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민주주의 새 章’평가 불구
조두순 등 해결책은 한계
청원 열기 따른 부작용도 속출

‘軍內 위안부 재창설’ 주장까지
청원제도 개선 청원도…
최근엔 ‘靑기자단 폐지’ 이슈로

 

 

“청와대의 직접 소통은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을 지향합니다. 국정 현안 관련 국민들 다수의 목소리가 모여 30일 동안 20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한 ‘청원(請願)’에 대해서는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답하겠습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소개된 글이다.

2017년 5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 화두(話頭)는 ‘대화와 소통’이다. 문 대통령 취임 100일이 되던 올해 8월 17일 공식 출범한 ‘국민청원 및 제안’ 코너도 국민과의 소통을 중시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모티브는 미국 백악관 시민청원 사이트인 ‘위 더 피플(we the people)’이다.

시행 초기 기대 반 우려 반이었던 국민청원은 개설과 동시에 봇물이 터지듯 ‘열풍(熱風)’으로 이어졌다. 지난주(14일) 기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재된 글은 총 6만3966건이다. 게시판이 만들어진 이후 하루 평균 533건이 접수됐다.

6만건 이상의 청원 글 가운데 ‘30일 이내 20만명 이상’이라는 청와대 답변 기준을 넘은 것은 모두 5건. △조두순 출소 반대 △청소년보호법 폐지 △낙태죄 폐지 및 자연유산유도약 합법화 △주취감형 폐지 △권역외상센터 지원 확대가 그 면면이다.

청와대의 제1호 답변은 소년법 폐지 청원이었다. 청원 내용은 인천의 여아 살인사건 등 청소년의 흉악 범죄가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른 상태에서 청소년은 그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최고형이 징역 15년에 불과한 현행 소년법의 개정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1호 답변에 걸맞게 청와대 수석 3명이 나섰지만 답변엔 한계가 있었다. 법 제정이나 개정은 행정부가 아니라 엄연한 국회 소관이다. 때문에 답변 또한 ‘엄벌주의가 만능이 아니다’ ‘보호 처분의 활성화와 제대로 된 사회복귀 제도 형성이 중요하다’ 등 원론적 내용의 답변에 그쳤다.

그것은 조두순 출소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조두순은 초등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흉악범으로 징역 12년의 형기를 마치면 2020년 출소하게 된다. 청원은 조씨를 재심(再審)해서 무기징역을 선고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국 민정수석은 국민적 분노에는 동감하지만 이는 현행법상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출소 이후 7년간 전자발찌를 착용하게 하고 전담 보호관찰관을 지정해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정서법’과 현실과의 괴리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고 소득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루에 500건이 넘는 청원이 올라오며 ‘직접 민주주의의 새 장(章)’을 열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현행 법제로는 수용이 불가능해 곤혹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청원이라도 장기적으로 법제를 개선할 때 참고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반면에 청원 열기에 따른 잡음도 함께 표출되고 있다. 정책 제안을 넘어 사법부나 입법부의 영역에 해당하거나, ‘떼법’ 혹은 ‘여론몰이식 청원’이 사회갈등을 부추기는 부작용도 있어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군대 내 위안부 재창설’ 청원이다. 익명(匿名)의 이 청원은 군인들이 거의 무보수로 2년의 의무를 수행하니 군인을 달래주고자 군내 위안부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현재 관련 청원은 삭제된 상태지만 해당 청원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또 다른 청원이 이어지며 논란은 계속되는 중이다.

청원도 가지가지다. 문재인 대통령 탄핵 및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는 청원이 있는가 하면 자유한국당 해산 요구나 마음에 들지 않는 판사·검사 등 특정인물의 면책과 처벌, 여성을 군대에 보내라는 청원도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돌그룹인 ‘방탄소년단 군 면제’와 ‘자유강간제’ 등 다소 황당하고 상식에 어긋난 청원, 심지어 청원제도를 개선해 달라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청원 제도 자체가 희화화(戱畵化)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엔 기자들마저 ‘동네북’이 되고 있다. 이달 14일 올린 ‘청와대 기자단과 해외 수행기자단 제도 폐지’ 청원 글에는 5일 만인 18일 현재 5만여명이 참여했다. 지난달 17일 ‘청와대 기자단 해체’ 청원에 이어 제2탄 격이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30일 이내에 20만명 이상 동의하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어쩌다 기자들이 이 지경에까지 몰렸는지 참담한 심정을 가눌 수가 없다. 향후 청와대가 그 결과를 어떻게 처리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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