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매일·미디어제주, ‘우리 아이들에게 맞는 놀이공간 찾기’ 좌담회
학부모·놀이강사·행정 관계자들 모여 제주 놀이공간의 새 방향 공유

동네마다 놀이터가 있는데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놀릴 공간이 없다고 한다. 놀이 강사들은 놀이방법을 가르치는 일만큼 놀 땅 찾기가 중요한 임무하고 한다. 수많은 ‘()호’ 놀이터를 짓고 관리하는 제주시와, 2015년 전국 교육감들이 어린이 놀 권리를 선포한 이후 놀이 혹은 놀이 공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들의 현장 이야기도 들어봤다. 이들을 초대한 좌담회가 지난 19일 제주도교육청 제2회의실에서 ‘우리아이들에게 맞는 놀이공간 찾기’라는 주제로 열렸다. 좌담회는 제주매일과 미디어제주가 주관했다. 

▲ 7세 자녀를 둔 강은하 씨와 초등하교 5학년 딸을 둔 박수경 씨.
▲ (사)놀이하는 사람들 김현순 전 지부장, 조미영 현 지부장, 김승희 제주도교육청 유아교육담당 장학사
▲ 양재성 제주도교육청 체육복지과 주무관과 고미숙 제주시청 공원녹지과 공원관리계장.

△제대로 놀기 힘든 우리 아이들
7세 자녀를 둔 학부모 강은하(제주시 애월읍) 씨는 놀이 공간을 찾는 게 일이다. 육지에서는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놀이 공간을 소개받기도 했는데, 제주에서는 실외장소를 찾기가 어렵다. 놀 공간이 필요한 게 그만은 아니었다. 알음알음 비슷한 상황에 처한 엄마들이 모임을 결성해 열흘에 한 번씩 만나 아이들을 놀게 하고 있다.
“놀 장소가 없는 엄마들이 열 집정도 모임을 하고 있어요. 어느 기관에서 수눌음육아나눔터를 소개해줬는데 다 실내더라고요. 학교에 문의하면 놀이 책임자가 누군지 물어 신경 쓰이는 게 많고, 폐교에 가봤더니 마을에서 시간당 얼마씩 돈을 내라고 하네요. 예전에는 렛츠런 파크를 한참 잘 이용했고, 요즘은 항몽유적지 근처에서 놀고 있어요. 눈치 안 보고 놀려니 읍에 거주하면서도 생각보다 장소 찾기가 쉽지 않아요.”

놀 공간이 없다는 학부모의 하소연에 놀이 강사 김현순 씨가 맞장구를 쳤다. ㈔놀이하는사람들 전 제주지부장인 그는 “아이들의 놀이에서는 쫓고 쫓기는 놀이가 가장 기본이 되는데 구조물 없이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 전 지부장은 “학교 운동장이 있지만 방과 후나 방학 중 재학생들의 활동이 없을 때에만 사용할 수 있고, 그마저도 정기적으로 사용하려 할 때엔 학교 측의 허가가 필요하며, 축구회 등 주민 사용이 겹치면 이마저도 놀이 공간 확보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합놀이대가 있는 놀이터보다 흙만 있는 맨 땅이 아이들이 놀기에 더 적합하다”고 덧붙였다.

5학년 딸을 둔 박수경(제주시 아라동) 씨는 놀이공간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대뜸 “매달릴 수 있는 철봉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철봉? 좌담회엔 잠시 정적이 흘렀고, 토론자들은 “놀이터나 운동장에서 철봉을 못 본지가 꽤 된 것 같다”며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박수경 씨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매달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철봉 있는 놀이터를 찾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 지 모르겠다”며 박 씨 가족에게 놀이터가 재미없어진 이유를 명확히 끄집어냈다.

김승희 제주도교육청 장학사도 말을 거들었다. 이미 첫 아이는 훌쩍 커 성인이 됐지만 유아교육 전문가인 그에겐 병설유치원 놀이시설들에 늘 회의감 같은 게 있었다.

김 장학사는 “운동장 시설을 보면 내 어릴 때와 다른 게 없어 마음 한곳이 늘 무겁다”며 ”오전 바깥놀이가 한 시간씩 의무화돼 있지만 병설유치원마다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는 운동장 면적에 차이가 있어 아이들이 바깥놀이 시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 지도 각기 다를 수 있을 것 같다”고 교육 현장의 상황을 귀띔했다.
 

19일 제주도교육청 제2회의실에서 제주매일과 미디어제주가 주관한 '우리 아이들에게 맞는 놀이공간 찾기' 좌담회가 열리고 있다.

△동네놀이터들이 하나같이 재미없고 똑같은 이유
마을마다 알록달록 푹신푹신한 놀이터들이 즐비하지만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내지 못 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행정 관계자들은 공감과 현실적인 어려움을 함께 전해왔다.

관내 놀이터를 관리하는 고미숙 제주시 공원녹지과 공원관리담당 계장은 본인 역시 초·중·고 세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현행 놀이터의 부족한 부분에 공감했다. 그러나 놀이공간에 대해 관심과 배려가 크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민원에서 자유롭지 못한 행정이 색다른 역할을 해내기에는 어려움이 크다는 설명을 건넸다. 택지개발과정에서 건립된 놀이터들의 태생적 한계도 짚었다.

고미숙 계장은 “가장 문제는 공간”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금 제주시에 있는 어린이공원 129곳은 모두 ‘( )호 어린이공원’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택지개발과정에서 들어선 공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고 계장은 “따라서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곳보다 개발 과정에서 주택 사이사이 정해진 공간에 놀이터를 만들다보니 주변 민원이 가장 적은 방식을 택하게 된다”고 전했다.

그는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조합놀이대를 없애달라거나 낙엽이 내 집으로 들어온다며 근린공원에 나무를 베어달라는 민원까지 받아 봤다”며 “놀이공간에 대한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비 오면 흙이 질퍽질퍽하다, 바람이 부니 모래가 집안으로 들어온다는 등 다양한 민원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 행정에서 선택에 어려움이 크다”고 덧붙였다. “제주는 모래 구하기가 어렵고,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어린이공원에 애완견 출입을 금지하는 문화가 아니라 모래를 깔 경우 위생문제가 발생한다”고도 전했다.

제주도교육청의 놀이시설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양재성 체육복지과 주무관은 “아이들의 놀 권리가 중요해지면서 교육청에서도 테마를 가진 제주형 놀이터를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어디에 만들 것인지 공간 확보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양 주무관은 “행정의 업무에서는 책임소재가 중요해서 학교 안에 놀이터를 만들었는데 외부 학생이 와서 놀다가 다칠 경우 학교장이 어디까지 책임을 질 것인가 등 쉽지 않은 과제들이 놓여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바라는 놀이공간은
학부모들은 우선,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노는 시간을 더 확보해달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인공 시설보다 자연물들이 많은 실외 놀이공간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좌장으로 참석한 김형훈 미디어제주 편집국장은 “기존 놀이터를 리모델링할 때 시설을 교체하기보다 없애는 쪽으로 가는 건 어떨까” 제안했다. “기구를 쓰지 말고 그 돈으로 땅을 사거나, 이미 확보돼 있는 학교 운동장을 흙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보는 것도 좋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순 전 지부장은 흙과 땅이 중요하다는 맥락에서 “지역의 여건에 따라 특징을 가진 놀이터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어느 교회에서 자체적으로 놀이터를 만들려고 시도하다 예산이 많이 들어 포기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시설을 자꾸 설치하려니 그런 것 아니겠느냐”며 “그보다 여기는 흙이 있는 놀이터, 여기는 나무토막이 많은 놀이터처럼 지역 여건에 따라 특징을 가진 놀이터를 만들고, 그도 어렵다면 넓은 흙바닥이라고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

놀이터를 바꾸기 위해서는 학교장이나 자치단체장 등 결정권자의 철학과 주민들의 관심 등 사회적 공감대 확대가 가장 중요하다는 의견도 모아졌다.

고미숙 계장은 “놀이공간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 변화를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만큼 향후 작업에는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주시에는 용담동이나 일도1동처럼 공원(공유지)이 없는 곳이 꽤 있는데 제주 땅값이 크게 올라 사유지 매입이 쉽지 않다”며 “그렇다면, 도시관리계획으로 묶인 어린이공원보다 읍면동에 있는 소공원을 활용하는 게 더 쉽다. 지역 주민들이 관심을 가진다면 마을마다 변화가 조금씩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양재성 주무관은 학교 운동장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현재 도내에 마사토 운동장은 제주서초 1곳뿐이지만 구성원들이 동의를 한다면 마사토가 깔린 운동장으로 충분히 놀이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승희 장학사는 “학부모들의 의견도 각기 다양하기 때문에 소통하며 공감대를 만들어가야 한다”며 “우리도 2018년에는 학부모 토크 콘서트를 놀이중심으로 하려고 하고 있다. 많은 관심을 가져가겠다”고 밝혔다.

조미영 ㈔놀이하는사람들 제주지부장은 “10년 전 놀이를 가르치려 할 때에는 사람들이 놀이를 배워야 하느냐며 거부감을 가졌는데 지금은 놀이가 필요하다는 전화도 많이 받는다”며 “놀이 혹은 놀이공간의 변화를 인식하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한 데 묶어 이들의 의견을 각 기관에 전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제주매일 문정임,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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