민호군의 어머니도 전한 “더 이상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당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어찌 가슴이 아프고 억울하지 않겠는가. 하늘이라도 뒤엎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래도 ‘한풀이’보다 사고의 재발을 걱정하는 건 ‘큰 사랑’이다. 그들의 숭고한 마음마저 헛되게 해선 안된다.

비행기 추락은 가장 큰 인재 가운데 하나다. 사망자를 비교하더라도 비행기는 자동차보다 훨씬 안전한 교통수단이어도, 만일에 발생하는 사고의 피해규모 때문이다. 양쪽 날개에 연료를 가득 채우고 고속 비행하다 보니 추락했다하면 ‘참사’다. 수백명 탑승객 모두 사망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들의 죽음 ‘덕분’에 남아 있는 우리들은 유사 사고의 가능성을 줄이며 오늘도 비행기를 탄다. 항공기 사고가 나면 몇 년이 걸리든, 비용이 얼마이든 바다 속이라도 샅샅이 뒤져서 마지막 한 조각까지 기체의 잔해를 찾아내 퍼즐 맞추듯 조립한 뒤 ‘원점’에서 원인을 찾아 나선다.

보통 수년이 걸리는 이 작업을 통해 인간의 실수 또는 인간은 미처 몰랐던, 그래서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한 ‘자연의 현상’ 등을 찾고 모든 항공사와 항공기에 전파함으로써 유사 사고를 막아내는 것이다.

우리도 이민호 군의 사고를 계기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의 희생이 슬프긴 하지만 가치를 갖기 위해선 철저한 조사를 거쳐 완벽한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는 게 순리가 아닐까 한다. 비록 민호의 꿈은 ‘나쁜 어른들로 인해’ 사그라졌지만 남아있는 그의 친구, 후배들이라도 대학이 아닌 직장에서 ‘안전하게’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학력 지상주의 대한민국에서 또래들과 즐길 수 있는 ‘자유’도 있는 대학을 버리고, 실력으로 승부해보겠다고 현장을 선택한 ‘고졸 직장인’들을 지켜줘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죽어야 관심 받는 세상이 아니라 살아있을 때 관심을 보여주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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